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14

<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by Chiara 라라

정아야,

오랜만에 목욕탕에 다녀왔어.


요즘에는 동네에 작은 목욕탕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한동안 찜질방이 유행하면서 동네마다 한두 개씩은 있었던 작은 목욕탕들이 없어지고 대부분 찜질방으로 바뀌었나 봐. 동네 목욕탕이라고 하더라도 높은 천장에 환하고 깔끔하게 꾸며놓은 대형 찜질방이 많아. 그렇게 크지는 않아도 목욕탕만 하는 곳보다는 한증막이랑 같이하는 목욕탕도 있어. 어디든 목욕에 어떤 서비스가 추가되어 있어. 내가 그 서비스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또 이용하고 싶지 않고, 이용하지 않더라도 기본이라는 서비스가 목욕탕 이용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만큼의 금액을 내야만 해. 결국 목욕탕 입장료는 올라가고 말았지.


보통 이사 후에 짐 정리를 어느 정도하고 나면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려고 산책도 다니고 주변에 뭐가 있나 두리번거리게 되잖아. 어쨌든 1년이나 2년이라는 계약의 기간 동안에 내가 지내야 할 동네니까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고. 이사를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요즘에는 병원이나 약국이나 마트나 버스정류장처럼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곳은 집을 알아보면서 미리 다 돌아보게 되네. 초기에는 작은 방 하나 구하기도 어려워서 온통 돈에만 신경 쓰다 보니 기본적인 것들을 확인하지 못해서 생활이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혼자 사는 건 늘 어려워. 어려움 투성이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해서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익숙해지지 않는 당황스러움들이 쌓여가.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습득되는 부분이 있고 익숙해진 것도 많아졌나 봐.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서울 중심가나 강남 지역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지만 산도 가까이 있고 천도 가까이 있어서 나름 평온한 풍광을 지니고 있어. 변두리 중에서도 더 깊다고 할 수 있지. 동네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이 오래된 집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는 어르신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아. 동네에서 이웃 같아 보이는 누군가와 마주쳐도 서로를 알려고 하거나 인사를 일부러 건네거나 하지는 않지만, 정자나 의자에 앉아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할머니들, 다 무너져 가는 운동기구 한쪽에서 특별한 대화 없이 모여 있는 할아버지들을 보면 그래도 조금은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면 살만한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해. 그들의 모습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처량해 보이기도 하는데 나도 외롭고 처량하게 보일 거라, 내가 누구를 어떻다고 판단할 수 있겠어. 어쨌든지 삶이라는 건 살아지게 마련이고 누구나 화려함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이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려고. 부정적인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를 때면 애써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고 있어. 지금까지는 고만고만한 곳으로 이사하거나 무리 없이 계약도 연장하며 이 동네에 살고 있는데 또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까 일말의 불안함이 뱃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리고 있기도 해.


코로나 전에 종종 다니던 목욕탕이 있어. 이사 와서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목욕탕이야. 어떤 상가건물 지하에 있는데 상당히 오래된 곳인 것 같았어. 어릴 적에 엄마가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꼭 목욕탕에 데리고 갔었잖아. 그때 그 목욕탕이 떠오르는 동네 목욕탕이야. 아무리 없이 살아도 남들에게 꾸질꾸질하게 보이면 안 된다고 때를 벅벅 밀어주면서 청결하게 지내야 된다고 우리에게 당부하듯 엄마 혼자서 다짐하듯 몇 번이고 말씀하시곤 했었는데. 어린 시절, 엄마랑 셋이 살던 집에 있는 화장실은 너무 작고 욕조도 없고 차가웠어. 화장실 문만 열어놔도 온 방안이 싸늘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화장실 문은 꼭 닫아 놨었다 우리. 반면에 목욕탕은 어린 내 눈에 엄청 크고 욕조도 여러 개 있고 따뜻했어. 미지근한 물과 찬물을 오가면서 마음껏 놀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숨쉬기가 힘들어져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요령껏 피해 다녔던 게 기억나. 아무리 뜨거운 물이 어린 우리에게 힘들어도 엄마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쩔쩔매면서도 겨우 일이 분은 버텨야만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스스로 그 뜨거운 물에 몸을 오래오래 담그고 있다. 뜨거움에 내성이 생긴 걸지도 모르고 힘들어도 인내하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더라는 경험치가 쌓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어렸을 때는 엄마도 젊었을 텐데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엄마는 손발이 거칠고 까끌까끌했어.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줄 때에도 때타월이 스쳐 지나가는 중간중간과 때타월을 쥐고 있지 않은 반대편 손이 몸을 지나갈 때에는 엄마 손의 그 거친 감촉이 온몸으로 느껴진 곤했어. 근데 엄마 속 살은 하얗고 부드러웠던 거 기억나? 크고 나서는 엄마와 목욕탕에 같이 갈 일이 없어서 지금도 엄마 속 살이 부드럽고 하얀지는 잘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엄마 얼굴에는 기미가 올라와 있고 여전히 거친 엄마 손에서는 거뭇거뭇한 검버섯이 조금씩 피고 있어. 요즘에는 핸드크림을 손에 듬뿍 바르고도 계속 건조하다고 말씀하셔. 발바닥에도 크림을 밤마다 바르는데 갈라지는 건 나아지지 않고 계속 아프신 것 같은 눈치야. 엄마는 크게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사건 이후 부쩍 더 어두워지고 갈라져 가는 것 같아. 어둠에 잠식되어 어느 순간 말라비틀어지다 가루로 바스러져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어 난. 이제 엄마밖에 없는데.


