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9

<읽는 직업>, 이은혜

by Chiara 라라

정아야,

요즘에 중고등학생용으로 발간되는 영어 신문을 읽고 있어.


매일 조금씩이라도 영어에 노출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학생용으로 나오는 신문에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사들이 많아서 공부 겸 기사나 자료 수집 겸 겸사겸사 읽는 거야. 읽기가 귀찮을 때는 MP3 파일 듣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아. 물론 귀는 열고 있지만 영어 기사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는 않고 단지 귀를 통과만 하는 것 같기도 해. 정아 너, 영어 참 잘했는데. 나는 참 못했지. 지금도 그다지 많이 나아지지는 않았어. 네 덕분에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져서 그거 하나만으로도 엄청나지. 너한테 고마운 게 많은데 영어도 그중 하나야.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영어 선생님이 인자하시기도 했고, 내용도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 괜찮았던 것 같아. 2학년 때 무서운 노처녀 영어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영어가 정말 싫어졌지. 무서움과 히스테릭한 게 겹쳐지면 왜 노처녀라는 단어로 결론지어지는지 잘 모르겠다. 불쑥 노처녀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어. 어쩌면 그 선생님은 지금의 우리 나이보다 어렸을지도 몰라. 그건 아니려나. 중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의 나이를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더라. 그런 센스는 대학 정도는 졸업해야 조금씩 발휘되나 봐. 뭐, 지금도 얼굴만 보고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 다만. 게다가 마스크를 오래 쓰고 다녔으니 마스크 위쪽만 보고서는 상대를 더더욱 알 수가 없어. 중학교 때는 그냥저냥 따라갈 정도는 되었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영어가 갑자기 더 어려워졌어. 선생님들이 매일 말하고 강조하는 수능이라는 단어, 수능 영어라는 말 때문에 덜컥 겁을 먹었을지도 모르겠어. 정아 너는 외국어에 재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영어도 잘하고 제2 외국어인 프랑스어도 잘하고. 나는 너와 같은 문과면서도 수학과 과학에 더 흥미가 많았고, 다른 문과 친구들에 비해서 수학 과학을 조금 더 잘하기도 했다. 덕분에 우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도와줄 수 있었어. 둘 다 못하고 모르는 과목이 있었으면 우리 얼마나 힘들었을까. 학원도 다니지 못했는데 말이야. 장학금을 받으려고 학교를 많이 낮춰 가서 너는 대학 4년 동안 공부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아.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지. 학생이 공부하면서 돈을 얼마나 모을 수 있었겠어. 뭐, 다 돈이 문제지.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모으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몇 년 후에 결국 대학원에 입학했던 네가 참 멋있어 보였어. 대학원은 네 실력에 걸맞은 대학으로 가서 더 자랑스러웠다는 얘기는 내가 하지 않았지? 회사랑 공부를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아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넌 결국 논문도 영어로 쓰고 석사과정까지 무사히 졸업했다. 멋진 우리 정아. 대학원 졸업식 때 학사모를 쓴 너의 모습이 기억나. 제본한 석사 논문이 나왔다며 나에게 안겨주며 이런 얘기를 했어. 이건 라면 먹을 때 냄비 받침으로 쓰면 된다고, 튼튼하고 두께도 적당하다고 말하던 너.


요즘 내가 보고 있다는 그 영어 신문에서 어제 이런 기사를 읽었어.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래. 한 아이가 만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거야. 그 아이는 만화를 그려서 자신만의 책을 만들었어. 대단하지?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도서관 서가 어느 곳에 그 책을 몰래 꼽아 놓은 거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이의 부모는 도서관에 연락을 취했는데, 사서는 이미 그 책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해. 사서는 그 만화를 발견하고 왜 이 책이 여기에 끼워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읽어봤겠지. 그런데 너무 재미있어서 인상적이었던 거야. 그래서 유례없이 그 책을 도서관 책 목록에 올리게 되었다고 해. 도서관 책 목록에 올랐으니까 사람들이 그 만화책을 빌려 읽을 수 있게 된 거야. 그 만화가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예약을 한 사람들이 100명이 넘는다고 했어. 자신만의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고 자신이 만든 책을 타인과 공유하고 교류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그 마음이 너무 보기 좋더라. 그 작품이 만약에 재미가 없었다면 곧바로 장난이겠거니 싶어서 버려졌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어. 다른 사람이 읽기에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만든 사람은 정성을 다했을 거야. 완성되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건 그만큼의 열과 성이 담겨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도서관 책이 아닌 책이 서가에 있는 것을 알고서도 그 책을 꺼내어 바로 버리거나 처분하지 않고, 궁금해하며 읽어본 사서도 훌륭한 것 같아. 역시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편협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나다운 생각도 들었어. 그 많은 책들과 매일 함께 생활을 하면서도 또 새로운 책을 보면 읽어보고 싶어지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면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안내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서의 마음인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기다려지고 그 작품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마음과 비슷한 결인 것 같기도 하고.


