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NBC, DC COMICS
정아야,
생각해 보니 나, 이런 꿈을 종종 꾸고 있는 것 같아.
나 혼자서 어떤 건물 앞에 서 있어. 투명유리가 아니어서 밖에서 안은 보이지 않아. 내 모습만 외벽에 반사되어 비칠 뿐이야.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나를 쳐다보고는 있지만 그런 모습들을 인식하거나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고 있거든. 그러다가 내가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스르르 미끄러져서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 건물 안은 입구와 내부가 구분되어있지 않았고 그냥 보통의 건물과 다름이 없어.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살며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발을 디디는 거야. 그렇게 내부로 걸어 들어갔어. 건물 밖에도 안에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 혼자뿐이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적막한 큰 홀을 지나서 타박타박 걸어 들어가지만 나는 길을 알고 있어. 그쪽으로 가는 게 맞는 길인 거야. 어느새 미로처럼 생긴 많은 복도와 많은 방과 구불구불한 길들이 나오지. 그런 곳을 하나씩, 마음이 급하기도 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태연한 듯 내가 디디는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바닥을 느끼면서 지나가. 어느 곳에서는 바깥이 보이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도 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내가 있던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옮겨가기도 해. 투명 엘리베이터는 건물 안을 보여주고 있는데 철강으로 뒤덮여 있어. 지금 떠올려 보니 포스코 사옥의 느낌도 나고 구겐하임 뮤지엄 같기도 하네.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들을 피해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기도 하는데, 그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은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더 빠르게 크게 뛰고 있어.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는 복도로 다시 돌아와서 주위를 살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빠르게 지나가. 또다시 어떤 기척을 느끼고는 문 뒤에 몸을 숨기기도 하면서. 엘리베이터나 계단이 종종 나타나면 올라가기보다는 늘 내려가는 쪽이었어.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험난하기도 하고 심난하기도 한 건물 속 미로를 하나씩 지나가. 어쨌든 어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대편의 어떤 장소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제야 내가 알아채는 거야. 그곳에는 당연히도 내 신발이 없다는 걸, 그래서 내가 건물 밖으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아버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지. 여기까지 왔는데 밖에 나갈 수가 없구나. 나에게는 신발이 없구나. 신발도 어느 것도 이곳에는 나를 위한 보호장치가 없구나. 그런 깨달음의 순간 주저하지 않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그런 여정이 담긴 꿈이야.
이런 꿈을 여러 번 꿨던 것 같아. 건물 안에서 헤매면서 무서운 적도 있었고 두려운 적도 있었고 귀찮거나 짜증이 난 적도 있었어. 왜 내가 그 길을 가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몰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일 수도 있는데 꿈속에서의 나는 그걸 인식하지는 않고 있는 듯했어. 그냥 가야 하니까 가는 느낌. 어쩌면 당신을 구해주거나 지켜주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힘들게 간 거잖아, 그리고 그 힘듦을 알고 있으면서도 돌아와야 하는 거잖아. 그럼에도 나는 무조건 다시 돌아섰어. 신발이 뭐라고. 다시 돌아서서 또다시 내려가는 거야. 올라가지는 않아. 원래 자리로 가려면 올라가야 할 텐데도 다시 내려가는 거야. 내려가야지만 내 신발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는 걸 나는 알고 있어. 확신을 가지고 길을 걷는 거야. 하지만 다시 신발이 있는 곳까지 다다른 적은 없어. 신발을 발견하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전에 또다시 헤매다가 꿈에서 깨어나기도 해. 길을 아는데 헤매. 맞는 길인데도 빙글빙글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아.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계속 신발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걸어. 그러다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나를 막는 어떤 또 다른 일이 벌어져. 혹은 다른 꿈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아야, 나는 왜 입구에 신발을 벗어 두고 들어갔을까?
신발을 되찾아야 된다고 하면서 스스로에게 돌아가야 할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 냈던 건 아닐까?
그곳에 도착하면 신발을 신고 아니, 신발을 신지 않더라도 밖으로 나가서 직면해야 할 그 상황이 두려워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도록 신발이라는 이유를 미리 만들어 낸 건 아닐까?
그냥 그 신발을 포기하고 맨발로 나갈 용기는 없었던 걸까?
애당초 신발을 벗었다는 건 모세처럼 순종하고 겸손하게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경로였을까?
아니면 신발을 신고 그 건물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는 없었던 걸까?
건물의 바닥이 신발을 벗고 있는 내 발을 차갑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겉으로 보기에는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돌덩어리에 불과한 바닥이었는데도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어. 오히려 바닥은 대리석처럼 빛이 날 때도 있었고 카펫 위를 걷는 것처럼 부드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걷는 것처럼 편안하기도 했지. 마음은 흔들리고 머릿속은 복잡하더라도 내 발은 그랬어. 그래서 반대쪽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는 걸 인식하거나 깨닫지 못했던 이상한 순간이었어. 매번 반드시 반대쪽에 도착해야지만 신발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거야. 실망하고 당황스럽고 난감하지만 지체하지 않고 미련 없이 뒤돌아서는 순간을 경험하는 거야. 나가기 위해서는, 이 건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되걸으면서도 길을 찾고 다시 숨고 상황을 살피면서도 두고 온 내 신발은 결국 찾지 못했었던 그런 순간이었지.
