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28

<철학자의 음악 서재, C#>, 최대환

by Chiara 라라

정아야,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할까.


누구나 마음속에 소심함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유독 심한 것 같아. 그 소심함이 겉으로는 표현이 잘되지 않는 게 – 물론, 이건 내 생각이야, 타인은 나를 겉으로도 속으로도 완전히 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 다행이다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속으로 너무 소심해서 나 자신이 별로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싫다고 말을 하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거야. 문제는 좋아하는 것마저도 표현을 잘하지 못한다는 거지. 그게 더 속상해. 원하는 걸 말하는 데에도 심히 주저하고 말이지. 결국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거나 좋아하지 않는 거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 계약을 할 때도 마찬가지야. 내가 불리해 보이는 조항이 있으면 그걸 하나하나 따지고 들지는 않더라도 요런 것이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집어 가리키며 얘기를 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상대가 다 이유가 있겠지, 알아서 생각해 주겠지,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나의 용기 없음을 가리려고 한다니까. 바보같이. 그러니까 자꾸 손해나 보고 다니지. 어떤 때에는 똑 떨어지게 말을 하면서 의사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정작 나에게 진짜로 필요한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버리고 말아.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그러고 나면 또다시 나 자신이 한심해지는 거야. 좋고 싫음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알 수가 없겠지. 그들의 탓이 아닌 거야. 내가 좋아한다고 당당히 소리 내어 말하는 건 책과 감자칩 밖에 없는 것 같아. 지인들도 이거만큼은 명확하게 알고 있어.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할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소심한 건지, 내가 원하는 걸 선택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인지 잘 모르겠어. 나의 소심함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크고 깊어지나 봐. 한 살 한 살 나이가 차고 그와 더불어 지혜가 쌓이면서 소심함이 섬세함으로 바뀌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 ‘소심하다’의 뜻이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 (표준국어대사전) 니까 소심함의 반대는 대담함이나 대범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통 그렇게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사전을 찾아보니 소심의 반대는 호기, 호방 이런 단어들이 나오네. - 호방하다 : 의기가 장하여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다. (표준국어대사전) -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소심의 반대는 표현인 것 같아. 어쩌면 용기가 될 수도 있고. 용기 내여 표현하기,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건가 봐. 나는 소리 내어 표현하는 게 어려워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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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 정아, 네 탓이야. 내가 이런 소심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거. 어렸을 때부터 네가 내 옆에서 다 챙겨주고 다 해주고 대신 싸워주고 해서 내가 이렇게 소심한 어른이 되어버린 게 분명해. 조금 덜 챙겨주고 조금 덜 친절했다면 나도 너 같은 어른이 되었을지도 몰라. 너는 대범하고도 멋진 사람이 되었잖아. 사계절의 인물로 자랐지. 정아 너는 사계절의 인물인 거 같아.


사계절의 인물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니?


나도 처음 들어봤는데, 에라스뮈스의 <격언집>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와 있대.


진지하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사람이면서 다른 이들이 그와 기꺼이 어울려 지내길 바라는 사람을 두고 옛사람들은 사계절의 인물이라고 불렀다. _<격언집> 86페이지_ 부북스_ 2014년_ (철학자의 음악 서재, C# _p.158_)


이 부분을 읽자마자 정아 네가 떠올랐잖아. 사계절의 사람. 너는 친구가 참 많았어. 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어린 사람도 구애받지 않고 잘 어울렸어. 너도 사람들을 좋아했지만 사람들이 너를 더 좋아하고 따랐던 것 같아. 기꺼운 마음으로 말이야. 우린 같으면서도 이렇게 다르구나 싶어서 너의 그건 어디서 오는 걸지 어린 마음에 많이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말이야. 또 어렸을 때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너의 매력이 부럽기도 질투가 나기도 했어. 막상 나보고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하면서도, 네가 나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고 가장 잘 챙겨주는 걸 알았으면서도 삐죽거리기도 자주 했던 것 같아.