너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문득, 마을버스에서 마주친 동네 도서관 사서가 생각났어. 나는 슈퍼 앞 정거장에서 탔고 그 사서는 아마도 두 정거장 전인 도서관 정류장에서 타고 내려왔을 거야. 버스에 올라서는데 사람들이 앞쪽에 모여 있어서 나는 뒷문 있는 곳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갔어. 책을 잔뜩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 처음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책에 눈길이 갔어. 그 사람은 뒷문 가까이에 있는 뒤쪽 좌석의 두 번째 자리의 창가 쪽에 앉아 있었어. 통로를 기준으로는 왼쪽이었고, 다리를 약간 들어 올려서 앉아야 하는 그런 - 아마도 그 아래에는 마을버스의 큰 바퀴가 있을 거야 - 자리에 앉아 있어서 그 책들이 눈에 보인 것 같아.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난 그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져.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책에 먼저 눈길이 가더라고. 그날도 마찬가지였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 사람의 옆모습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 한동안 도서관에서 희망 도서나 상호대차로 책을 대출하러 갈 때마다 마주쳤던 담당 직원, 그 사서였어. 단발머리에 안경을 끼고 있는 그녀는 약간은 어리숙해 보이기도 했고 사회 초년생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도서관 이용자들을 미소로 대한다는 걸 알 수도 있었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어. 그 사서는 아마도 퇴근 중이었을 거야. 약간 올라온 무릎 위에는 그녀의 가방과 책이 몇 권 쌓여있었어. 신간 서적들이었지. 어떤 책이었는지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신간이어서 눈여겨보던 책이었다는 게 어렴풋이 기억났어.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녀가 사서임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새로운 책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읽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활용해서 누구보다 먼저 책을 읽어 볼 수 있는 사람. 얼마나 행복할까.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으면 그 순간부터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다르게 변해간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 책과 관련된 분야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만 사서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네게도 자주 얘기했었지만,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해 왔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글쓰기도 잘 안되고 벌이도 변변치 않아서 이제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네가 책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 준 이후로 줄곧.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때는 사람들이 흔하게 도서관 학과로 얘기했던 문헌정보학과에 갈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네. 십 대는 선택의 폭도 좁고 생각의 깊이는 더 얕은 것 같아. 미래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목숨을 걸지. 그게 20대에도 이어지고 사회에 나와서도 막상 곤궁함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하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무모함도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때 그랬던 것 같아. 삶을 영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의식주조차도 제대로 마련하고 있지 못하는 거 보면 나의 무모함은 지금도 여전하네.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싶지만 어디서 지혜를 구해야 할지 통 모르겠어. 내가 고민스러워하면 적재적소에 조언해 주던 너도 옆에 없으니까 더 모르겠고, 난 너무 외롭고 두려워.