어린 시절 습관의 힘인지 우린 때가 되면 가까이 살지는 않았어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잊지 않고 목욕탕에 갔어. 서로 시간이 맞지 않고 여유가 없으면 각자 자기 동네의 목욕탕에 가기도 했지만, 함께 못 가는 그때가 되면 그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어. 서로에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다음 달에는 꼭 같이 가자며 신신당부하곤 했다. 우린 찜질방이 널리 퍼지고 나서도 찜질보다는 탕에 들어가는 걸 더 좋아해서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비스듬히 누워 그간 있었던 일을 얘기했는데, 그 시간이 난 참 편안하고 좋더라. 종종 네 방에서 신세를 지기도 하면서 짧게라도 얼굴은 자주 보았지만, 목욕탕에 함께 가는 그 온전한 시간에 비할 수는 없었어.


네가 집을 나가고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다시 연락하게 되었지. 아니, 다행히도 네가 연락을 해 주어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거야. 네 연락이 아니었으면 난 어디에서 너를 찾아야 했을까. 넋 놓고 떠나버린 너를 원망하고 잡지 못한 나의 행동에 미안해하고를 반복하며 무의미하게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을 거야. 그게 더 나았으려나, 나는 잘 모르겠어.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 그러고 나서 우리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예전처럼 몇 달에 한 번씩은 목욕탕에 함께 갔어. 그 어느 날이 생각나. 목욕탕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왠지 네가 가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 핑계를 대는 것 같기도 했고, 꺼려하는 것도 같아서 나는 기분이 상했어. 그래도 약속했으니까 오랜만에 꼭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나야. 그래서 겨우 만났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까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도 잘하고 좋았어. 뜨거운 물에 몸을 한참 동안 담그고 실없는 얘기도 나누고 하면서 몸을 나른하게 만들고 그간 몸에 붙었을 때도 불렸지. 건식은 답답하니까 습식 사우나에도 들어가서 천천히 뭉친 어깨를 스트레칭하기도 했어. 자리에 돌아와서 때를 미는데, 몸을 다 닦고 나서 네 등을 밀어주는데, 팔뚝에서도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곳에서도 작은 멍 자국 같은 게 여러 개 보였어.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마치 손가락으로 꽉 힘주어서 눌렀던 것 같은 그런 멍 자국이었어. 그런 자국을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도 했고 놀라기도 해서, 무슨 자국인지 왜 생긴 건지 왠지 물어보기가 망설여지더라. 목욕을 다 하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데 그제야 네가 몸을 많이 뻐근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오늘 안 좋은데 내가 우겨서 나온 건 아닌지, 요즘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무심코 흘리듯이 계속 질문을 해 댔는데도 넌 특별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어. 평소처럼 밝게 얘기했는데도 나는 그 밝음 아래 회색빛이 도는 것 같다고 어림짐작만 했던 날이야.


머리를 말리면서 너는 바나나맛 우유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좀 쉬었어. 어렸을 때에는 목욕탕을 나서면서 요구르트를 하나씩 입에 물고 바닥의 플라스틱 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고 뒤에서부터 조금씩 아껴가며 마셨는데, 이제는 요구르트 하나가 나에게는 너무나 작게 느껴져. 그때는 목욕 후에 마시는 요구르트 한 개가 세상의 전부처럼 시원하고 달콤했는데 말이야. 그날은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셔도 쓰지 않았고, 목욕 후의 갈증을 달래주지도 않았어. 한잔의 아메리카노가 더 필요했는데 그 쓴맛으로라도 그날 내가 본 네 몸에 있던 손자국을 잊고 싶었거든.



정아야, 요 몇 년 사이에 계속 목욕탕에 못 간 건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너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날 것 같았고 너의 몸에서 본 그 멍자국이 계속 떠오를 것만 같아서 무서웠어. 내가 잘못한 거,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것, 또 무심해져 버린 게 그날도 포함될 테니까.


20대에 좋아했던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홀리 가든>에는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아름다운 홍차 잔이 깨지는 장면이 나와. 그녀의 소설 속에는 욕조에 몸을 오래오래 담그고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는 장면도 많이 나오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과거를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인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 마치 나인 것만 같아서 그 인물들을 따라 해 보아야 하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본단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꾸자꾸 미안해.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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