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너 없는 동안>, 이은정
정아야,
사람이 서로 만나서 관계가 맺어지면 무조건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인연이라는 단어는 ‘인할 인(因자)’에 ‘인연 연(緣)’자를 사용하는데, ‘인하다’는 의미가 ‘어떤 사실로 말미암다’는 의미를 지니니까 간단히 말하면 관계가 맺어지는 것 자체를 인연이라고 하는 것 같아. 그렇다면 세상에 스치듯 지나가더라도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다 인연이 되는 건가 봐. 선연도 있고 슬프지만 악연도 꽤 많이 존재하지.
우리가 함께 한 시간만큼, 딱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너와 내가 공통으로 맺은 인연들. 가족은 몇 없지만 지인들만 따지고 들어도 우리가 어린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렇게 적은 숫자는 아니더라고. 특히 너로 인해서 나와도 맺어진 인연들이 있는데 그들과 나는 서로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부를 묻고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하는 사이였어. 선연인지 악연인지 알지는 못해도 너로부터 엮어졌으니 선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과 지금은 연락하고 지내지 않아. 그 사건 이후로, 그들도 나도 서로, 어쩌면 나 혼자서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렸어. 너로 인해서 맺어졌는데 네가 중간에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그만큼 그들과 나의 관계가 단단하거나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그런 인연이 아니었던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들을 보면 네 생각이 나고, 네가 없는 게 이상하고, 슬프고, 화가 나고,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겠어. 물론 그들과 따로 만난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러니까 이런 인연은 사그라져 가는 거야. 그러다가 사라져 버리겠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떠오를 때가 있을 텐데, 그 순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없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너는 있었지만 나는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너는 있었지만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없애 버리려고 노력하겠지. 물론 확실하진 않아. 모두가 다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래도 그런 거는 있어. 나에게 이런 관계가 너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거야. 그들에게 너나 내가 없어도 그들은 알아서 잘 살아갈 테니까.
피하고 싶었어. 너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 그 인연들을 없었던 걸로 만들고 싶었어. 네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자꾸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현재로 돌아오고 휘몰아치는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이었어. 그들마저 나를 흔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들 때문에 흔들리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어. 흔들리고 싶지 않았어. 내가 원한다고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이미 많이 어지러웠으니까. 엄마하고도 거리가 필요했던 이유였을 거야. 이런 나를 할머니는 이해하는 것 같았고, 엄마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어. 사실 할머니도 반응은 없었지. 내가 연락도 안 하고 가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조용히 엄마 옆에 계셨으니까 지나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뿐이야.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였을까. 몇몇에게 연락이 왔었어. 그들은 친절한 마음으로 나에게 호의를 베푼 걸지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의 걱정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막 엄마와 할머니의 얼굴을 볼 기운을 내려던 찰나였기에 그 호의를 받고 싶지 않았어. 내가 피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그들도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게 된 거야.
피하는 건 쉬워. 알람을 다 꺼 놓고, 확인을 하더라도 다시 연락을 하지 않으면 되거든. 핸드폰은 늘 전원을 꺼 놓았고, 컴퓨터도 손이 가지 않았으니 완전히 차단 상태.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나를 어둠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마도 너밖에 없었을 텐데, 네가 없으니 그것마저도 해결. 나를 건드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정말 쉽지? 고맙게도 오랫동안 묵묵히 기다려 준 인연들은 있었어. 그걸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고, 이런 관계는 소중히 여겨야 할 거야.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우스워, 나라는 인간이 그렇기도 하고. 아무리 혼자가 좋고 관계 맺는 게 어렵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해도 어느 순간에는 대화나 온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거든. 그건 아마도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따스함을 경험해 봤기 때문일 거야. 모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 느껴본 적이 없으면, 그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을 텐데 그리움이라고 딱 떠올라. 알고 있는 거야.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좋았던 거야. 너와 있었을 때, 네가 있었을 때, 그날 이전의 그때.
