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정아야,
예인 선배를 만났어. 정말 오랜만이었지.
몇 주 전에 갑자기 예인 선배에게 카톡이 왔어. 어느 문학잡지에서 내 이름을 보았다고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보더라. 한번 보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어보았어. 그래서 갑자기 일사천리로 만날 약속이 만들어졌지.
선배를 만난 건 참 오랜만이었어. 코로나 전에 오가다가 마주치고 그동안에는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었거든.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서로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친한 사람들은 각자 따로 있었잖아. 심지어 난 예인 선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은 언니랑 가까이 지내기도 해서 예인 선배 생각을 더 깊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럼에도 언젠가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을 얼핏 하기도 했던 것 같아.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선배와 따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어. 너도 기억할 거야. 이때도 언니가 먼저 만나자고 했던 것 같아. 나는 괜히 성은 언니 눈치를 보며 그 자리에 나갔는데, 예인 선배가 밝게 웃으면서 나를 따로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하더라. 생각보다 예인 선배는 불편한 사람이 아니었어. 나랑 대화도 어느 정도는 통했고 예술 쪽 경험과 경력이 많은 선배의 얘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지. 내가 속해보지 못했던 예술, 미술계의 궁금했던 부분도 마음껏 물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어. 성은 언니가 얘기한 것처럼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어. 단지 중고등학교를 외국에서 보내서 조금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됐지. 난 선배의 그런 배경은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
그 오래전에 선배와 만났을 때 선배도 나도 정규직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지는 않았고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수입이 적고 그 마저도 고정적이지 않았어. 선배도 나도 흔들리던 시기였던 것 같아. 나는 아직까지도 흔들리고 있지만 그때보다는 조금은 나아졌을 거라고 믿어야겠지. 오래전이라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밥도 커피도 각자 자기가 먹은 몫의 값을 지불했던 건 기억나. 또 집에 와서는 밥이야 각자 먹을 수 있지만 커피마저도 각자 사 마셨다고 서운해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 그래도 그 당시에는 이해를 하고 있었어. 해주고 싶어도 해주기가 힘든 게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나이가 나보다 많다고 선배라고 내 몫까지 지불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나도 종종 동생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던 어려움이기도 했으니까. 자기가 먹은 건데 당연히 자기가 지불해야겠지. 좋은 만남과 대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서운한 감정도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을 거고. 그래서 그 뒤로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걸 나는 잊고 지냈어. 물론 더 이상의 만남이나 개인적인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더 잊고 지냈던 걸지도 몰라.
이번에는 선배를 서촌에서 만났어. 예전에는 프로젝트의 주 무대였던 홍대나 대학로에서 만났을 거야. 나는 서촌에 거의 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선배가 괜찮은 식당이나 카페가 많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여러 식당 링크를 미리 공유해 줬어. 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라고 하면서 어디에 가면 좋을지 내 의견을 물어봤어. 요즘에는 다들 이렇게 핫하다는 식당이나 카페를 미리 검색해 알아보고는 가고 싶었던 곳을 가곤 하지. 하나하나 다 들어가 봤는데 음식도 맛있어 보이고 식당도 깔끔하고 사진으로 보기에 다 예쁜 곳이었어. 서촌이 이런 이미지구나, 싶은 그런 사진들이 잔뜩 있었어. 그리고 메뉴도 함께 있었는데, 금액을 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핫플레이스의 공통점은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온다’가 첫 번째, ‘음식값이 비싸다’가 두 번째 아닐까. 음식의 맛이 보장되어있지는 않지. 맛이 있을 수도 있고,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진이 예쁘게 나오니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그런 곳들.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다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니까 나도 그들이 갔던 딱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오르는 곳들. 사실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걸 먹기에는 내 주머니 사정이 풍족하지가 않잖아. 선배가 보내준 식당 중에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었는데, 그나마 가장 저렴한 식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이 식당이 괜찮아 보이네요 선배. 한식을 퓨전으로 새롭게 만들어 낸 것 같은 음식들이 메뉴에 있었어. 주류에는 막걸리만 있었고. 음료는 전통차 같은 것들.