도서관에서 정식으로 일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고 사서가 되는 과정도 만만치가 않더라. 문헌정보학개론뿐 아니라 도서관 관리 및 독서 지도에 관련된 과목까지 공부해야 하고 쉽지 않은 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해도 자격증을 따야만 사서가 될 기본 자격을 갖추게 된대. 서류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정직원으로 사서가 된다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저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대출해 주고 또 그에 관련된 업무를 한다고, 사서라는 직업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도서관에 자주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서라는 직업군은 서비스업의 일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눈으로 보고 직접 느끼게 된 거지. 책만 다루는 게 아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잖아.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다양하겠어. 서비스업이라는 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업종을 뜻하잖아. 사람을 만나는 직업은 다 서비스군에 들어가는 것 같아. 식당에서 일하거나 항공 관련 업무를 하거나 모두가 다 서비스업종에 속한 사람들. 우와, 나 궁금해서 지금 서비스업을 사전에 검색해 봤는데 “일반적으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무형의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업종”을 말한대. 무형의 노무라는 말이 왠지 가슴 아프다.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 모일 거야. 일부는 책을 좋아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책을 읽기 위한 게 아니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가기도 하겠지.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을 이용하러 가기도 하고, 요즘에는 문화 강좌도 많고 다양한 행사도 도서관에서 진행되니까 그걸 이용하러만 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거야. 도서관이 책만 읽고 빌리는 장소가 아닌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그런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 예전에는 도서관이라고 칭했는데 언젠가부터 문화정보도서관이라고 앞에 ‘문화정보’라는 단어가 덧붙었어. 넌 도서관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몇 년에 걸쳐서 동네마다 작은도서관이 많이 생겼거든. 보통은 구에서 관리를 하는데 가만히 보면 무임 봉사자들로 대부분 이루어지는 것 같았어. 책을 사랑하고 가족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봉사일 거야. 작은도서관은 지역주민들 모임의 장이 되었고, 난 집 가까이에 작은도서관이 있어서 책을 빌리기도 읽기도 좋았어. 구립 도서관도 별로 멀지는 않지만 작은도서관만의 분위기가 좋아서 난 작은도서관에도 자주 갔었거든. 근데 작은도서관에 지원을 해주던 예산을 점점 줄이더니 2023년, 올해부터 작은도서관에 예산편성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서울시는 왜 그런 걸까, 말도 안 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야. 화가 나.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내가 어떤 무형의 서비스를 원하는 거겠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공받는 서비스는 사서를 포함한 직원들의 몫이겠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제공받은 서비스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고 화를 내며 상대를 탓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지만, 그릇된 행동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그것도 왠지 걱정이 되네.


도서관에 갔던 어느 날에는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소 아이 아빠로 보이는 한 남자가 사서에게 말을 건네더라고. “아까 전화받으신 분이죠? 너무 친절하세요.”, 물론 그 사람은 좋은 의도로 건네는 듯했지만,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어. 칭찬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듣는 사람의 기분이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겠다는 이상한 생각. 어감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성인 남자가 성인 여자에게 도서관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슬며시 건네는 뻔한 수작일 거라는 나의 과장된 망상이었을까? 이렇게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난리를 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야. 나같이 뭐든지 꼬아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럼에도 책에 둘러싸여서 책과 더 가까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는 있어. 너에게조차도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애써 변명하고 있다.


언젠가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책이 정말 좋아서 편집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대.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서 너무 좋고 책에 빠져 있는 것도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을 즐겁게 읽고 즐기기보다는 이 작품이나 이 작가를 통해서 어떻게 좋은 책으로 편집할 수 있을까, 새 책이 나오면 어떻게 홍보를 맡기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과 연결이 먼저 되더라고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너무 많은 책을 단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즐기는 것은 쉽지 않다고도 했어. 편집자의 인생. 부럽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는 힘들 것 같아. 작품과 작가의 가능성을 보고 편집으로 새로운 책을 만들어 내는 그런 센스를 나는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들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잘 몰라서 좋은 작품을 제대로 된 책으로 편집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더 미안해져서 숨고 싶을 것 같거든. 프로의 마음이 벌써부터 아니다. 아무래도 편집 일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아서 더 그런 거겠지. 사실 편집자의 삶이 조금은 궁금하기도 해.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어떨지 궁금하거든. 인터뷰를 읽고 관련된 책도 읽어 보긴 했는데 그건 이론이고 타인의 삶이니까. 나도 그런 삶을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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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쓰는 사람이잖아. 쓰기 위해서 읽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데 사서나 편집자 같은 타인의 삶과 직업이 자꾸 맴도는 걸 보면 요즘 쓸 힘이 많이 약해져 있는 것 같아. 나를 무한히 지지하고 열렬히 응원하던 너, 나의 중심, 나에게는 정아 네가 필요해.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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