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할매식당>, 우에가키 아유코
정아야,
비가 아주 많이 내렸어.
저 아래 지방에는 비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아. 뉴스를 잘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엄마 집에 갔다가 알게 되었어. 정말 걱정이야. 이제 비가 그쳐야 할 텐데. 피해 복구도 잘 되어야 할 텐데. 평소에 뉴스를 자주 보지 않아. 아니,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해야겠지. 엄마 집에 갈 때만 뉴스를 보게 되는 것 같아. 그러니까 거의 주말에만 뉴스를 보는 거야. 엄마와 저녁을 먹으면서 다른 이야기는 없이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노래가 나오는 프로를 보거나 웃음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하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기 시작해서 뉴스가 나올 때쯤이면 과일을 먹고 있어. 밥을 먹고, 그릇을 치우고 과일을 꺼내와. 가끔은 내가 사 온 케이크나 쿠키 같은 디저트에 나는 커피를 엄마는 차를 마시면서 역시나 계속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보는데 후식을 먹을 때쯤이면 뉴스가 시작돼. 뉴스에는 좋은 소식이 없어.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것만 같은 정치 소식이나 어느 곳의 피해 소식이나,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소식들로 가득 차 있어.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만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서 그 뉴스를 피하지는 않는데 솔직히 말해서 보고 싶지는 않아.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더라고. 알아야지만 피해를 입지 않는 것도 있고, 예방을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 일이 생긴 이후에 나는 많은 생각을 했어. 주위에서 그런 일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거든. 들어보기는 했지, 그런 일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남자든 여자든 서로 만나서, 좋아하고 관계가 깊어지면 같은 마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그렇게 다른 방향인 것을 알았을 때 헤어짐이 쉬운 경우도 있고, 쉽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한쪽에서 집착을 하게 되는 경우가 후자일 거라고. 그래도 그 집착이 마음으로의 아픔과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얘기를 들어봤었지.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하지만 서로 사랑한다며 만나고 있는데 상처를 주고 진짜로 위협을 가하는 수도 있다는 건, 뉴스에서만 봤어. 그런 걸 데이트 폭력이라고 한다는 것도 뉴스에서 들었던 단어야.
네가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넌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어. 아무래도 가벼운 만남일 거라는 생각에서였겠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말하는 사이 같지만 우리가 은근히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는 걸 나도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사람들은 종종 착각을 해. 쌍둥이는 몸도 마음도 통할 거라고. 서로에게 숨기는 게 없을 거라고. 몸도 마음도 통하는 건 맞는 말인 것 같아. 내가 그런 쪽으로 조금 더 예민한 감각을 타고났는데, 네가 어디에 있든지 미세한 감각으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거든. 네가 행복하다든지 네가 걱정을 하고 있다든지 그리고 네가 위험에 처해 있다든지, 그런 미세한 감각이 나한테 느껴지는데 그걸 확연하게 구별해 내는 능력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아. 그저 너에게 어떤 일이 있구나. 좋은 긴장 일지도 모르고 안 좋은 쪽의 긴장일 수도 있는데 좋은 쪽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이미 성인이고 모든 것을 나누기에는 각자 성격도 취향도 또 삶도 다른 길을 걷고 있잖아. 느낀다는 것만으로 참견을 할 수는 없는 거야. 말 그대로 네 의향을 알지도 못하는데 내 느낌만으로 무조건 툭 하고 던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도 혼자서만 생각하고 깊이 잠기고 싶은 상황들이 있으니까 너도 그럴 거라고 짐작만 하는 거야. 많은 대화를 통해서 하루하루의 날들과 달들과 해들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혹은 따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 삶은 똑같을 수 없고 함께 갈 수 없다는 점. 함께는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는 점. 특히나 너와 나는 외모도 달라서 누가 보면 우리를 쌍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쌍둥이의 조건이 별로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어렸을 때에도 우리는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물건을 지니면서 얘네들 많이 닮았네, 그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잖아. 엄마는 같은 옷을 두 벌 사는 건 돈 낭비라고 생각했어. 아이들은 금방 크니까 새 옷이나 새 물건을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어. 주위에서 주는 물건들도 많이 사용했고, 새 옷을 사러 쇼핑 간 적도 거의 없는 것 같아. 엄마 혼자서 딸 둘의 구미를 맞출 수는 없었을 거야.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너도 나도 크게 옷과 물건에 욕심이 없었다는 거지. 물론 그건 욕심이 있어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습관적으로 억누른 걸지도 몰라.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너는 조금씩 꾸미기 시작했고, 네가 옷과 액세서리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거든. 