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20

[우리들], 윤가은

by Chiara 라라

정아야,

너랑 특별히 다시 얘기하지는 않던 게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떠올랐어.


우리가 한 6살인가 7살 정도 되었을 때 나만 일 년 가까이 할머니랑 같이 지낸 적이 있어. 그때의 기억말이야. 그때의 우리에 대해서는 서로 별로 말을 꺼내려한 적이 없는 거 같아. 너무 어렸기도 했고, 어쩌면 나는 내가 그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것조차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


어제 경미를 만났는데, 집에 오는 길에 문득 느껴졌어.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나는 할머니네 집에 가고 싶지 않았어. 너와 떨어진다는 게 공포스러웠던 것 같아.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일이기도 했으니까. 할머니네 집에 왜 나 혼자만 그렇게 뚝 떨어져서 가야 했을까. 물론 꼭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었겠지. 그걸 어른들이 나한테, 우리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서 나는 더 싫었을 거야.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고 해도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였을지도 모르고.


할머니가 나를 특별히 더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우리 둘을 비교하자면 조금 더 다루기 쉬운 아이로 생각하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있는 아이, 있으니까 지내야 하는 아이, 다시 돌아갈 때까지는 함께 지내야 하는 아이 정도로 생각하셨을 것 같아. 당신의 딸이 낳은 딸. 손녀라고 부를 텐데, 손녀라는 단어에는 어느 정도는 애틋함이 묻어있지 않나. 할머니에게는 그런 마음이 작용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 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가 우리에게.


나이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니까 6살 반이라고 할게. 6살 반의 나에게는 하루가 너무 길었어. 새벽같이 일어난 할머니는 밥상을 뚝딱 차려서 '아침 먹어라.' 한마디 하셨고, 더 자고 싶거나 뒤척거리고 싶어도 할머니한테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억지로 일어나 꾸벅꾸벅 졸면서도 아침을 먹었지. 천천히 밥을 먹고 나면 잠이 조금 깼는데 그제야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멀뚱히 앉아 있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야. 나는 놀고 싶었어. 평소의 하루라면 아이 입장에서 충분히 잤다고 느껴지는 너무 이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늦지도 않은 아침 시간에 일어나서 엄마가 준비해 놓은 시리얼이나 빵으로 아침을 먹고 엄마가 출근 준비를 할 동안에 세수하고 양치질을 했어. 우리는 둘이니까 재잘거리기도 했지만 엄마가 하라는 대로는 잘 따랐던 것 같아. 쌍둥이지만 여자아이라서 키우기가 수월하긴 했다는 말을 커서 얼핏 듣기도 했는데, 칭얼거리지 않고 얌전한 아이를 볼 때면 나는 왠지 아이 같지 않았을 우리가 생각나서 서글퍼지곤 해. 아이라면 어른보다는 조금 더 자기중심적이고 원하는 대로 하려고 칭얼대기도 하고 때 쓰고 울기도 하는 그런 작은 존재여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도 환하고 밝았던 정아 너는 어린이집에서도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았다. 나는 집 밖에 나가기만 하면 몸을 웅크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너를 졸졸 따라다니기에 바빴는데, 넌 나의 작은 수호천사였어. 그때는 나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지만, 얼마나 작은 우리였을지. 실제로 우리는 2.1kg 정도로 태어나서 그 이후로도 주욱 몸무게도 키도 큰 축에 속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할머니 집에서 지내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았어. 할머니가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다는 생각에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걸까? 엄마가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지금에서야 궁금해진다. 너는 그때 우리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변함없이 다니고 있었거든. 그 당시에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넘어가서 내가 조금 느린 아이가 된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으면 하루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길어져. 어린이집에서 간식을 먹고 놀이를 하고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하는 그 많은 활동 시간을 혼자서 견뎌내야 하거든. 아무리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더라도 자신을 압도하는 수많은 시간 앞에서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거야. 집에서 가져온 나의 작은 꾸러미 안에는 내가 좋아하던 그림책이 두어 권 있었고, 잘 때 껴안고 자던 곰돌이가 있었고, 중요한 보물만 엄선해서 넣어온 과자 상자가 있었어. 그 상자 안에는 우리 둘이 똑같이 갖고 있던 보석 반지와 색색의 알로 꿰어진 팔찌, 작은 돌 몇 개가 들어있었는데 귀하게 여기고 아끼느라 매일 열어보며 쓰다듬기만 했던 것 같아. 집안에 돌아다니는 광고지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끄적이기도 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할머니는 어느 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들어오셨어. 무심히 이거 쓰라며 건네주시는데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꽉 껴안았어. 할머니는 놀란 것 같았는데도 뿌리치지는 않으시더라.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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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은 우리가 살고 있던 집보다 조금 작았는데, 할머니 혼자서 생활하시기에는 무리 없는 크기였을 거야. 작은 아이 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늘어서 조금은 꽉 차 보일 수도 있었던 집. 집이라고 하기에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작은 내 눈에도 한눈에 다 보이는 부엌과 거실 때문에 방같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어. 한쪽 구석에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그 옆에는 화장실 문이 있었어. 작은 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거대해 보이는 베란다도 있었는데 상추 같은 채소가 자라 있는 화분들이 여러 개 있었어. 신기했던 건 까만 천으로 덮여있는 화분같이 생긴 꽤 큰 시루가 있었거든, 그게 콩나물이었어. 콩나물은 쑥쑥 자랐고 그걸 지켜보는 건 할머니와의 생활 초기에 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지. 덕분에 갖가지 콩나물 요리를 먹을 수도 있었어. 거실에는 낮은 장 위에 텔레비전과 전화기가 나란히 있었어. 네모난 접이식 테이블도 있었는데 거기에서 밥도 먹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이것저것 올려놓기도 하고 다용도로 사용했어. 접이식이지만 늘 펼쳐져 있었고 놓여있는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야. 할머니 혼자서 밥을 먹기에는 조금 넓은 느낌이 들었지만, 덕분에 어리고 작은 나에게 편안한 책상이 생겨서 나는 좋았지.


