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8

<책들의 부엌>, 김지혜

by Chiara 라라

정아야,

향이 좋은 커피를 진하게 한 잔 내려서 빵이랑 같이 아침으로 먹고 있어.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점심에 가까운 시간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에 드립백 몇 개를 선물 받았는데, 진하고 향도 좋다. 나는 또 네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갑자기 커피에 빠졌던 너를. 커피는 내가 좋아했고 너는 시원한 음료를 좋아했잖아. 카페에 가도 마트에 가도 집에서 냉장고를 열어도 나는 커피를 우선시했고, 너는 약간은 단 맛이 들어간 주스 같은 음료를 좋아했어. 우유도 나는 커피 우유나 라테로 마시는 우유 말고는 잘 안 마셨는데 너는 우유나 마시는 요거트, 요구르트도 좋아해서 거의 매일 마시곤 했지. 그러던 어느 여름날 한 카페에서 네 몫의 시원한 음료를 다 마신 넌 천천히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 모금만, 달라고 했어. 커피 초심자는 보통 믹스커피나 카페모카처럼 달고 초콜릿 향이 들어간 커피를 좋아해. 그다음에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시다가 라테를 마시고 블랙,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지. 최종으로는 에스프레소로 넘어가고. 조금씩 커피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찾아가는 여정 같아.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믹스커피와 라테를 좋아했는데 대학에 와서는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라테나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것 같아. 에스프레소도 좋은데 너무 몇 모금에 사라지니까 – 사실 한 모금에 마시는 게 에스프레소이기는 하지만 나는 어느 것을 먹든지 마시든지 다 천천히 조금씩 먹고 마시니까 에스프레소라고 달라지진 않더라고 – 에스프레소는 잘 마시지 않게 된 것 같아. 금액 대비 양도 적어서 불만이기도 하고. 아무튼, 다디단 것만 좋아하던 네가 나의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봐. 목마름이 싹 사라졌다나 뭐라나 하면서 신세계를 만난 것 같이 호들갑을 떨었어. 그때부터였어, 네가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게.


다른 음료를 계속 좋아하고 즐겨 마시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 넌 커피도 마셨는데,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했어. 그건 시원하기도 하고 칼로리도 없다는 게 큰 이유 중의 하나였어. 카페마다 사용하는 원두가 다르니까 조금씩 미세한 맛과 향의 차이도 너는 구분해 내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카페를 – 비싼 카페는 잘 가지 않았고 체인으로 운영되는 카페를 중심으로 – 찾아다니면서 너의 입맛을 시험해 보았지.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아서 너와 함께 다니면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는 향이 좋고 산미가 있어서 신 맛이 나고, 케냐 AA도 산미가 있기는 하지만 바디감도 있어서 조금 쓴 맛이 같이 나고, 과테말라 안티구아는 산미는 별로 없고 고소한 맛이 많이 나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원두 중의 하나라고 얘기를 해주기도 했어. 콜롬비아 수프리모는 믹스 커피 이름으로도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부드러워서 크레마로 광고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도 얘기해 주었지. 커피를 좋아하고 늘 관심 있게 지켜보고는 있지만 막상 머릿속에 지식으로 있는 건 나도 많지 않아서 기본적인 것만 얘기해 주었던 것 같아. 근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 지식들도 많아서 우리 둘 다 혼란스러워하거나 말도 안 된다며 까르르 웃거나 했던 기억도 우리 많다, 그렇지. 너는 내 얘기를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했지만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그냥, 아, 시원해, 목마름이 가셨어, 그게 너무 좋다, 이런 반응이었거든. 후에 드립커피라는 걸 알게 된 너는 갑자기 집에서 마시면 그 비싼 커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다고 하면서 당근을 뒤적뒤적거렸어. 홈카페 도구를 구비하고 싶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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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앞코가 길고 뾰족한 드립 포트를 저렴하게 구입하고, 원두를 갈 수 있는 원두분쇄기도 작은 걸로 구입했어. 요리할 때에는 손 대중으로 많이 하더니만 어디에서 들었는지 커피의 일관된 맛을 위해서는 계량스푼이 필요하다면서 서랍 한구석에 있던 계량스푼도 꺼내고, 드립 커피의 필수품인 드리퍼도 - 나에게 친환경을 강조하며 -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다면서 스테인리스 드리퍼로 구입했더라고. 커피는 한 번에 최소 두 잔은 내려 마실 것 같다면서 커피를 받아주는 용기인 드립 서버도 비커처럼 투명하고 테두리가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닮은 빨간색 예쁜 걸로 골랐어. 이렇게 핸드 드립용 커피 추출 도구를 하나씩 하나씩 늘려 나갔지. 집 한 구석에 커피를 내릴 수 있도록 탁자를 하나 만들어서 도구를 늘어놓았고, 때가 많이 타지 않게 도톰하고 예쁜 페브릭 테이블 매트도 하나 깔아 놓았어. 홈카페 완성! 거기에서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려주는 네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난. 네 홈카페가 완성되고 나서 얼마 후에 내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는데 넌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 내가 물을 조금씩 돌려가면서 드리퍼에 붙은 원두가 아래로 내려가도록, 그래서 크레마가 더 풍부하게 생기도록 그렇게 했거든. 넌 유튜브를 통해서 내리는 걸 많이 봤는데 이렇게 내리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어. 난 어디에서 보고 배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드립커피 전문점에서 이렇게 돌려서 천천히 내리는 걸 본 적이 있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따라 하는 거라고 얘기해 주었지. 뭐가 맞는지는 우리 둘 다 아무도 몰랐어. 바리스타 교육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굳이 돈을 써 가면서까지 그렇게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거든. 나중에 카페를 하게 된다면 우리 북카페를 열자, 미아 넌 내 옆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어, 카페 한쪽에서는 책 관련 강의나 글쓰기 강의를 하고 북클럽 모임도 여는 거야, 라며 즐거운 대화도 나누었어. 카페에서 커피를 내릴 사람은 너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어도 커피 맛이 좋으면 상관없을 거라는 얘기도 하면서 우리는 하하 호호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날이었다. 난 아직도 북카페를 꿈꿔. 네가 북카페를 경영하고 나는 그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꿈을 꿔. 네가 내려준 향기 좋고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미소를 짓는 거지. 넌 그 옆에서 분주히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겠지만 역시 네가 경영을 하는 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도 할 거야. 난 경영이라는 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돈은 네가 더 잘 벌 수 있고, 어떤 거 든지 융통성 있게 더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너라는 건 너도나도 잘 알고 있잖아. 서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야. 잘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상이니. 그런 일상은 이제 더 이상 찾아올 수 없는 걸까. 꿈속에서라도 매일매일 따뜻한 커피 향이 나면 좋겠다. 꿈을 꾼다고는 하지만 생각만 하고 있고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정말로 상상이 가지 않아.