넌 꾸미는 걸 좋아했고,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였던 것 같아. 물론 마음도 예뻤지만. 그렇지 않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으면 엄마와 얼마나 마찰이 많았겠니. 엄마의 말에는 대부분 순종했으니 착한 딸이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난. 난 그렇게 착하진 않았는데 겉으로 크게 표현하지는 않았으니까 아무도 몰랐을 수도 있고. 오히려 무뚝뚝한 딸이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나마 네가 있어야 엄마와 내 사이를 중화시켜 놓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저녁 먹는 시간도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도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는 시간도 다 적막이 흘러. 한마디 시켜보면 단 한마디로 대답이 돌아오니까,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아. 그래도 나는 노력하고 있어. 네가 없는 자리를 나라도 대신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아. 그런 면에서 네가 더욱 원망스럽기도 해. 너의 그 찬란함과 해맑음이 우리 집에는 필요하거든. 회색빛 구멍을 채워줄 수 있는 너의 그 밝음이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비워지니 알겠어. 절실히 느껴. 어둠은 밝음을 원하지 않지만 밝음이 없을 때 어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런 걸 느끼고 있어.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나한테 얘기를 했는데,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어. 네가 누군가와 새롭게 시작했구나, 그런 느낌. 새로움의 어색함이 느껴졌거든. 너한테는 설렘이었겠지만 나한테는 어색함이라는 단어로 다가오는 단어가 새로움인가 봐. 보통은 네가 호감이 가는 사람이 생기거나 너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생기면 나한테 먼저 얘기하는데 이번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나한테 먼저 얘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서운함도 조금 있었는데 서운함보다는 전과는 다른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했어. 넌 늘 오래 만나든지 짧게 만나든지 헤어짐이 있고 그 아픔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머지않아 곧 또 다른 사람이 생겨서 늘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랑 서슴없이 얘기하곤 했었잖아.
12월 20일은 우리가 태어난 날, 그리고 3월 2일은 주민 등록증 상에 적혀 있는 우리의 법적 생일. 엄마는 우리를 낳고 정신이 없으셨지. 작은 아기를 두 명이나 돌봐야 했으니까. 할머니가 엄마를 도와주시기는 했지만 할머니도 일을 해야 했고, 할머니랑 엄마는 그다지 다정한 사이도 아니어서 서로를 어떻게 살펴줘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아. 정신없이 울고 있는 아기들을 달래고 젖먹이고 씻기고. 아기들은 본능에 충실해서 배가 고프면 울고, 불편해도 울고, 할 말이 있어도 울고, 그랬을 거야.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내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때는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오려고 하기도 하잖아.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들은 더 서글펐을 것 같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저 커다란 사람을 바라보면서, 또 자기와 비슷하게 빽빽거리며 버둥거리는 옆에 있는 작은 사람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이상했을까. 나는 종종 아기 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곤 해. 그 눈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의 모습,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머리카락이 엉겨 있어도 그 머리 한번 쓸어 올리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 사진 속 그 젊었던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곤 해. 엄마는 나를 한번 봤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다시 나타나서 나를 얼러주고는 다시 사라져. 엄마가 사라지면 나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데 몸이 불편하기도 하고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 내 옆에서 너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가끔 할머니의 얼굴도 시야에 들어오는데 할머니는 표정 없이 가만히 나를 들여다봐. 내가 아무리 울어도 얼러주지는 않아. 그러다가 어느 날 얼핏 할머니의 미소를 본 것 같기도 해.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기에 할머니는 웃었을까. 너에게는 더 많은 미소를 지어 주셨을까. 그래도 할머니는 조금 더 얌전하고 조금 더 조용한 나를 불쌍히 여기셨던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할머니가 나를 일 년 정도 거두어주셨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겠지. 손이 덜 타고 없는 듯한 아이였으니까. 나는 그렇게 아기가 되어 슬픔을 느끼는데 어쩌다가 옆에 있는 너를 보면 따뜻해지고 손을 뻗고 싶어지기도 했어. 그런 마음. 상상 속의 마음일 텐데 진짜인 것 같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생생하거든. 꿈속에서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진짜 그때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은 나쁘지 않아. 지금보다 나은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자꾸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져. 너도 있고, 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었던 그때로.
