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7

<신에게 보내는 편지>,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

by Chiara 라라

정아야,

엄마 집에서 편지 봉투를 발견했어.


편지가 들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봉투만. 보통 편지 봉투라고 하면은 서류나 편지나 돈 같은 걸 담는 하얀색 길쭉한 봉투를 생각하잖아. 짧은 쪽 한쪽 면이 뚫려 있어서 그곳에 필요한 것을 담은 뒤에 접어서 닫을 수 있는 그렇게 생긴 흰 봉투. 그런데 이건 흰 봉투가 아니어서 눈에 더 띄었던 것 같아. 봉투 끝이 빨갛고 파랗고 하얀 선으로 얇게 마무리가 되어 있었거든.


엄마 집에는 우리가 책장 용도로도 쓰던 나무로 된 서랍장이 아직도 있어. 엄마 결혼할 때 마련한 거라든지, 이사할 때 구입했던 거라든지 뭐 그랬을 거야. 언제부터 엄마가 갖고 있었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내 짧지 않은 기억에도 평생이어서 아주 오래된 가구일 거라고만 예상해. 지금도 위에는 몇 권의 책이 꽂혀 있고, 몇 장 없는 어린 시절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세워져 있어. 유일하게 엄마와 셋이서 같이 찍은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도 있어. 그날은 모두가 좀 편안해 보인다. 한쪽으로는 어디서 한 개 두 개 모았는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돌 같은 것도 주르륵 늘어서 있고, 우리 학교 다닐 때 과학실에서 사용했던 커다랗고 무게감 있는 손 돋보기 있잖아, 그것도 하나 있더라. 엄마도 이젠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가 되신 것 같아. 돋보기안경을 하나 맞춰 드려야 할까 봐. 분명히 됐다고 괜찮다고 필요 없다고 말씀하실 게 분명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늘 집안 어딘가에 있었던 서랍장이라 특별히 의식을 해보진 못했는데 이제 보니 세월의 때가 많이 타 있었어. 모서리 곳곳의 칠이 벗겨져서 나무가 드러나 있는 곳도 있고, 슬쩍 연필로 낙서가 되어 있는 곳도 있어. 우리가 뛰어다니며 부딪히기도 많이 했을 거고, 손으로 계속 쓰다듬고 기대고 그랬겠지. 그곳에 우리의 책들을 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기도 했을 텐데 이제는 그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는 않아. 무거운 책을 많이 올려놓지는 않았었는지 나무가 탄탄한 건지 선반이 아래로 휘어지지는 않았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아니면 내가 당연히 여겼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늘 집 어딘가에 있었기에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이 서랍장처럼 늘 그곳에 있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이 언제부터 비틀리고 찢기고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인식하게 되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야.


충전기였나, 뭔가를 찾기 위해서 아래에 있는 서랍을 뒤적거렸어. 맨 위에는 양말이랑 목 짧은 스타킹이 들어있었고, 두 번째 칸에는 돌잔치나 어떤 행사들이겠지, 그런 곳에서 받은 수건들이 있었어. 아직 쓰지 않아서 새 수건이기는 하지만 잊힌 지 오래된 존재만이 지니는 그 특유의 냄새가 배어있는 그런 수건들이 납작하게 말라 있더라. 세 번째 칸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들. 그곳에 있나 한참을 뒤적거렸는데도 내가 원하는 건 발견하지 못했고 맨 아래 칸으로 손을 옮겼어. 마지막 서랍은 덜컥거리며 잘 열리지도 않더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버려져 있었던 서랍 같았는데 열고 보니 의외로 반듯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어. 어떤 종이 뭉치가 안쪽 깊숙이 있었고, 그 앞에는 [유리용] ‘다이야몬드표. 유리. 에스테지. 비니루. 금속. 기타’라고 쓰여 있는 작고 긴 박스가 있었어. 품명은 색연필. 제조년월일은 1989년 12월. 와아, 이 색연필 얼마나 오래된 거야, 감탄하면서 열어봤는데 껍질 벗기듯 돌돌돌돌 말아서 안에 있는 색연필이 모습을 보이는 남색 색연필 한 개가 있었어. 다 쓰지도 않았는데 돌돌 벗기는 재미로 색연필 부분만 길게 드러나게 만들기도 했었지 우리. 요즘에도 크게 크게 종이에 확인하며 쓸 일이 있으면 이렇게 생긴 빨간색 색연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무언가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남색이니까. 그리고 모나미 사인펜이 색색으로 들어 있었어.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 그리고 빨간색. 또 볼펜 똥이 많이 나오는 흑색 모나미 볼펜도 세 개가 같이 들어 있었어. 상자를 꺼내 들었을 때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어있어서 그런 거였더라. 다 나오는 펜들인가, 확인해 보지는 않았네. 그 상자 앞에는 연필들이 있었어. 손으로 깎은 연필들. 뒤에 지우개가 달려있는 연필도 있었고, 짧은 것도 중간 길이도 또 새 연필도 있었어. 중학교 때까지는 연필을 종종 사용했지 아마? 고등학생 때부터는 샤프를 더 많이 사용했던 것 같고. 요즘은 연필로 쓸 때 사각 거리는 그 느낌이 다시 좋아졌어. 연필의 나무 냄새도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 요즘 연필값 엄청 비싼 거 알아? 물론 유명 브랜드의 연필이어서 비싼 거겠지만, 문구점의 어린이용 연필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나도 참, 연필을 진짜 좋아하는 건지 그 브랜드의 연필 디자인이 좋아서 연필이 좋다고 우기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서랍 속의 연필들은 우리가 쓰던 것 같지는 않아. 그곳 안쪽에서 봉투들을 발견했어. 무더기로 묶여 있는 봉투 더미들을. 처음에는 책이나 수첩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봉투더라고. 위에는 평범한 흰색 봉투 몇 장이 있었고, 아래에는 누런색 얇은 봉투들이 있었어. 그 사이에서 빨갛고 파랗고 하얀색의 테두리가 더미로 보였어. 손을 뻗어 그 봉투를 꺼내니까 나머지들이 그 작은 공간 안에서 평정을 잃고 스륵 무너지더라. 내가 무언가를 방해한 듯한, 미지의 공간을 침입한 듯한 불안감이 슬쩍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눈치를 보게 되었어. 겨우 봉투일 뿐인데, 엄마한테 이게 뭐냐고 물어봐도 괜찮았을 텐데 나를 둘러싼 그 불안감은 뭐였을까?


