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22

<감기 걸린 날>, 김동수

by Chiara 라라

정아야,

이 더운 여름에 감기에 걸려 버렸어.


자면서 틀어놓은 작은 선풍기 바람 때문인 것 같기도 하도, 땀을 뻘뻘 흘리다가 들어간 실내의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해. 어쩌면 잠을 잘 자지 못해서거나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눈을 떴는데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두통이 왔고, 목도 약간 따끔따끔했어. 감기가 오려나 보다,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증상 있잖아. 하지만 첫날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 많이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또 그런 증상 말고도 중요하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은 일상에 태반이잖아. 하루가 지나고 그다음 날, 목에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 침을 삼킬 때 이물감이 느껴져서 불편하기도 했고. 아, 목감기구나. 이제는 약을 챙겨 먹어야 할 시간이야. 하지만 다행히도 몸살이 오거나 다른 곳이 아프지는 않아서 비타민을 평소보다 종류별로 더 챙겨 먹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프로폴리스도 챙겨 먹으며 하루를 보냈지. 프로폴리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서진이가 프로폴리스를 일 년 정도 먹었는데 먹고 나서부터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야. 면역력이 확실히 향상된 것 같다고 하면서, 항산화 작용도 하고 염증예방도 되니까 나처럼 감기나 염증을 달고 사는 사람은 꼭 먹어야 된다면서 강력하게 추천을 해 줬어. 스프레이로 된 프로폴리스가 효과가 좋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게 너무 독한 것 같아. 스프레이를 한번 뿌리면 목구멍에 마비가 오는 듯한 느낌을 받거든. 그 느낌이 왠지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싫더라고. 독하게 느껴지면 물에 희석해 마셔도 된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정성 들여 챙겨 마시게 되지도 않았어. 그래서 서진이가 직접 찾아보고 추천해 준 - 서진이 성격 엄청 꼼꼼하잖아. 다양한 제품들 다 비교 분석해서 가장 괜찮고 저렴한 걸로 찾아줬어. 나야 이렇게 잘 챙겨주는 친구가 있으니 늘 고맙지. 너도 같이 먹으면 정말 좋을 텐데. - 캡슐형, 하루에 한 개만 먹으면 되는 캡슐형 프로폴리스를 몇 달 전에 구입했어. 매일 먹어야 아무래도 효과가 좋을 텐데 무언가 매일 지속적으로 챙겨 먹는 건 쉽지 않아. 그건 너처럼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편하고 쉬운 일일 텐데 나는 왜 안 될까. 단순하게 하루의 루틴을 정해 놓고 그대로 하는 편인데도 약을 챙기는 건 참, 잘 안된다. 그래서 감기에 걸린 걸까.


은근히 깐깐한 나에게 허술한 점이 있듯이 은근히 허술해 보이는 너에게도 꼼꼼한 면이 있는 게 이런 거, 약 챙겨 먹는 일일 거야. 너는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컵과 아니지, 물 여러 컵과 함께 – 물먹는 하마처럼 너는 물을 참 잘 마셨어. 신기해. 나는 하루에 한 잔을 다 채워 마시는 것도 잘되지 않았는데 말이야. - 공복에 먹어야 하는 영양제를 먹고, 간단하지만 정성스럽게 아침을 차려 먹은 뒤에는 식후에 먹는 영양제를 먹었어. 그리고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 네 모습은 참 기운차 보였어.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데, 아침밥의 힘인지 영양제의 힘인지. 이 둘 다 때문에 네가 건강할 수, 혹은 건강해 보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겉으로 건강해 보인다고 속까지 건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닌데 사람은 눈으로 50% 이상은 판단하고 넘어가는 동물이라 늘 지나고 나면 후회하게 된다. 웃고 있고 해맑아 보이는 사람은 아픔 하나 없이 상처 한 번 받지 않고 귀하고 곱게 자랐을 거라고 판단하기도 해. 나도 많은 사람을 그렇게 판단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러워하기도 했고, 질투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어. 우매한 사람이야, 나, 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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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아팠는데도 자기 전에 감기약을 챙겨 먹는 걸 깜빡했지 뭐야. 그렇게 셋째 날 아침이 밝아왔고 목에는 가래가 잔뜩 꼈어.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고 갈라져서 누군가와 대화하게 된다면, 나 감기 걸렸어요,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을 정도였어. 따끔따끔한 정도도 심해져서 너무 불편하고 아프고, 게다가 기침 한번 크게 했더니 콧물까지 주르륵. 열감도 조금 있었는데 체온은 정상체온에서 약간 높은 정도로 그렇게 높지는 않았어. 날이 더워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싶더라. 집에 늘 상비해 두는 종합 감기약을 먹고 샤워로 밤사이 흘린 땀을 깨끗이 씻어 냈지. 다행히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잠을 더 자기로 했어. 감기는 잘 먹고 잘 자면 싹 낫는 병이라고 어디서 들었거든. 근데 너무 덥더라. 약하게 선풍기를 틀어놓기는 했지만 감기 때문인지 바람이 닿는 곳에 오한이 들어서 이불을 덮고 땀을 흠뻑 흘리면서 한숨 더 잤어. 더워서 더 깊이 잠들지는 못했던 것 같아.