아, 작년에 한동안 사람들이 많이 읽은 소설이 있어. 제목은 <책들의 부엌>. 제목처럼 책과 관련된 소설이야. 북카페와 북스테이 이야기인데, - 북스테이는 처음 들어보려나? 템플스테이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절에 머물면서 자연을 느끼고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게 템플스테이라면 북스테이는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책도 읽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일종의 게스트 하우스나 호텔 같은 숙박 시설인데 책이 많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책과 관련된 이벤트나 카페, 서점 등이 함께 하는 곳, 굉장히 이상적인 장소지? 예전에 내가 얘기 한 적 있는데,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는 ‘지지향’이라는 게스트 하우스도 북스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지향’ 입구에는 Paju Bookcity Library Stay JIJIHYANG이라고 쓰여 있어. 북스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지지향’이 북스테이의 초기 모델이 아닐까 싶다. - 사람들이 이런 로망을 갖고 있어서 이 소설이 더 인기가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나는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어. 처음에는 표지가 별로 끌리지 않아서, 뭐지, 신간인가, 하고 넘어갔었거든. 얼마 뒤 도서관에 갔는데 눈에 딱 들어오더라. 사람들이 열광하거나 베스트셀러에 올라온 책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 비뚤어진 성격으로 봐서는 아주 한참 지난 후에, 몇 년 후에나 읽을 가능성이 아주 커. 근데 내 눈에 이 책이 딱 들어온 거야. 책을 꺼내서 표지를 살펴보니까 깔끔한 이 층집 발코니에 유니폼같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이 밖을 향해 누군가에게 – 나에게 – 인사를 건네고 있었어. 그 아래에는 Book’s Kitchen이라고 자연스럽게 글씨가 쓰여 있었고. 집 뒤로는 푸른 산과 무성한 나무들, 집 앞에는 벚꽃이나 매화 같이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나무와 빽빽하게 책이 꼽혀있는 책장이 양 옆으로 있었어. 깔끔하다. 표지 구석구석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왜 부엌일까 궁금해졌어. 음식이 아니라 책으로 이루어진 부엌이라니. 그래서 읽게 된 거야. 우리가 대화 나누던 그런 이야기가 소설 속에 있었어. 책, 커피, 자연, 그리고 사람. 읽으면서 그 분위기를 상상하니까 기분이 좋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너와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이 아프기도 했어. 소설에서 처럼 그렇게 따뜻하게 기쁘게 행복하게 지내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있는 모습을 자꾸자꾸 그려보도록 할게.