요즘 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거 있잖아, 초능력이라고 부르는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중에 한 어린아이는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어떤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이 무언가를 원하는 바가 있으면 꿈속에서 그 아이를 통해서 답을 구하는 거지. 이 아이가 타인의 꿈을 관장하는 건 아니고 아이가 스스로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래. 그 아이 말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꿈속으로 부르는 거라고 하더라.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 사람들, 꿈꾸고 있는 것의 방향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을 꿈속으로 데리고 오는 거라고 하더라고. 주요 인물 중에 유전학을 연구하는 한 학자가 있어. 그 학자의 꿈에 이 아이가 여러 번 나와. 학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 아이를 찾아가서 결국은 꿈이 아닌 실제로 만나서 물어보게 되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아이는 그 사람에게 말해. 당신은 이미 그 길을 알고 있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답을 다 알고 있다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 자신의 길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 같아. 그 길이 맞는지 제대로 된 길인지 확신을 갖지 못해서 모르겠다고 하는 거지. 결과가 늘 해피엔딩이기를 바라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더 망설여지는 거야.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잘 될 수도 있고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어.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할 때 마음이 가는 대로 하려고 하지만 어쩌면 결과가 좋은 쪽으로 가려고 하는 걸 수도 있지. 새드엔딩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거야. 누가 봐도 힘들고 말이 안 되는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을 걸으려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그들은 자그마하게라도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작은 희망 뒤에 있는 나머지 분량의 불행이나 불안을 애써 넘겨버리고 무시해 버리고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게 용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무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거야. 너는 전자가 되고, 나는 후자가 되겠다.
네가 집을 나갔을 때, 그 사람이랑 함께 살려고 결심했을 때가 그랬을 거야. 정아 너는 그전에 한 번도 그런 선택을 한 적이 없으니까. 대부분 긍정적인 선택이었고, 그 선택뒤에는 해피엔딩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의 결과가 따라오는 그런 길들을 선택해 왔어. 내가 늘 너에게 조언을 구한 것도 너의 그런 믿음직스러운 과거의 행적들 덕이었을 거야. 물론 난 비뚤어져 있고 모가나 있어서 네가 해 주는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대로 행동한 적도 많았지만, 속으로는 네가 옳다는 걸 알고 있었어. 네가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부러워했지. 질투했어. 그래서 더 삐딱하게 나간 적도 많았지만 결국에 내가 돌아갈 곳은 너밖에 없으니까 너만 찾게 된 건데, 그런 네가 그 선택을 하고 만 거야. 나도 이해하기 힘든 그런 선택을. 그리고 떠나 버렸어. 말리고 싶었고 말렸지만 너는 슬픈 미소만 나에게 보여줬어. 저항을 하거나 믿어달라고 화를 내지도 않았어. 지지해 달라고 응원해 줄 수는 없냐고 원망하지도 않았지. 난 그때 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네가 사라지지 않도록 너를 붙잡고 있어야 했어. 솔직하게 모든 것을 나에게 얘기했던 너에게 내 마음을 진심으로 전했어야 했어. 다 큰 성인을 어디로 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너를 끝까지 따라갔어야 해. 하지만 나는 화가 났고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래서 너를 내버려 두었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네 맘대로 하라고.
시간이 흐르고 나의 화는 조금씩 사그라들었어. 너와 연락이 닿았고 너는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그 뒤로도 나에게는 많은 기회가 있었던 거야. 너에게 더 다가가고, 더 다정하게 대하고, 네가 돌아올 수 있도록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을 거야.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큰 문제가 될 줄을 어떻게 알았겠어. 네가 행복하다고 말하니까 그걸로 된 거라고 위안 삼았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 거야. 예전처럼 너에게 자주 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정말로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봤어야 해. 나는 이 상황을 쉽게 넘어가고 싶었는지도 몰라. 너를 설득하는 과정은 지난할 거고 나는 그걸 끈기 있게 대처하지도 못하고 또 버럭 화를 내고야 말 테니까. 화를 내고 나면 미안해서 더 눈치를 보고 다음 말을 아끼게 될, 아니, 피하게 될 그런 나를 잘 알고 있어서 또다시 쉽게 포기하고 겨우 가지고 있던 반만큼의 용기마저도 내지 못했어.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아 너의 일이었는데도 말이야.
꿈을 되돌아봤어.
신발을 벗은 나를 떠올려봤어.
신발을 벗고 있는 나도 떠올려 봤어.
두 신발을 나란히 고스란히 예의 바르게, 예절을 지키며 나올 때 신을 거라는 듯이 돌려서 벗어 두고 실내로 걸음을 옮기는 나.
신발을 벗을 때 내가 도착하게 될 반대편에는 나를 위한 신발이 혹은 내 신발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희망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 믿음과 기대에 배반당했어. 스스로 배반당함을 유도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에 포기도 빠르고 용기도 늘상 반만 가지고 있는 내가 가엽네. 가여워할 일은 아닌데도, 오히려 질책하고 반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가 되라고 부추기며 그렇게 온전한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데도 그냥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나머지 반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나는 원래 이러니까 변하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혼자서는 하고 싶지 않은 거야. 포기해서, 용기도 반만 갖고 있어서 너를 지키지 못했는데도 아직도 이러고 있어 나는.
꿈을 꿀 때, 누가 보면 나인지 모를 수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꿈속의 나는 다 알잖아. 그 사람이 나라는 걸. 근데 정아야, 그거 알아? 그 사람은 어쩌면 내가 아니라 너일지도 몰라.
나도 너도 늘 떠남을 꿈꾸고 희망하고 마음에 담고 있었어.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어쩌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아주 잠시 떠났다가도, 또 아주 멀지는 않을 정도의 거리로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거지.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걸 바라면서도 잡고 있고 또 잡혀있고 얽혀있는 무형의 고리에 익숙해져 있었어. 끊어내는 건 너무 고통스러울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 이유도 있어야만 할 거야. 그래서 확실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고 너는 생각했을지도 몰라.
오늘따라 갑자기 내가 이런 꿈을 요 몇 년 사이에 종종 꾼다는 걸 깨달아버렸어. 그리고 그건 나이자 너의 꿈 이야기라는 것도.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