인터넷에서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어. 자그마한 대화를 나누었어. 나는 그렇게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니기도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닉네임을 사용하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거야. 그게 마음의 부담을 조금 줄이기도 했어. 아무리 그래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내가 조금이라도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는 않았거든. 나는 역시 소심해서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 거 있지. 내 닉네임 기억나? 한창 싸이월드를 할 때 나는 ‘감자미’였어. 감자칩을 좋아하는 미아. 너는 ‘쩡쩡이네’를 사용했었다. 단순하면서도 촌스러운 우리의 닉네임이 그때는 참 좋았던 것 같아. 내가 맨날 ‘쩡아, 쩡아’ ‘쩡쩡’ 이렇게 너를 불러댔지. 우리의 20대. 그랬다 우리. 지금도 나는 너를 그렇게 소리 내어 불러봐.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부르면 네가 언제 어디에서든지 나에게로 달려올 것처럼.
20대 때 조곤조곤 카페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글 쓰는 모임도 있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었고 합평하는 모임도 있었어. 나는 무서워서 오프라인 모임에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너는 이런 나를 데리고 다니려고 했지만 너랑 나는 취향이 달랐는 걸 어쩌겠니. 심지어 내가 운영했던 카페도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고 나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도 있어. 어쨌든 온라인이니까 그런 용기도 낼 수 있었나 봐. 이번에도 그랬어. 온라인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남겼지. 정확히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몇 년 전에 어떤 책을 읽고 그거에 관련된 검색을 하다가 이 카페를 알게 되었던 것 같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 있었어. 카페 회원들은 책 이야기를 나누었고 깊은 대화도 있었어. 가볍게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그게 더 편안하게 다가왔던 걸지도 몰라. 어디선가 내 글에 대한 따뜻한 말도 들을 수 있어서 계속 남아있었던 걸지도 모르고. 오랜만에 들어갔는데도 그 카페는 따스하게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어. 내가 관심을 갖고 소통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그 사람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는 없었고.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권 책을 선정하고 발제를 한 후에 독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어. 책 선정도 발제도 쉽지 않을 텐데, 내가 잘은 모르지만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어. 이달의 책은 <지니, 너 없는 동안>이라는 소설이었고 내가 늦게 확인해서인지 발제까지 벌써 다 올라와 있었어. 책은 읽지 않았지만 발제를 주욱 훑어보고 있었는데 이런 질문이 있더라.
당신이 주전자 요정 지니의 주인이라면 누구의 불행을 소원으로 빌겠습니까?
램프의 요정이 아니라 주전자 요정이라는 부분에서 웃음을 터트려야 했을 상황인데 나는 심각해졌어. 누구의 불행을 소원할 것인가. 나는 누가 불행해지면 좋을까. 젤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그 남자였지. 네가 누려야 마땅했던 그 존엄한 삶을 그 남자로 인해서 방해받았으니까. 나에게서 너를 떨어뜨려 놓은 장본인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 남자가 불행해진다고 해서 네가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지금 내 앞에서 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있으면 내가 통쾌하거나 행복해지는 것도 아닐 거잖아. 그 남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무섭고 아프고 싫을 텐데 그 불행을 본다고? 불행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 사람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나는 더 고민에 빠져버렸어. 불행을 소원하는 게 과연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 하고. 좋고 싫음의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사람은 인연들로 이어져 있잖아. 얽히고설키고 어딘가에서는 끝내 열결 되어 있을지도 몰라. 한 사람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연쇄작용을 일으켜서 나에게까지 전달될지도 모르고. 일종의 나비효과가 생각나기도 해. 우주적인 시각으로는 굉장히 작은 생명체인 정아 네가, 나 미아의 시각에서는 모든 것이자 전부인 삶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20대 때 가입했던 카페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시간은 무엇이든 없애버리고 바꿔버리는 것 같아. 행복과 불행은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시시각각 느끼는 감정이겠지만 그 또한 바뀌고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닐지 몽몽한 생각을 해보기도 해. 사람의 기억도 마찬가지일까 봐 두려워. 그럼에도 자그마한 소통을 통해서 인연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네가 없는 나의 세계 속, 인연.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게 맞는 거겠지......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