네가 쓰던 테두리가 투명하게 빨간 비커 모양의 드립 서버를 내가 예쁘다고 자꾸 쓰다듬었었나 봐. 다음에 갔을 때 네가 작은 박스를 하나 꺼내 주었는데, 똑같은 색의 드립 서버였어. 나를 위해서 샀다고 말하면서. 얼마나 기쁘던지. 그리고 또 스테인리스 드리퍼도 같이 주면서, 오래오래 사용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어. 일회용 여과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쓰레기도 덜 생기고 환경에도 도움이 될 거라며 자랑스러움 한가득 담겨있는 표정으로 으쓱해하길래 칭찬을 담뿍해 주었단다. 평소에는 늘 언니같이 의젓하게 나를 리드하면서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동생이 맞다니까. 일용품은 되도록이면 지양하고, 너한테도 가끔은 쓰지 못하도록 신경 쓰이게 하는 내가 귀찮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을 텐데 이런 나를 위한 너의 배려가 고마웠어. 정아 넌 참 순수한 사람이야. 문제는 우리 집에 원두 그라인더가 없었다는 거야. 원두는 갈아서 바로 내려야 향이 더 좋은데, 미리 갈아 놓으면 향이 금방 사라질 텐데, 아쉬워하면서도 원두를 종류별로 갈아서 유리병에 꽉 밀봉해서 담아주었어. 집에 가지고 온 그 원두를 몇 번이고 내려 마셨지. 어차피 자주 가니까 갈 때마다 네가 갈아준 원두를 가지고 오기도 했고, 가끔은 분쇄되어 있는 원두를 구입해서 내려 마시기도 했어.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게 귀찮아서 물을 한가득 부어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또다시 한가득 부어놓고 내려서 마시기도 했는데, 그렇게라도 종종 마셨었는데,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아. 한번 정리해서 올려놓았다가 잘 안 쓰니까 먼지가 타서 상자 안에 넣게 되었거든. 그렇게 정리해 놓은 도구들을 꺼내서 하나씩 다시 씻어서 사용하는 게 귀찮아지기도 했고 쓸 때마다 네 생각도 자꾸 나고 해서 요즘에는 드립백이나 인스턴트커피로 간단히 마시고 있어.


너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지. 커피를 마시면 평소보다 심장이 더 두근거리는 것 같고 깨어있는 시간도 긴 것 같다는 그런 이상한 느낌. 너무 당연한 말이면서도 본인은 처음 느끼는 그런 신기한 기분. 난 커피를 마셔도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늘 좋아했으니까 깨닫지 못했던 건데, 네가 커피를 마시고 그런 반응이 있다는 걸 보면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이었던 거야. 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으니까 그런 기분을 잘 몰랐는데 이제는 마시니까 카페인에 반응하는 몸을 느끼게 된 거지. 정아 너는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는 터라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빨랐는데 커피를 마시면서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난 거야. 평소에 내가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혼자서 놀고 있으면 꾸벅꾸벅 졸면서 넌 날 부러워했어.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나를 또 부러워하게 된 우리 정아. 커피보다는 카페인이 적게 함유되어 있지만 티를 진하게 마셔도 뭔가가 조금은 몸에서 반응이 왔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지. 그전에는 미처 알지도 못했고 생각도 하지 못했었던 그런 사실들이었어.


그렇게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서도 너는 커피를 포기하지 않았어. 오히려 디카페인 원두를 찾아 나섰지. 마음에 쏙 들게 홈카페를 만들어 놓았던 것도 커피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였겠지만,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릴 때 나는 그 향이 너무 좋아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했어. 근데 그거 알아? 원두를 내려서 바로 마시는 뜨거운 커피가 향이 정말 좋거든, 나는 그래서 보통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곤 하잖아.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더 좋아하고. 근데 너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 얼죽아였어. 여름이든 겨울이든 무조건 아이스로 마셨지. 그 뜨겁고 향 좋은 커피를 바로 얼음컵으로 넣는 거야. 너한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아아, 그때 나는 왠지 그 얼음들이 녹으면서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아서 손끝이 저릿저릿 해왔어. 그럼에도 네가 만들어 주는 아이스커피는 여름을 시원하고 기분 좋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어. 고마워. 요즘에도 아주 가끔씩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가 있어. 시원하게 목 넘김 하는 너를 생각하면서, 나는 여전히 조금씩 조금씩 마셔.


디카페인 원두를 파는 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알음알음 디카페인 원두를 구입해서 커피를 내리고, 디카페인보다는 일반 원두가 더 맛있다고 그런 말도 하기도 했었다 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는 카페인 가득한 커피를 시원하게 한 잔 마시고, 오후에 2시가 넘어서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디카페인 원두를 사용해서 마셨던 커피 애호가 우리 정아. 그래 너는 그랬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언제든지 칼 같이 시간을 엄수하며 시간에 예민하고 민감했던 우리 정아. 카페인에도 예민하고 민감했던 너랑 나는 많이 달랐다.


나는 정말 둔하고, 둔하고, 또 둔해서 너에게 민감하지 못한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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