정아에게 - 12

<언젠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키 히로치

by Chiara 라라

정아야,

집에 마요네즈가 없었어. 버터가 있어서 바닥에 발라주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계란이 빵 사이로 넘쳐흐르고 빵 아래까지 스며들어서 엉망이 되고 말았어. 마요네즈가 꼭 필요한 건가 봐. 삶을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견디기 힘든, 옆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어야 하듯이 음식에도 꼭 필요한 재료가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어.


내가 무슨 얘기하는지 알지?


네가 나에게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토스트라고, 이거라도 종종 해 먹으라고 알려주었던 마약 토스트 레시피. 맛있어서 하염없이 들어간다고 해서 마약 토스트라고 부른다지. 마약이라는 단어가 좋은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마약이 불법이니 종종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안타까워. 또 다른 단어는 총. 총기 소유가 불법인 나라기에 총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건지 잘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지. 나도 직접 총을 만져 보거나 총기 사용이 허용되는 지역에서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하고 책으로만 영화로만 접했어. 그렇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노출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진다고 해. 익숙해져서 더욱 강한 걸 원하게 되고, 물론 약하고 강한 건 없겠지만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걸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린다고 하더라고. 그게 정말로 무서운 거야. 마약도 마찬가지겠지. 우리는 중독이라는 단어를 좋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기도 해. 어떤 때에는 좋은 의미로 사용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 중독은 서서히 물들어가는 거고 사람을 피패하게 만들 수도 있어. 정작 당사자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지라도. 중독은 그만큼 위험한 거야.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고 있지. 특히 방송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화려해 보이고 눈에 보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래도 그에 무뎌지기 위해서 또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야. 그래서 환각 성분이 들어있는 마약을 통해서 잊고 싶은 건 잊고, 원하고 있는 것을 취하는 거겠지. 환각 성분의 마약을 특히 조심해야 할 거야. 눈이 빛나는 사람이 있는데 자연발광으로 열정이 느껴져서 멋있는 사람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신경이 쓰여서 무서워지는 사람도 있어. 환각이 빛을 발하는 거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할까.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을 먹으면 차분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반면에 심장이 더 쿵쾅거리면서 뛰고 기분이 훨씬 가벼워지면서 아무거에도 가볍게 반응하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 약의 성분에 따라서 다른 거겠지만 그런 경험을 할 때는 그때가 다 괜찮다 싶다가도 지나고 나서 그날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해.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분량을 처방해 주는 걸 테니까 어쩔 수는 없어. 그냥 나의 약함을 탓하고 의심을 버리고 나아지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아니면 어쩌겠어. 그냥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 병원에 가는 거잖아. 병원에 가지 않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며 위안을 삼아야겠어.


네가 알려준 마약 토스트를 만드는 법은 상당히 간단했어.


식빵 두 조각, 마요네즈, 계란만 있으면 끝! 물론 그냥 식빵만 먹을 수도 있고 토스트로 구워 먹을 수도 있지만 나는 토스트기가 없는걸. 또 토스트기로 바삭하게 만들어 먹는 빵보다는 그냥 먹는 빵이 더 좋은걸. 그래도 네가 만들어 준 마약 토스트는 정말 손이 자꾸 가기는 하더라. 한동안 거의 매일 만들어 먹었던 것 같아. 그러고 나서 금세 시들긴 했지만 말이야.


식빵 한 조각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마요네즈로 얇게 한 겹을 만들어줘. 나머지 식빵 한 조각을 위에다가 올려놓는데 가운데에 구멍을 뚫는 거야. 그 위에 계란을 깨서 넣을 거거든. 그러니까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게 적당하게 구멍을 뚫어. 구멍을 만드느라 떨어져 나온 빵은 토스트 옆에 놓고 바삭하게 구워 먹어도 되고 아니면 구워지기를 기다리면서 냠냠 그냥 먹어도 괜찮아. 나는 후자를 택하는 편이야. 그 구멍 안에 계란을 넣기 전에 마요네즈로 구멍바깥에 성벽을 쌓아야 해. 그래야지 계란이 넘치지 않거든. 또 맛도 있고. 그 안에 계란을 톡 깨어서 넣고 미니 오븐에 구우면 끝!


어느 날 미니 오븐이 핫 딜로 떴어. 집에서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법이 거의 없으니까 주방도구들에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날따라 눈이 가더라고. 그건 아마도 미니 오븐이 보라색이어서였을 거야. 보라색의 작은 오븐을 보는데 갖고 싶었어. 어떤 물건을 판매할 때는 늘 그렇듯이 그 물건의 장점을 부각하잖아. 그 작은 오븐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 상당히 많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빵과 쿠키를 비롯해서 정말 다양한 음식이 가능했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적은 양의 요리라는 것도 나의 구미를 끌기에 충분했지. 약간의 고민을 했고 – 할인을 많이 하고 있었고 금액도 적당해서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 주문을 했어. 며칠 뒤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컸어. 정말로 난 손바닥만 한 걸 예상했던 것 같아. 미니오븐 안에 있는 플레이트에 식빵이 딱 한 장 들어가는 사이즈야. 마약토스트에 적합한 오븐이었던 거지. 베이킹에 관심이 있어서 종종 쿠키를 왕창 구워 줬던 너는 큰 사이즈의 오븐이 있었는데 내 미니오븐으로는 한 번에 작은 쿠키 6개 정도밖에는 못 구울 것 같더라고. 나에게는 적당했어. 마약 토스트를 한번 만들어 먹고, 천천히 먹는 사이에 하나를 더 만들 수 있으니까.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지. 하나를 먹으면 식빵 두 조각에 계란까지 한 개를 먹는 거라서 적은 양은 아니었는데 하나만 먹으면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항상 한 개를 먹고 또 하나를 만들어서 반 정도를 더 먹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남은 반은 몇 시간 뒤에는 딱딱해져서 한입 크기로 잘라서 과자처럼 오독오독 먹기도 했어.


