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16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by Chiara 라라

정아야,

마음이 불안하게 헬리콥터가 계속 날아다니고 있어.


헬리콥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커다란 소리, 굉음이 두두두두 들려서 창밖을 쳐다보니까 멀지 않은 하늘에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있더라고. 이 동네에는 비행기도 헬리콥터도 상공에서 보는 게 드문 일이라 귀가 얼얼하기는 해도 고개를 들어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어. 아무리 헬리콥터가 가까이 있다고 해도 하늘이니까 자세하게 살펴보는 건 쉽지 않았는데, 내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이기도 할 거야. 렌즈를 끼고 있지도 않았고 소리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온몸에 긴장감이 팍 돌아서 안경을 찾아서 쓰고 나올 생각도 하지 못했어. 유심히 살펴보니 헬기 한쪽 면에서 희미하게 POLICE라고 쓰여 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어. 경찰이 상공에는 어쩐 일일까. 이곳이 그냥 지나쳐가는 골목으로 쓰였다고 해도 신기해할 판인데 내 눈앞을 날아가던 헬리콥터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지나치더니 크게 돌아서 다시 온 길로 돌아갔다가 조금 뒤에 또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거야. 두두두두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가 또다시 조금씩 커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거 보니까 머리 위쪽이나 뒤쪽에서 크게 돌아서 다시 오는 것 같아. 불이 났다면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릴 것이고, 영화나 뉴스에서 가끔 보이는 추격전 같은 거라면 한쪽으로 사라지거나 경고 방송이 들릴 만도 한데 프로펠러 소리 말고 다른 건 들리지가 않아. 높은 곳, 위에서 내려다보며 찾아야 할 무언가가 있는 걸까. 누가 길을 잃었나. 길을 잃었다고 도시 한복판에서 – 물론 우리 동네는 산과 천이 가까이 있고 도심과는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도시라는 말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 경찰 헬기를 띄우기까지 할까.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아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곤두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야. 게다가 정신없이 창밖을 쳐다보느라고 햇볕을 쬐라고 창 가까이에 갖다 놓은 손바닥만 한 나의 다육이를 쓰러뜨리기까지 했어. 벌써 두 번째 쓰러뜨리는 거야. 흙이 많이 사라졌고 뿌리가 드러나고 있어.


처음 이 다육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정말로 이파리가 오밀조밀하게 붙어서 모여 있는 작은 아이였는데 이렇게 키가 훌쩍 자라서 처음보다 두 배 가까이 길쭉해졌어. 홀쭉해지면서 이파리가 드문드문 따로 떨어지게 되어, 가끔은 가여워 보이기도 해.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주어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하고. 문제는 내 손으로 식물을 기르는 건 처음이라 – 기른다는 표현을 쓰기도 어렵겠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고 가끔 햇볕 쬐라고 창문 가까이 놓아주는 거 말고는 더 하는 게 없어 – 모든 것이 서툴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늘 작은 상태, 처음의 오밀조밀한 그 상태로 남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어느 날 부쩍 자라 있는 다육이를 보면서 당황스럽기도 했거든. 작은 다육이는 귀엽기도 했는데 이제는 마르고 위로만 훌쩍 커 버려서 서글퍼 보일 때도 많아. 그런 생각으로 다육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어느새 이렇게 볼품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버리고 말아.


몇 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살게 되면서, 처음 몇 년간은 집안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나 단 하나밖에 없었어. 작은 방에 책과 책상, 비키니 옷장이 전부였던 것 같아. 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코로나도 터지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혼자서 견디기 힘들더라. 집에 들어갔을 때, 문을 열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는 오늘도 혼자구나, 그래도 어쩌겠어, 견뎌내야지, 하는 생각들로 가득했어. 간절히 원하던 게 살아있는 무언가의 숨소리, 그리고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그 촉감이었던 것 같아. 엄마도 너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었던 지독한 외로움 속에 잠식되어 있던 그때,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도 자주 생각했어. 살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이야. 그냥 숨 쉬고 있으니까 살아지는 것이고, 태어났으니까 꾸역꾸역 살고는 있는데, 왜 살아가는지, 나의 소명은 무엇인지, 내게 주어진 소명이란 게 있기는 한 건지, 들숨과 날숨에 모두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을 거야. 더 힘든 시간은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힘듦에는 한계치가 없어서 하나를 넘기면 적응되지 않는 또 하나의 새롭고 더 강도 깊은 힘듦이 나타나서 기록을 경신하게 되더라. 왜 그랬어 정아야....