당일에 선배가 도착했다고 연락이 온 건 약속 시간보다 거의 40분가량 이른 시간이어서 나는 당황스러웠어. 대기시간이 길다고 들어서 퇴근하자마자 서둘러서 왔다고 하더라고. 대기 시간이 기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려 한다고 나한테 미리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일찍 도착해서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얘기를 미리 하는 게 아니라 약속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어디쯤인지 물어보면서 얘기해도 좋았을 텐데. 선배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었겠지만 나는 선배를 만나기 40분 전부터 마음이 불편해서 전철에서 서촌으로 가는 내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서촌은 집에서 꽤 먼 곳이어서 재미있게 집중해서 읽을 책을 가지고 나왔는데 가방만 무거워졌지 뭐. 심지어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선배는 자리를 배정받았고 도착하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주문을 해 놓겠다고까지 했어. 선배는 비빔국수 같기도 하고 파스타 같이 생기기도 한 음식을 먹을 거고 딸기 막걸리 한 잔을 시키겠다고 하면서 나의 메뉴를 물어봤지.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 식당에서 유명한 음식이 그 누들과 강된장이 주 재료인 쌈밥같이 생긴 음식이었거든. 뭐, 한국사람들은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어도 나눠서 잘 먹으니까 나는 나머지 유명한 메뉴인 밥 같은 걸 먹는다고 했고 나눠먹자고 했어. 음료는 물이면 된다고. 사람들이 선배의 어떤 면을 보면서 불편해했는지, 기분 나빠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조금씩 들었어. 선배는 당장의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을 해결하면 되는 사람이었던 거야. 다른 사람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면이 약간 떨어져서 봤을 때에는 개인적인 사람이구나, 할 수 있겠지만 한발 더 가까이서 마주치면 조금의 배려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지. 난 약속 시간에 1분의 오차도 없이 딱 도착해 버렸어. 선배 말로는 음식이 지금 막 나왔다고 했고. 인사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음식이 나온 얘기부터 또 음식의 겉모양부터 얘기를 하게 된 거야. 서로 마주 보고 앉는 테이블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을지도 몰라. 옆으로 나란히 앉는 테이블에 선배가 앉아 있었거든. 나도 선배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서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어.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어. 우리의 공통 이야깃거리는 아무래도 한참 전인 그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와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이 거의 유일했을 거야. 거의 십 년 가까이 지난날들의 이야기. 옛날 이야기. 옛날 사람들. 선배는 선배가 그때 느낀 이상하게 기분 나빴던 감정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그 이야기들을 꺼내니까 나도 희미하게나마 그때 상황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어.
정아야 그거 알아? 나 성은 언니랑은 이제 거의 연락 안 하고 지낸다? 언니에게 나는 수많은 동생들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 나는 언니가 수많은 언니 중에 특별한 언니라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그게 아니었던 거지. 언니는 나를 만났지만 다른 동생들도 자주 만났고, 나와 연락을 하는 것처럼 다른 애들하고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 같았어. 무엇보다도 언니와 연락이 뜸해진 이유는, 내가 언니에게 연락하지 않으면 언니가 먼저 연락하지는 않더라고. 원체 연락을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닌 나지만 그걸 깨닫고 나서는 일부러라도 연락하려다가 말기도 하고 그랬더니 그렇게 허무하게 멀어지고 말았어. 사람관계란 한 사람만 열심히 따라간다고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연락을 취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 같아.
예인 선배는 예전부터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전에 네게 얘기했을 거야. 선배 동생도 쌍둥이거든. 선배 동생들은 남남 이란성이라서 그런지 서로 그렇게 친하지 않은데 우리가 친한 거 보면 신기하다고 했었어.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이렇게 큰 거냐며 선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바라보기도 했었는데 말이야. 선배와 내가 서로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개인적인 신상이 아마도 그거였을 거야.
밥을 다 먹고 나서 선배가 ‘이 밥은 내가 쏜다!’ 하더라. 의아한 표정으로 선배를 바라보니까 선배가 얘기했어. 전에 만났을 때 밥을 사주지 못하고 각자 자기의 밥값을 따로 냈던 게 그렇게 신경이 쓰이더라고. 왠지 모르게 나한테 빚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고. 먼저 만나자고 하면 자신이 밥 값을 내고, 특히 동생들한테는 늘 밥을 사주는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만났던 그때가 재정적으로 선배에게 힘든 시기였다고 말하면서. 나는 괜찮다고, 선배가 그렇게 각자 내자고 얘기해 줘서 난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고 얘기했는데, 속으로는 선배가 낼 줄 알았으면 내가 먹고 싶었던 거 먹으러 가자고 할걸,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어. 선배가 밥을 샀으니 커피는 내가 내겠다고 했지. 근데 서촌의 카페는 모두가 다 핫플이었어. 그 말은 즉, 모든 커피가 다 비싸다는 얘기야. 커피에 조각 케이크까지 시켜서 먹었으니 얼마나 많이 나왔겠어. 거의 밥값이 나왔지 뭐야.
커피를 마시면서 분위기 좋다며 마음을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배가 네 안부를 묻더라. 선배랑 나랑 따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 중에 겹치는 사람도 없었고, 나도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는 성은 언니 말고는 다른 사람들이랑 거의 연락을 하고 지내지는 않았으니까 네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겠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었겠지. 성은 언니는 알고 있으려나,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를 가능성이 더 높긴 하겠다. 나는 순간, 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아 졌어. 너에게 벌어진, 우리에게 닥친 그 사건을 선배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어. 선배가 알고 있는 너의 그때 그 찬란한 삶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지. 그때 너는 행복했고, 그 이후로도 행복했어야만 하니까. 단절되고 끊기지 않았을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래서 난 네 행복에 대해서 선배에게 이야기했어. 그 사이에 정아는 좋은 남자를 만났고, 결혼을 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비록 결혼을 하고서 먼 지방으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예전처럼 자주 연락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물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자주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종종 서로를 만나기 위한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선배에게 너의 행복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나도 행복한 마음이 들었어.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에게 죄책감 같은 건 없었어.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니까. 네가 그때 무척 행복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삶이 지금의 네 삶이 맞다는 생각이 들게끔 행복해하는 기분.
난 다시 행복하고 싶다, 정아야. 너도 계속 행복했어야만 해.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