쌍둥이는 어쩔 수 없이 비교 대상이 되어버리잖아. 우리의 의사 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사람들은 얘네들은 쌍둥이라면서 왜 이렇게 달라? 생긴 것도 성격도 많이 다르네? 정아는 적극적인데 미아는 소극적이네? 정아는 영어를 잘하는데 미아는 영어를 못하네? 정아는 벌써 다 먹었는데 미아는 아직도 밥을 먹고 있네? 정말로 이런 사소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비교하곤 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거 정말로 폭력적인데 그때는 비교가 이상한 게 아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봐.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소심한 나였기에 속으로만 속상해하기도 했겠다. 나는 다른 쌍둥이들에게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쌍둥이든 누구든 상대에게 제대로 대해야지. 자그맣게라도 폭력을 가하며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쌍둥이라고 둘이 하나의 인격체인 건 아니잖아. 심지어 샴쌍둥이조차도 각자가 각각의 인격체일 텐데, 왜 쌍둥이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사람들의 그런 인식을 강요당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잖아. 나도 일부는 우리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건 우리가 어느 정도 통하고 교감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하나의 인격체여서 그런 건 아니야. 사람들의 무지에서 오는 아니, 무지도 있지만 무관심에서 오는 폭력. 그 폭력을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사람은 한순간 무너지고 말기도 하지. 너도 무너지는 날이 있었을까? 나보다 늘 우월했잖아. 나는 비교를 당하면 내가 늘 아래였으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너에게 얘기하지 않고 혼자 풀 죽어하거나 혼자 삐져 있거나 그랬던 것 같아. 눈치도 많이 봤어. 네 눈치도 엄마 눈치도 할머니 눈치도, 그리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눈치도 정말 많이 봤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의 눈치를 더 많이 본 것 같기도 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들에 신경이 쓰였고, 가슴에 콕 박혀서 빠지지 않았던 말도 많았어. 엄마는 알지 않았을까, 내가 눈치를 정말 많이 본다는 걸. 그럴 때 나에게 칭찬을 좀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 엄마는 너에게도 그렇게 칭찬을 많이 하지는 않으셨으니까 나름 공평한 대우였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너무 정확하게 딱 절반만큼으로 공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어. 물론 내가 우위에 선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네가 사계절의 인물이어서 내가 좋았던 점도 많아. 주위가 늘 밝았고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이었어. 재미있는 상황도 많았는데 웃기고 어이없는 상황만 발생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진지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건 어른이 되어서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긴 해. 우리는 모든 것이 그냥 일상이었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너와 나에 대해서 더 깊이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 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또 너에 대해서는 이제야 많이 자꾸 생각하고 있어. 잊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어서. 네가 나에게 희미해지면 너무나 슬플 것 같아서, 가슴 아프고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자꾸만 생각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 덕분에 즐거웠다고, 고맙다고. 너는 정말 사계절의 인물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위의 책에서 그 문장 다음에는 이어서 이런 말도 쓰여있어.


에라스뮈스는 로마 시대 시인인 엔니우스의 시 한 편도 소개하면서 '사계절의 사나이'는 원칙과 유연함을 모두 아우르는 올바르고도 넓고 깊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는 자족할 줄 알고 행복도 누릴 줄 알지만 허영이나 욕심 때문에 악을 향하지 않을 사람이고 재기가 있으면서도 수다스럽지 않고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가려 행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철학자의 음악 서재, C# _p.158_)


사계절의 사나이가 원칙과 유연함을 모두 아우르는 올바르고도 넓고 깊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는데, 네가 유연함은 있어도 원칙은 조금 피해 가려는 경향이 있다는 게 생각나서 나는 조금 웃고 말았어. 원칙은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내가 꼭 지켜야 하니까 원칙인 거라고 너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말이었는데. 우리는 나의 원칙과 너의 유연함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나 봐. 올바른 인품은 나라고 할게, 너는 넓고 깊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니까. 물론 올바르기도 하지만 나도 뭔가는 가지고 싶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계속 소심하고 너의 아래에만 있던 부족한 나만 생각하다가 이렇게라도 조금은 너의 마음을 나 자신에게 전해주고 싶었어. 내가 이렇게 나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우울해하면 너는 분명히 나의 좋은 점에 대해서 너와는 다르지만 차별화된 나만의 강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위로해 주었을 테니까. 언니처럼. 언니도 아니면서. 그러면 나는 동생도 아니면서 막내둥이 동생처럼 신경질을 내거나 그 위로에 서러웠던 마음이 터져 나와 흑흑 울어버렸겠지. 우리의 일상이 그랬는데. 이젠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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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이나 욕심 때문에 악을 행하지 않는 건 정말 어려워. 정아 네가 딱 그렇잖아. 난 아무래도 너에게 너무 반해 있는 것 같다. 뭐든지 좋은 건 네 생각이 난다니까. 네가 그런 것 같고. 근데 맞을 거야. 네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거.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걸. 어떤 계절이든지 그 계절에 맞게 즐기고 행할 줄 알았던 너니까 이 말과 네가 더욱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이런 표현들을 내가 너에게 그동안 자주 했었을까? 문득 미안해진다.


이번 주는 날이 계속 흐렸어. 중간중간에 해가 반짝 뜨기도 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하더라고. 비 소식도 있어. 비가 내리고 나면 싸늘해지겠지. 가을. 낙엽은 벌써 지고 있다. 낙엽 밟을 때 나는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네 생각을 했어. 언젠가 단풍 보러 갔다가 낙엽 밟으며 그 소리에 감자칩 먹고 싶다고 했던 나에게 그날 집에 와서 커다란 감자칩을 안겨주었던 우리 정아. 네가 건네주는 감자칩이 먹고 싶다.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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