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세상>, 윤여림 글. 이명하 그림
정아에게,
어제는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거기에서 누군가와 마주쳤거든.
혼자 살다 보면 쓰레기에 예민해지는 것 같아. 나는 너처럼 음식을 해 먹는 사람이 아니니까 특히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없는 편이야. 그래서 음식을 먹더라도 남기지 않도록 하고, 어쩌다 남게 된 것이 있다면, 바로 처리해서 음식물이 자주 쌓이지는 않아. 그런데 이번 주에는 어쩌다가 음식물이 조금 쌓였더라고. 아직은 날이 조금 선선해서 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새 곰팡이가 피어버린 무김치도 있어서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 나는 반찬이 담긴 통을 그대로 가지고 나갔어. 뚜껑을 열면 집안에 냄새가 심해질 것 같아서, 투명한 그릇을 통해서 곰팡이를 발견하고도 꺼내지 않고 그냥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거든. 반찬 그릇이랑 조금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밖에 나갔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수거함은 두 개의 통으로 되어있고, 카드를 대면 뚜껑이 열려. 내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 무게가 나오고, 한 달이 지났을 때 그 무게만큼 내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그런 시스템이야. 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버리는 통이 없고 음식물 쓰레기 전용 봉지에 담아놨다가 꽉 차면 내놓아야 해서 불편했는데 이번에 살게 된 집은 이렇게 수거통이 따로 있어서 그건 좀 편리하고 좋아. 앞으로도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말아야 할 텐데.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의 뚜껑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어. ‘비닐봉지와 음식물을 분리해서 “음식물 쓰레기만” 버려주세요’. “음식물 쓰레기만”이라는 단어에 큰 따옴표가 되어 있어. 사람들은 보통 비닐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는 것 같아.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옆에는 비닐을 버리는 통도 따로 있거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함에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왔던 그 비닐을 옆의 통에 따로 버리는 거야. 그렇게까지 배려를 해주고 편리를 봐주는데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나 봐. 저런 말이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뚜껑에 적혀있는 걸 보면. 어쩌다가 손에서 비닐이 미끄러져서 수거함 속으로 딸려 들어갈 수는 있다고 생각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고, 자신의 더러움은 생각하지 않아도 쓰레기라는 말이 들어가면 더럽다는 생각에 몸이 움츠러들게 되는 게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리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하거든. 그런 심리가 있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된 거라고, 맞는 거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야. 그냥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거지. 물론 나도 가끔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흠칫 놀라기도 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나도 모르는 조건반사적인 그런 행동으로 인해서 타인의 감정에, 혹은 물질적으로 정말로 피해가 갈 수도 있잖아. 쓰레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것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만들어 낸 쓰레기이니 만큼 -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를 얘기하고 있는 거야 – 제대로 버리기만이라도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마주쳤다는 사람. 그 사람은 내 왼편에서 불쑥 나타났어.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앞에 차가 있어서 그 사람은 왼쪽으로 온 거고 나는 오른쪽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딱 마주치게 된 상황이었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사람과 마주쳐 본 건 또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자연스럽게 왼쪽 통에 그 사람이 카드를 대고, 오른쪽 통에 나는 내 카드를 댔지. 그랬더니 비슷한 시간에 수거함 뚜껑이 열렸어. 그랬는데 글쎄, 그 사람은 들고 있던 비닐을 그 안에 그냥 쓱 던져버리고 가는 거 있지. 담배를 물고서 말이야.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사람이 지나간 뒤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어. 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말이야. 뚜껑에 또박또박 쓰여 있잖아. ‘비닐봉지와 음식물을 분리해서 “음식물 쓰레기만” 버려주세요’. 큰 따옴표를 이용해서 강조한 문장이 이렇게 쓰여 있잖아. 그런데도 그렇게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봉지 채로 던져 넣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러지.