아기 둘을 낳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몇 달이 지나가 있었다고 했어. 출생신고를 늦게 하면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그 돈이 부담스러우셨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이렇게 태어난 날짜를 다르게 신고하는 게 가능했나 봐. 엄마는 그걸 우리에게 좀 미안해하셨었지. 그래서 생일만큼은 태어난 날에 축하해야 한다고 했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버텼으니 태어난 날은 축하하자고. 12월 20일에는 늘 함께 보냈어. 엄마랑 너랑 나랑 셋이서. 가끔은 할머니도 함께 넷이서. 크게 별거 한 건 없는데, 엄마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었어. 네가 미역국을 좋아해서 생일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줄곧 미역국을 먹었지. 케이크는 엄마가 집에 오면서 작은 걸 사 왔는데 작아서 매번 아쉬웠지만 단단히 꽂혀있는 두 개의 초가 빛나는 모습을 보면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어. 엄마는 우리가 몇 살이든 상관하지 않고 늘 두 개를 꽂았어. 우리는 둘이고,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둘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거고, 우리 생일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초는 두 개만 꽂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어. 나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너랑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어.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 두 개의 초를 꽂고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어렸을 때부터 생일 초는 무조건 두 개니까 우리는 초랑 나이가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나이 수대로 꽂혀있는 초를 보고서 놀라서 속닥거리던 우리가 기억난다. 그 해에도 12월 20일 저녁은 엄마랑 셋이서 보냈지. 엄마도 바쁘고 너도 바쁘고 나만 별로 바쁘지 않지만 셋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만큼은 함께했으니까. 그리고 3월 2일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너랑 나만의 작은 약속 같은 거야. 어떤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하면 같이 보냈던 우리의 법적 생일날. 근데 그해에는 네가 그날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했어. 미안한데 우리 하루만 늦게 파티하자고, 다음 날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아니면 영화라도 보자고. 그래서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어. 빠진 날이 몇 안 되니까. 나중에 알게 된 건, 그날이 너의 1일이었다는 거야. 어떻게 우리 생일에 우리가 함께 하지는 못할망정, 1일을 시작할 수가 있냐고, 길길이 날뛰었는데 너는 별로 미안해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겨서 속으로 많이 속상했어.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 생일은 함께 보내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칭얼거렸는데 넌 우리가 먼저니까, 앞으로 남자친구는 그다음 날에 만날 거라고 호언장담했지. 마음에 안 들었어. 왜 하필 그날일까 하고.