할머니는 소일거리를 끊임없이 하셨는데 손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계속 만드셨거든. 나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내던 그동안에는 할머니가 늘 일하던 식당에는 나가지 않으시고 집에 계셨어. 할머니와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나는 슬펐어. 할머니 집에 오는 그날부터 무언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으니 집에 가고 싶다고 떼쓰지 못했고, 네가 보고 싶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조금 더 큰 아이였다면,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학생이었다면 아마도 너에게 편지를 썼을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과 눈에 보이는 아무 거에 대해서라도 썼을 거야. 그렇게 외로움과 쓸쓸함과 서글픔을 풀어나갔을 거야. 하지만 6살 반의 아이는 표현에 서툴렀고 글도 제대로 쓸 줄 몰랐어. 어쩔 수 없이 구석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동안은 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인형이랑 놀기도 하고 콩나물을 관찰하고 채소들을 바라보며 베란다에 앉아 있곤 했어.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슬픔에도 익숙해지더라. 그리고 차츰 밖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어. 간간이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거든. 할머니는 놀이터가 있으니 나가보라는 말도 하지 않으셨고, 그저 이틀에 한 번씩 장 보러 갈 때만 나를 데리고 다니셔서 나는 근처에 뭐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어. 할머니는 내가 알 수 없는 볼일을 보러 나가 실 때도 '나갈래?', '있을래?' 단 두 마디였고, 나는 대부분 '집에 있을래요', 로 답했으니까. 너 같았으면 무조건 할머니를 따라서 나갔을 거야. 할머니가 아무 말 없어도 밖에 나가자고 조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먼저 나가자고 여러 번 말을 건네기도 했을 테고 말이야.