평소에 땀을 많이 흘리기는 하지만 땀과는 별개로 나에게 더위는 어느 정도는 견딜만한 내 인내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어. 살면서 적응된 익숙함의 한 종류일 수도 있고 나의 미련함을 보여 주는 단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유독 감기에 잘 걸리는 나에 비하면 너는 꽤 건강한 편이었어. 내가 감기에 걸리거나 장염에 걸려도 옮는 법이 거의 없었지. 쌍둥이나 가까운 자매들, 식구들은 한 명이 아프고 나서 괜찮아지려고 하면 다른 한 명이 아프고 그렇게 거의 모두에게 전염이 된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아니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는 나만 아프고 잘 넘어가곤 했던 기억이 나. 그때는 왜 나만 이렇게 아플까, 억울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네가 아팠으면 난 안절부절못했을 거고, 엄마가 아팠다면 엄마 자신이 더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야. 어쩌면 엄마는 아팠을 때도 우리에게 표를 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우리 세 식구가, 할머니까지 우리 넷은 참 잘 참았거든. 참는 거에 익숙해지면 남들도 이 정도는 평소에 아플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 정도 아프다고 병원에 갈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 남들은 다 잘 참고 지나가는데 나는 너무 자주 아파서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유치원 선생님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정아 네가, 판단해 주었던 것 같아. 열이 있는지 없는지,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안 가도 괜찮은지, 약국 약만 먹어도 괜찮은지, 약은 먹지 않아도 잠을 푹 자면 나아질 건지. 그리고 중학교 이후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고 참고 쉬고 그랬었네. 안 그래도 바쁘고 우리를 키우느라 힘드신 엄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 더 그랬을 거야 우리.


너무 잘 참아서 속상했던 순간들이 많아. 할머니는 넘어졌는데 발목에 실금이 간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일하시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깁스를 오랫동안 해야 했잖아. 할머니처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넘어짐에 특히 조심해야 한 대. 젊은 사람들과 똑같은 상태로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뼈가 약해서 크게 다칠 수도 있고, 한번 다치면 회복 속도가 굉장히 느릴 수밖에 없다고. 실금이어도 걸을 때마다 아프셨을 텐데, 걸음걸이도 불편하셨을 텐데, 괜찮다며 전혀 의심하지 않으셨던 할머니. 오른쪽 발목에 깁스를 하고 뼈가 완전히 붙고 나서는, 그 치료 기간 동안 왼쪽에 힘이 많이 가서 오히려 왼쪽 무릎에 무리가 갔던 할머니. 요즘도 오른쪽 발목이랑 왼쪽 무릎은 자주 시큰거리시는 것 같아. 발목이랑 무릎을 주무르고 계시는 모습을 종종 보거든. 다시 생각해도 속상하다. 그래도 할머니는 앓고 계신 지병은 없으셔서 그나마 다행이야. 한 번은 엄마가 피에 오줌이 섞여 나왔는데도 통증이 별로 없다고 괜찮겠지 하면서 우리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버티다가 입원도 하고 수술까지 해야 했잖아. 신장에 돌이 생겨서 그런 거라는데 담석이라는 걸 얘기는 들어봤어도 직접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병원에 빨리 갔으면 자연적으로 배출이 되게 하거나 약물 요법을 시도했을 수도 있는데 돌이 너무 크고 위치도 안 좋아서 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 우리에게 병원이나 입원, 수술은 너무나도 먼 세계의 단어여서 많이 놀라고 긴장했었어. 큰 병원에서 '주치의'라고 불리는 의사의 얘기를 듣는 것도 너무 어색했다. 그래도 엄마 혼자 가겠다는 걸 함께 가서 옆에 있었던 거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도 나도 번갈아 가면서 엄마 옆을 지켰는데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어. 애정이 조금 더 깊어진 것 같다고 할까. 애정보다는 연민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로결석이라고 진단받았었지 아마. 그때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요로결석은 유전적인 요인이 있다고 했고, 물을 적게 마시거나 땀을 너무 많이 흘리는 것도 돌이 생기는 원인이라고 했어. 그래서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 나, 땀을 많이 흘리는 나, 엄마와 닮아서 자꾸만 피하고 싶어지는 나. 나도 조심해야 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또 잊고 있었네.


너는 열이 40도가 넘는데도 괜찮다고 하면서 출근한 적도 있었고, 나는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이 강의만큼은 어렵게 얻은 거라 절대로 휴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병원을 나중에 가기도 했어. 삶이 빡빡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면 우리도 이렇게 모든 상황에서 다 괜찮다 괜찮다 여기지 않았을지도 몰라. 누구나 다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은 일관적이지 않다는 걸 알지 못했어. 힘듬의 평균 기준이 있다고 규정하고 힘들다고 표현하면 내가 약해서 평균치에도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아픔과 고통을 표현하는데 조금만 덜 인색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약 먹고 자고 땀을 흘리고 일어나서 샤워하고 위가 쓰리지 않을 정도로만 무언가를 먹고 또 약을 먹고 자고 땀을 흘리고 그랬어. 일어날 때마다 목은 더 아팠고 기침이 나왔어. 가래도 심해졌고. 그러고 보니 열이 심하지 않아서 코로나라는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네. 그렇게 꼬박 이틀을 보냈더니 오늘은 조금 괜찮다. 오후에 일이 하나 있었는데 양해를 구하고 다음 주로 연기했어. 시원한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밖에 나가고 싶지는 않더라고.


아프면 정신없이 꿈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 꿈을 깨고 나면 네 생각이 나. 엄마랑 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하고. 넷이서 한 자리에 모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특별하지 않았을 우리 생일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평범한 하루로 되돌아가고 싶다. 정말로.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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