식빵과 계란과 마요네즈.


계란 값이 오르고 한번 산 계란을 다 먹고 나면 다시 계란을 사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시작했어. 계란은 안 먹어도 그만이니까, 그 돈으로 다른 음식을 사서 먹을 수도 있으니까, 구운 계란이 저렴하게 판매되기도 하니까. 그러고 한동안은 마약 토스트를 먹지 않았다가 다시 조금 먹고 말고를 전전했는데, 너한테 가면 네 냉장고는 늘 음식을 만들 재료로 가득 차 있어서 마약 토스트는 늘 가능했어. 빵이나 토스트는 주로 아침이나 간식으로 네가 만들어 줬었네. 내가 너무 늦은 시간에 갑자기 전화를 한 날이면 너는 두말하지 않고 집으로 오라고 했어. 흥분해 있거나 바들바들 떨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나를 화장실로 밀어 넣고는 따듯한 물로 샤워하고 나오라고 했어. 욕조가 있었던 집에서는 반신욕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착하기 전에 따뜻한 물을 미리 받아 놓기도 했었네 정아네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몸을 덥히고 마음을 가라않히고 나오면 따듯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기도 했고,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고 있기도 했고, 우리의 단골 메뉴인 떡볶이의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도 했어. 그렇게 많은 밤들을 먹고 마시고 흥분해서 떠들고 화를 내고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보냈다. 1시가 넘어가고 2시가 되어가면 너는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는데, 나한테는 늘 티브이도 보고 책도 읽고 편안하게 시간 보내다가 졸리면 따뜻하게 이불 잘 덮고 자라고 그랬었어. 내가 너를 찾은 게 보통은 평일이었던 것 같아. 주말에는 너도 애인과 데이트도 하고 다른 약속도 있고 쉬기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며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 혼자 버텼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꼭 평일에 한 번씩 터져서 너를 힘들게 했네. 나는 늦도록 깨어있고 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지만 너는 다음날에 출근해야 하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였어. 출근 준비를 하고 나가는 소리를 듣고 햇살이 조금 비치며 날이 밝아 오려고 할 때 나는 그제야 마음을 조금 놓으며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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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네가 없는 조용한 방, 아침에서 점심으로 넘어가려는 시간이었어. 한쪽에는 아침이 차려져 있었고. 내가 빵을 좋아하는 걸 아니까 늘 빵이나 토스트가 노릇하게 구워져 있었고, 샐러드는 담아놨으니 냉장고에서 꺼내먹으라고 쓰여 있는 너의 메모. 또 종종 커피 원두를 새로 샀는데 맛보고 어떤지 알려달라고도 메모지에는 쓰여 있었어. 내가 먹기 좋게 정말로 딱 일 인분의 아침식사. 어떨 때에는 시리얼이 있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에는 고구마나 감자가 삶아져 있기도 했지. 그릭 요구르트를 처음 먹어본 것도 네가 차려놓은 아침 식사에서였을 거야. 매 번 아침마다 조금씩 다른 식사가 차려져 있었는데도 나는 늘 놀랐던 것 같아. 넌 늘 이 정도는 있는 거 그냥 올려놓는 거라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곤 했지만, 또 그런 아침상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감동하고 감사하고 너무 기쁘고를 반복해서 느꼈던 기억이 있어. 눈 뜨자마자 커피 메이커에 내려져 있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음을 알 수 있었어. 네가 나를 그렇게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었어. 그런 안정을 바라며 나는 그 수많은 밤에 너를 찾았을 거야. 그러고는 또 너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내심 갖고 있어서 네가 퇴근하고 들어오기 전에는 설거지를 하고 집을 조금 정리하고 나가곤 했던 내 발걸음, 그리고 내 뒷모습.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너무나도 유명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가 있잖아. 그 영화를 떠올리며 손에 잡은 책이 있었어. 사실은 만화책이야. 제목이 비슷해. <언젠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거든. 아침 식사를 풍성히 즐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란 20대 후반의 여성과 친구들이 주요 인물들이야. 그녀는 도쿄에서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정신없이 아침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환멸을 느껴. 그리고 아침 따위는 상관없어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아침 식사를 제대로 하려고 마음을 먹거든. 친구들을 초대해서 아침에 식사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브런치 카페를 찾아가기도 하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 그렇게 아침 식사를 다시 찾으면서 삶에 활기가 느껴지는 거야. 주요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들이 담겨 있어서 집중하게 되기도 했지만 한 끼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정아 네가 많이 떠올랐어. 좋은 요리나 고급 요리가 아니더라도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고 좋은 사람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던 네가 떠오르는 그런 만화책이야. 인물들이 가는 식당에 대한 설명이 책 뒤에 부록으로 나오는데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지더라. 언젠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또 언젠가 도쿄에서 아침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와 함께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내가 너 대신에 스스로라도 아침을 제대로 차려서 아니면, 제대로 챙기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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