그 봉투를 하나 꺼내 들었어. 앞과 뒤 모두 테두리는 빨강, 파랑, 하양. 뒷면에는 에어 메일이라고 쓰여 있었어. VIA AIR MAIL. 에어 메일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 외국에 편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봉툰가 봐. 이런 봉투를 한 묶음이나 발견했어.


이 봉투는 짧은 면이 아니라 긴 면으로 열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봉투 끝에 물을 묻히면 풀칠이 되는 것 같았어. 봉투를 닫는 윗면이 반짝거렸거든. 나무로 된 서랍장 앞에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침을 발라서 지그시 누르며 편지를 봉하는 엄마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 같았어. 근데 그건 아마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나 영화 [써니] 속 한 장면일지도 몰라. 엄마도 그 시대를 누구보다도 우직하게 견디며 살았을 테니까. 지금의 우리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시대를 살아온 엄마. 엄마의 낙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봉투를 보면서 엄마는 도대체 어디에 편지를 보내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졌어. 어쩌면 엄마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용했던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많은 편지를 외국으로 보냈을 수도 있겠어. 어디에도 받은 편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고, 그렇다고 엄마한테 물어보기도 왠지 망설여지는 이상한 감정이야. 그러고 보니 한참 전에 책장 어딘가에서 펜팔 책을 발견했던 적이 있었어. 요즘 누가 이렇게 펜팔로 편지를 쓰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옛날에는 이런 게 있었구나 그런 생각도 같이 했었던 것 같아. 우리도 학교 다닐 때에는 손편지도 쪽지도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종이에 적어서 건네기도 했었는데. 아직도 옷장 한 구석에는 그 쪽지랑 편지들이 담긴 상자가 있어. 이사를 할 때마다 조금씩 정리를 했는데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편지들이야. 선물로 받은 쿠키를 야금야금 다 먹고서 그 예쁜 통에 담아놨어. 가끔 꺼내서 읽어보면 별거 아닌데도 그냥 웃음이 나고 그러더라. 어버이날과 생일에 엄마한테 쓴 카드나 편지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한참 전에 다 사라져 버렸을까.


그 펜팔 책은 표지가 초록색이었고 너무 촌스럽고 오래돼 보여서 사진으로도 찍어 놨던 기억이 있어. 찾아봐야겠다. 예전에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 외국인과 펜팔을 하기도 했다는 말도 있고, 해외에 나가는 경험이 흔하지는 않았으니까 호기심으로 펜팔을 했다는 말도 들어봤어. 이 책도 영어로 펜팔을 하는 방법이 적혀있었어. 사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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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해외펜팔 英文 편지투 Letter Writing For Beginner>. 일신서적공사라는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의 책이야. 책 커버는 쨍한 초록색 배경에 세계지도, 영어로 쓴 편지와 내가 찾은 봉투 같은 빨강 파랑 흰색 선이 그려져 있는 테두리의 편지 봉투, 그리고 다양한 모양의 우표들과 잉크, 또 타자기가 있어. 그때는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찬찬히 다시 보니까 그림만으로도 왠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아. 엄마도 그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까 싶다. 굉장히 오래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1983년에 발행된 책인 거 보면 딱 엄마의 20대였네. 종이가 바래고 종이 냄새가 많이 나기는 했지만 새 책처럼 책 안에는 밑줄 하나 그어져 있지 않았어. 말린 나뭇잎도 발견되지 않았고, 흔한 책갈피 하나 꽂혀있지 않았어.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우선 자기소개를 하겠지.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까 좋아하는 거나 취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겠다. 크리스마스 같이 외국이나 한국 공통으로 기념하는 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낼 것 같아. 그리고 조금씩 가까워진다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에 대해서 조금 깊게 이야기를 하고 외국은 어떤지 궁금해하겠지. 오히려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에게는 꺼내지 못했던 마음속에 있는 말을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특히 상대는 해외에 있고 서로가 하는 대화는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까 이 사람이 나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도 힘들 테고 만날 가능성은 더욱 적을 테니까. 편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외국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 같아.