어떤 남자인지 미주알고주알 너의 얘기를 다 듣고 났는데 좋은 사람 같아 보이다가도 뭔가 조금은 괜히 의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어. 사실 네가 어떤 남자를 만나든지 늘 들던 마음이기도 해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넘어갔지. 좋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몇 달 동안 만났으니 네가 더 잘 알겠지 하면서. 하나의 순서처럼 나에게 그 사람을 소개해 주는 날이 왔어. 영업직이라는 그 남자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는데 단단해 보였어. 나를 쳐다보는 눈은 날카로웠고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관찰하는 듯한 표정이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더라. 그런데 인사를 하면서 갑자기 웃는 얼굴로 바뀌는 표정에 오싹함이 들기까지 했어. 그 미소를 먼저 보았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비즈니스적인 미소. 사람에게 호감을 주려는 듯한 다가섬. 나는 그런 거에 민감하지. 파스타와 피자, 그리고 스테이크 샐러드를 먹었는데 그 사람은 그런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 했어. 정아 씨가 이런 걸 좋아하더라고요, 하면서 정아 너를 많이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는데 그 속에는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밥을 먹으면서 나도 그 사람을 흘끗거리며 관찰했어. 앞머리가 살짝 스치듯 올려지자 눈썹과 이마 사이에 가려져 있던 길게 난 흉터가 보였어. 저 흉터는 어디서 생긴 걸까, 궁금했지. 대화를 조금 나눠보니 확실히 너와는 다른 사람이었어. 취향도 다르고, 네가 여태껏 만났던 남자들과도 달랐어. 말을 잘하는 것 같으면서도 포장이나 과장이 심하다는 게 느껴졌어. 자기 여자는 자기가 지킬 거라는 듯한 오만한 표정도 지으면서 말을 하는데 나는 싫더라. 너를 아끼는 것 같기는 했는데 그것과는 별도로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런 비릿한 이물감. 식사를 했고, 네가 좋아하는 빙수를 먹었고, 나는 커피를 마셨는데 그 사람도 커피를 좋아한다며 공통점을 들이댔지만 커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탄로나고야 말았지. 왜 아는 척을 하는 거야. 모른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나. 그렇게 처음 만나고 나서도 자주 마주치게 되었어. 내가 너네 집에 자주 가기도 했고, 그 사람도 그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거든. 그 사람이 없던 어느 날, 내가 자고 갔던 날, 네가 그런 얘기를 했어. 이 사람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많이 놀랐는데 흥분한 거 가라앉히고 나서 얘기를 잘했더니 미안해하더라고. 그런데 많이 놀랐었다고. 그건 아니다 싶어서, 왜 그가 흥분했었는지 소리 지르는 거 말고는 그다음에 아무 일 없었는지 꼬치꼬치 캐 물었는데 괜찮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넌 얘기했어. 그런 너의 어색한 웃음에 난 더 걱정스러워졌었단 말이야. 다음에 만났을 때는 내가 대놓고 얘기했어. 우리 집에는 엄마도 나도 다 조용한 편이어서 큰 소리가 난 적이 없다, 정아는 소리에 민감하니까 텔레비전도 마찬가지고 노랫소리도 마찬가지고 특히 사람 소리에 조심해 달라고. 그런 일 없으니 염려 말라며 그 사람은 허허거렸지. 또 다른 날에는 그 사람이 너를 의심하는 게 심하다고도 얘기했어. 회사일 때문에 바쁜데 연락이 오는 사람마다 퇴근하고서 왜 연락이 오는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아닌지 의심을 한다는 거야. 핸드폰을 보여 주고 설명해 줘도 계속 트집을 잡아내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서 뭐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고. 그건 우리가 밖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 네가 자꾸 전화만 보고 톡을 보내고 하니까 나는 짜증이 났어. 그래서 그 사람한테 전화가 왔을 때 결국 내가 핸드폰을 건네받아서 지금 나랑 같이 있고, 얘기 좀 하고 싶으니까 이제 연락은 그만하라고, 나랑 계속 같이 있을 건데 우리 좀 내버려 둬 달라고, 사람 좋은 듯이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내 말속에는 뼈가 있었고 날카로웠을 수도 있었을 거야. 난 그때부터 점점 더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아. 네가 왜 그 사람한테 이렇게 매어있어야 하는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말이야.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면 너는 싫어했어. 알아서 하겠다고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 아니라고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넌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어. 나도 더 다가갈 수가 없었어. 네가 싫어하니까.
매일 생각해. 미리 알고 있던 게 있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을지 알지 않았을까. 내가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네 생각은 어때?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