할머니 집은 5층은 되었을 법한 낡은 빌라에 있었고 너무 당연하게도 엘리베이터는 없었어. 할머니는 3층인가 4층에 살았던 것 같은데 나의 그 짧은 다리로 올라가기에는 너무나 멀고 너무나 높고 또 너무나 힘겨운 높이였어. 시골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골 같은 곳. 그곳에는 네가 없었고 밖에 나가기 위해서 나는 상당한 용기를 내야만 했어. 힘겹게 올라간 만큼 혼자서 다시 내려오는 건 더 깊은 두려움이었을지도 몰라. 너에게 의지하고 지냈던 이전의 그 시간을 나만 그리워했을 것 같아서 이때의 얘기를 더 꺼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 너는 잘 지냈을 거라는 확신이 그 당시 어린 마음에도 다시 생각해 보는 지금 마음에도 자리 잡고 있으니까.


할머니가 살고 있는 빌라에서 나오면 놀이터같이 생긴 공터가 있었어. 그 옆에는 공원처럼 어른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들과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개씩 있었고. 낮에는 노인들이 조금 보였지만,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어른들은 거의 볼 수 없었어. 지금 같아서는 어린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말이 되냐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이없어하겠지만, 도심에서 벗어난 동네여서 그랬는지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아이들은 자유롭게 동네를 활보했어. 어린아이들이 많았고, 나이가 많아 봤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였던 것 같아. 중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큰 언니나 오빠는 기억에 없거든. 그렇게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늘 두 패거리로 갈라져 있었어. 같은 장소에서 놀고 있어도 다르게 무리 지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물론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무언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어린아이 눈으로 보기에도 다른 아이들.


할머니와 장 보러 갈 때 지나가던 아파트가 있어. 조금씩 개발을 하고 있는 동네였는지 할머니 빌라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고 훨씬 높아서 눈을 들어 쳐다봐야 하는 그런 아파트였어. 놀고 있는 아이들의 두 무리 중에서 한쪽이 아마도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깨끗한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었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내가 사는 그 집, 할머니 집이 있는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 같았어. 나에게는 조금 더 친숙했던 나머지에 속한 아이들. 사실 겉모습으로는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어. 하지만 다른 기온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런 게 있었어.


한참을 놀다가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오면, 두 무리는 그 시간도 달랐는데, 아파트가 있는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보통 어른들이 아이들을 부르러 나오곤 했어. 그리고 빌라 쪽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더 늦게까지 있거나 스스로 배가 고파지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고. 나는 그 중간이었어. 그 아이들보다 더 작았으니까 일찍 집으로 돌아가던 때가 많았고, 어느 날에는 할머니가 나올 때까지 밖에 있기도 했어. 할머니랑 같이 집에 돌아가다가 어떤 아이의 엄마가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저 아이들이랑 놀지 마.'


크게 차이가 나는 환경은 아니었을 거야.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어. 어쩌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다름 혹은 배척이었을 거야. 사람은 다르다는 걸, 그걸 느꼈을 거야. 맞아, 사람 다르지, 달라. 환경도 생각도 성향도 모든 것이 달라. 하나도 같을 수는 없어. 아무리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이라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같을 수는 없지. 특히 가난의 냄새는 지울 수 없어.


나는 그렇게 처음 경험하는 것들로 그 일 년여의 시간을 보냈고 조금 더 말수가 적어진 상태로 너에게 돌아왔어. 너는 여전히 밝았고 내가 그리웠다고 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 혼자만 느꼈던 다름의 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다름은 너와 나 사이에도 있었어.


다름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존재해. 어렸을 때는 그런 걸 잘 알지는 못하고 그냥 조금씩 이상하다고만 느꼈던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숨 쉬는 곳곳에서 또 마주하는 자리 자리마다 다름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느껴. 다름과 틀림이 종종 잘못 사용된다고들 하는데, 다르기 때문에 틀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인정하려고 들지 않곤 하지. 옳고 그름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그름에 대해서 입 뻥긋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어. 틀리다고. 잘못됐다고 그른 일이라고 한마디 할라치면 내가 그 한마디로 인해서 책임져야 하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서겠지. 아니, 어쩌면 무게가 아니라 무게가 지워질까 봐 두려워서 피하는 걸 거야. 두려움을 가장한 비겁함.


그때 난 너에게 그건 잘못되었으니 바로잡아야 된다고 말하지 못했어. 난 비겁해.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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