편지를 쓴다는 건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지도 몰라. 상대에게 직접 전해지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글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정리를 하는 것도 있을 것 같고. 요즘에는 직접 손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 우체국에서도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는 소포 업무가 많다고 하더라. 편지도 대부분 상대가 받았는지 알지 못하는 일반 우편보다 등기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일반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려고 하면 꼭 다시 한번 물어봐. 일반 우편은 편지가 분실이 되어도 알 수가 없고, 상대가 받았는지도 확인을 할 수가 없다면서. 나는 그런 편지를 여러 번 부쳐 보았는데 우체국 직원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한 번 더 쳐다보기도 하더라. 도달할 수 없는 편지나 분실되는 편지는 보내질 자격조차 가질 수 없는 걸까. 그건 아닐 텐데.


나는 너에게 매주 편지를 쓰면서 이 편지가 진짜 너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어. 당연히 가 닿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진짜 붙이지는 못 하잖아.


엄마의 봉투에는 에어 메일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지 내가? 공기를 통해서 편지가 어디로든지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편지라는 물성 자체보다 그 말들과 그 속에 담긴 마음들이 어디로든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에어는 공기라는 단어잖아. 공기를 통해서 어디든지 간다.


에어 메일이 왜 해외로 보내는 편지일까, 일차원적으로 생각해 보면 편지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갈 때 바다를 통해서 또 육지를 통해서 건너가잖아, 바다든 육지든 사람이 걸어서 가기는 힘든 그런 공간이 대부분이잖아, 그래서 에어라는 말을 사용한 거 같아. 공기를 통해서 공중으로 건너간다고.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좋네, 에어, 공기. 그래, 공기를 통해서 어떤 자그마한 기운이라도, 아니, 공기를 통해서 나의 모든 것이 너에게 닿을 수 있을 거야, 정아 너에게. 미아 나로부터 정아 너에게, 가 닿을 수 있을 거라 나는 믿어.


엄마도 아마 나 같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편지를 썼을 거야. 몇 날 며칠이 걸리고 한 두 달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보내는 거야. 상대가 제대로 편지를 받았을지도 알 수 없고, 답장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자신의 마음이 전해질 거라는 믿음으로 쓰는 편지.


오래전에 내가 너에게 추천해 주었던 책이 있는데 너는 읽기 싫다고 했어. <신에게 보내는 편지>. 종교 서적은 아니지만 책 제목에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어. 또 불치병에 걸린 아이가, 어른도 아니고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것도 싫다고 했어. 물론 네가 한 말이 다 맞아. 나도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나오는 건 싫어. 마음이 더 아프잖아. 그런데 말이야, 내가 너한테 이 책을 추천해 준 이유 중의 하나는 너무나 유쾌한 장면도 많기 때문이야. 나중에 또 다른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 찾아보았을 때 알게 된 건데,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 더라. 불치병으로 입원해 있는 열 살 소년 ‘오스카’와 그 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봉사를 하러 오는 최고령 ‘장미 할머니’가 중심인물이거든. 그 제목이 너무 잘 어울려서 왜 바꿨나 싶었어. 표지도 바뀌고 제목도 바뀌어서 두 번이나 출간되었지만 결국에는 품절 도서야. 이 책은 오스카가 하느님께 보내는 열세 통의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고 아주 얇아. 하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지. 왜 이 책이 떠올랐냐면, 매주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의 간절한 마음과 오래전 해외로 편지를 쓰면서 간절했을 엄마의 그 마음이 떠올라서야. 나중에 너에게 이 책을 꼭 읽어주겠어. 이 책을 읽어주고 함께 엉엉 울어버릴 거야. 소리 내어서. 그때는 너도 싫다고 하지 말고 나를 따라줘야 해. 알겠지?


아, 맞다, 이 책이 연극으로도 나왔다고 들었었는데 그때만 했던 건지 그 이후로는 찾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배우 김혜자 씨가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했다고 했어. 궁금하다.


편지는 그리움의 색채가 진한 것 같아.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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