그 사람을 불러다가 뚜껑에 쓰인 글씨를 읽게 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사실 나중에 생각난 거고, 나는 어차피 그럴 용기도 없었겠지만, 그냥 붙박이가 되어 허망하게 그 뒤만 쳐다보았어. 정아야,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어. 그 통 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 채로 버리면 그 비닐은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함에 따로 버리는 이유를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겠지. 그러면 당연히 음식물 쓰레기를 제대로 버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거겠지. 물론 자신이 버리고 모은 것도 아닐 거야. 누군가가, 식구가 혹은 아내가 시켜서 억지로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비닐을 가지고 나온 거겠지. 담배나 한 대 피워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진 채로.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정아 너도 알고 있다시피, 나는 길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던 걸 버리는 사람을 광적으로 싫어해. 거리를 청소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그런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때려주고 싶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넌 기억나니? 내가 언제부터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특히 마시고 있던 음료수 캔이나 커피가 남겨진 통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도 잘 모르겠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나는 자기가 만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게 싫었던 것 같아. 타인의 눈에 보이는 그런 장소나 잘 보이지 않는다고 구석진 곳에 버리는 그런 행동이 얼마나 마음에 안 들던지. 너무 무책임하잖아. 요즘은 깨끗한 거리를 만드느니 어쩌니 하면서 쓰레기통을 많이 없애 버렸는데, 전에는 곳곳에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통들이 많았거든. 근데도 그 몇 발자국을 더 걷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곳에 아무 데나 자신의 손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레기를 두고 가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정아 너는 일회용품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특히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걸 좋아해. 이유는 단 하나, 사용이 편리하다는 것. 혼자 살면서 일회용품의 편리함에 길들여 진거야. 집에서 해 먹는 밥을 좋아하고 요리도 잘 하지만 그거랑은 또 다르더라고. 음식을 하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한데 그 재료들을 보관하려면 일회용품들을 십분 활용하는 게 확실히 편리한 점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까지 나는 너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했어. 나의 이중적인 모습 중의 하나인데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게는 적대감을 드러내지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관대해진다는 것. 어쩌면 조금이 아니라 많이 관대할지도 몰라. 관대라는 말을 내가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게 맞다면 말이야. 그렇다고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아. 나라도 더 열심히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 네가 빨대를 두 개 사용하면 나는 사용하지 않거나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지. 근데 스테인리스 빨대를 휴대하고 다니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야. 외출할 때에는 수저 주머니처럼 기다란 빨대용 헝겊 주머니가 따로 있어서 거기에 넣어가지만 아무래도 빨대를 사용하려면 꺼내서 한번 닦아야 하고, 그러면 또 물 낭비가 되는 악순환도 있겠지. 세상에 쉬운 게 하나 없어.
나는 미래를 희망하지 않아. 미래를 위해서, 지구를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우리 자손들을 위해서, 또 후대를 위해서, 그런 거창한 마음을 가지고 다회용품 사용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야.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 걸까. 사실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쓰레기는 내 편한 대로 아무 데나 버리면 삶은 훨씬 편할 거야. 그런데도 나는 너에게 약간의 잔소리를 해대면서 누가 보면 위대한 환경운동가라도 되는 듯이 에코프랜들리를 실천하려고 하고 있지. 이것도 난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 같아. 내 눈이 바라보는 곳에 그냥 기분 좋은 것만 있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 내가 앉고 싶은 의자나 혹은 쉬어갈 수 있는 곳에 편안히 기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에코프랜들리와 프랜들리 하게 되었던 것 같은데, 친해진 이후에는 북극곰도 눈에 들어오고 산불도 눈에 들어오고 쓰레기 산과 이상 기후 현상도 눈에 들어오더라고. 여름은 지금도 너무 더워서 이것보다 더 더워지지는 않으면 좋겠어. 우리가 태어난 겨울은 너무 추운 것도 싫지만 겨울답게 적당히 춥고 눈 내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기를 바라. 가을에는 약간은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면서 네가 좋아하는 단풍 구경도 실컷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봄 동안, 오래오래 꽃이 피면 네가 참 기뻐할 텐데.
언젠가 너네 집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커다란 분리수거 틀이 놓여 있었어. 야외에서 본 것만큼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엉덩이정도 높이까지 올라오는 덩치가 꽤 있는 프레임이었어. 거기에는 커다란 비닐봉지 네 개가 끼워져 있었는데, 하나는 비닐, 하나는 플라스틱, 또 하나는 스티로폼, 나머지 하나는 종이, 이렇게 네 가지를 분리하는데 쓰는지 그런 분리수거 용품들이 몇 개씩 들어있더라. 놀라서 이건 또 뭐냐고 묻는 나에게, 당근 마켓에서 거래를 하나 했는데 필요하면 이것도 가져가라고 해서 얼른 가져왔다면서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너를 어떻게 미워하겠니. 당황스럽기는 했는데, 나에게 칭찬을 잔뜩 받고 싶어 하는 너의 표정을 보며 나의 동공은 흔들렸지만, 이제는 조금 더 분리수거 잘할 수 있겠네, 칭찬 아닌 칭찬의 말을 해 주었어. 내가 빨대를 안 쓸 거라고 꺼내지 말라고 말을 하면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도로 넣었던 너의 표정도 기억난다. 이렇게 말은 해도 나도 휴지는 못 끊겠더라. 특히 카페에서 쓰고 남은 휴지를 집에 가져오면 이곳저곳에 유용하게 쓰게 돼. 네가 살던 집은 분리수거가 불편해서 그 큰 비닐이 한참 차고 넘치도록 모으더니만 결국에는 그 분리수거 틀도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지. 아마도 다시 당근 마켓에 올려버렸을 거야. 다른 물건과 함께 보냈거나. 쓰레기를 모으는 건 쉬워도 처리하는 건 정말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야. 집으로 배달되는 택배 박스와 그 안에 있는 비닐과 스티로폼만 해도 엄청난 양이지. 배달을 안 하려고 해도 요즘은 인터넷이 더 저렴한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를 매번 대기도 해.