어느 날 특별한 이유 없이 유미가 선물을 보내왔어. 그냥 내 생각이 났대. 이 작은 아이를 보았는데 코로나 속에서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고 하더라고. 다육이를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식물을 기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싶으면서도 선물이니까 일단 수락을 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지. 배송되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문득 눈치채고는 괜히 혼자서 머쓱해했던 게 기억나. 약간의 설렘 같기도 했어. 식물이, 초록색 작은 아이가 나에게 오고 있다는 생각에. 다육이가 도착했는데 손바닥보다도 작았고, 단단하고 동그란 초록색 잎이 다닥다닥 여러 개 달려 있었어. 벽돌색 작은 화분에 돌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화분을 받치는 받침은 나이테가 보이는 작고 동그란 나무였어. 그리고 함께 들어 있었던 '기운 내, 넌 이미 멋있는 사람이야'라는 응원의 메모를 본 순간 왜 그렇게 울컥하던지. 힘이 나지 않는 상황이지만 응원의 말은 듣고 싶었나 봐. 그 메모를 화분과 받침 나무 사이에 끼워놓았어. 요즘에도 그 메모를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곤 해.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 적어도 지금은 살아 있어야 한다고 기운을 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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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육이를 보면서 이름을 지어줄까 했는데, 특별한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았어. 그 뒤로 그 작은 아이의 이름은 다육이가 되어 버렸지. 평범하고 흔하면서도 특별한 반려식물이 되었어. 이름이 생기는 순간, 내가 그 이름을 불러 버리는 순간, 다육이와 나는 특별한 인연이 되어버린 거야.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듯이 관계가 맺어진 것이지.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 장미에게 길들여졌다고 느끼는 어린 왕자처럼 나도 다육이에게 길들여진 것 같아. 많은 사람이 <어린 왕자>에 대해서 흔하게 알고 말하고는 있지만 어린 왕자와 여우의 그림 말고는 – 추가되는 게 있다면 바오밥 나무와 장미 정도가 될 것 같아. 아, 상자 속 양 그림도 인상적인 장면이 될지도 모르겠다 – 다른 생각을 덧붙여서 하지는 않는 것 같아. 어린 시절 꼭 읽어봐야 해서, 아니 어른들이 읽으라고 해서 읽었고, 얇으니까 읽기는 했는데 어린 시절 딱 그만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이상의 깊이는 없는 그런 책. 하지만 성인이 되어 <어린 왕자>를 읽으면 공감 가는 내용이 더 많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반성하게도 되고, 가슴 아프고 절절해지기도 하고,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게 되기도 하더라. 아무튼, 다육이는 그렇게 나에게 왔어. 그렇게 몇 년 동안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작은 식물이 큰 위로가 되더라. 식물도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 살아있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숨을 쉬는 것을 내가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아닌데 그 존재만으로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지더라고.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거, 정아 너도 그 느낌을 알려나?


너는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외로웠겠지. 외로운 순간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옆에 늘 누군가가 있었어도, 잠시도 혼자인 적이 없었어도, 외로움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올 수 있으니까.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체가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아니라 단지 상대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어. 누군가와 계속 함께 있다는 느낌, 그런 거 잘 모르겠어. 너 말고는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으니까. 한 배에서 자라고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서 통하는 게 있는 건 당연한 걸까? 늘 붙어 있을 때에는 강렬하기도 했는데,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는 덜 하기는 했어도, 미세하게나마 마음으로 느껴지는 게 있었어. 각자의 생활 속에서 상대를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말로 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점점 그 느낌이 너에게서 오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거든. 피하는 거였겠지. 좋은 느낌이든 안 좋은 느낌이든,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따뜻하면 따뜻하니까 이런저런 핑곗거리는 많았어. 나의 게으름과 나약함이 가장 큰 이유였을 거야. 내가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너는 경험하고 있다는 질투도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었겠다.


헬기가 떠 있을 때 그날의 그 느낌이 다시 살아나서 난 두려웠어. 어디에선가 불안한 일이, 안 좋은 일이, 누군가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두두두두 헬리콥터의 플로펠러 소리.


자연이나 환경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동물들이 먼저 알아차린다고 해. 그래서 동물이나 곤충들의 이동을 살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어. 우리 동네는 산도 많고 천도 가까워서 새소리가 많이 들리는 편인데 프로펠러 소리에 묻혔던 새소리가 지금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헬기는 이제 돌아오지 않고 있어. 소리가 멀어지고 아무런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이 평상시 모습이야. 아무래도 사건이 해결됐나 봐. 어쩌면 아무런 사건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어떤 일이든 좋은 쪽으로의 해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화살기도를 바쳤어.


일상에서의 이 작은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어. 화재가 났던 순간, 소방차가 이동하며 내는 소리, 경찰차의 사이렌, 급박하게 움직이던 파랑과 빨강의 불빛들. 더 이상의 아픔은 이제,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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