내 책장에 <상자 세상>이라는 그림책이 있어. 내가 맨날 책 얘기, 영화 얘기만 하고 그림책 얘기는 별로 한 적이 없지? 요 몇 년 동안에는 그림책에서 많은 위안을 얻고 있어. 이 그림책은 우연히 알게 된 거고, 나를 위한 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야. 나도 그림책을 알기 전에는 대다수 보통의 어른들처럼 그림책은 어린이들만 보는 책이라고 생각했어. 그림책을 보면서 이제는 나도 변했지. 그림책 속의 그림들을 보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특별한 걸 느끼고, 어른들은 어른들이 살아온 그 세월만큼 느끼는 것들이 다른데도, 그걸 모르는 어른들이 많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만화책은 어른이 되어서도 많이 읽으면서 말이야. 네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내가 갖다 준 책도 만화책이었는데. 그림책을 좀 많이 읽어줄 걸 그랬어, 그림도 같이 보면서. 그게 참 아쉽네, 이제 생각해 보니.
<상자 세상>은 물건만을 배달하고 창문 밖으로 버려진 택배 상자들의 이야기야. 택배 상자들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는데, 그렇게 하늘에 닿을 듯이 쌓이다가 배고픔을 느끼고 모든 것을 먹어 치우기 시작해. 소파도, 아파트도, 자동차도, 나무도, 공원도 모두. 배도 부르고 심심해진 상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물건들을 싣고 다녔는지 얘기하는 기억 놀이를 하는데,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나와. 그 기억 놀이를 보며 네가 인터넷으로 구입했던 소소한 물건들도 떠올랐어. USB 전원을 사용하는 발열 컵받침이라든지 선인장 화분 모양의 볼펜이라든지, 정말 빽빽하게 한가득 들어있었던 빨대 묶음, 이런 것들을 저렴하다며 기쁜 마음으로 주문하곤 했지. 그런 걸 또 나에게 나누어 주면서 좋아하던 너. 난 아직도 그 물건들을 잘 가지고 있어. 내가 쓰는 머그는 바닥 높이가 좀 있어서 이 발열 컵받침으로는 따뜻함이 잘 유지되지 않아. 사용은 안 하고 있지만 그 그림이 귀여워서 장식용으로 책상 위에 두고 있어. 선인장 모양 볼펜은 세워 놓으면 자꾸 넘어지고 또 외출할 때에는 가지고 나가는 게 불편하지만 내 손이 닿는 곳에 놓고 여전히 잘 쓰고 있단다. 너의 흔적들이 내 방안에 많이 있어. 집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니까 요즘 인터넷을 살펴보면 특이한 물건들도 많이 개발되는 것 같아.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오면, 밤이 되니까 커다란 달을 바라보며 언젠가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는데, 한 상자가 꿈에서 나무였다는 거야. 그랬더니 다른 상자들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다고 얘기를 하면서 상자들은 자신들 스스로 나무를 만들어 보자고 해. 우리 한 번 같이 나무가 되어 볼까? 좋아! 상자로 만들어진 커다란 나무들. 하늘에 닿을 것 같이 커다란 나무들로 세상이 만들어져.
이건 상자들의 꿈이면서 우리 인간들이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어. 상자를 만들기 위해, 종이를 만들기 위해, 많은 나무들을 베잖아. 종이를 많이 쓰는 나도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상자들의 마음을, 종이들의 마음을 또 그들을 위해 자신들을 내어주는 나무들의 마음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아야, 나,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야겠어.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겨자씨 한 알 만하게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 무언가를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내용과 그림으로. 그림은 나보다 네가 나을 것 같은데, 네가 없는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