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마지막 편지

[굿 위치], Hallmark Channel

by Chiara 라라

정아야,

상담실에 가면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

지난 한 주 동안에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순간의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괜찮아요, 괜찮았어요, 이렇게 대답하곤 해. 그렇지 않고 진실을 다 말해버린다면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거든.


그 일 이후에, 난 일상이 무너졌어. 무너진 몸과 마음은 회복이 불가해 보였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식도 없었고 그럴 의지조차 지니지 않았던 것 같아. 할머니가 엄마와 함께 있어 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을 거야. 몇 달이 지나고부터 애써 무덤덤한 척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엄마한테 가고 있지만 아픔도 슬픔도 표현하지 않고 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엄마와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런 엄마에게 내가 먼저 너에 대한 말을 건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다만, 쌍둥이 반쪽을 잃은 나와 자식을 잃은 엄마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연민이 존재하고 있어. 이제는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모종의 연대감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겠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네가 있던 자리를 허공에서 더듬어 보기. 그 감촉이 느껴진다고 감각하기.


미아 언니, 너라도 살아야 해, 네가 보내는 압박이 느껴졌어.


상담을 시작했고, 일상생활 회복을 목표로 일이 주에 한 번씩 10회기를 받았어. 일주일에 한 번씩 가야 하는데 그 한 번의 외출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이 주가 되기도 해 버렸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상담사는 노력해. 묶여 있는 마음을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어렵지만 말보다는 글이 편한 사람이라 상담실에서는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아. 하고 싶지 않은 말도 손꼽을 수 없이 많지. 그러다가 너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게 된 거야. 10회기가 지나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어. 의지가 희박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는데 왜 상담을 받으려고 했던 건지. 다 너 때문이지 뭐 다른 이유가 있었겠어.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고 상담사는 나에게 기운을 주었어. 아니, 북돋아 주려는 말을 내게 해 주었지. 기운이 나지도 북돋아지지도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또다시 10회기를 연장하고 반년이 훌쩍 지나갔어. 어쩌면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몰라. 이만하면 충분히 노력했다고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걸 거야. 나아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며 이제는 소용이 없다고 속에서 아우성치는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어. 내가 아닌 나의 목소리였는데 익숙해지지는 않더라. 멈추려고도 했지만 용기를 빙자하여 게으름으로 또다시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10회기가 진행되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어. 절반까지만 하고 종결을 선언했어.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말로 표현하거나 내색하지 않아도 누가 알아서 이해하고 아무 말 없이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어. 내 마음을 내 머리를 그리고 내 안에 담겨 있는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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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만큼의 시간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기에 너 없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어. 많은 생각을 했고, 슬프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것들도 생겨나고 있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스스로 해야 할 때가 있을 텐데, 후자를 선택해 볼까 봐. 이제는 상담사나 약의 도움 말고 스스로 나를 다시 찾아가려고. 어쩌면 다시 찾는 게 아니라 너에게 의존하던 나에게서 벗어나 처음으로 일어서게 되는 거겠지. 아기 새들이 나는 걸 연습할 때 많이 떨어지고 다치고 그런다고 하더라. 그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워서 도와주고 일으켜 주고 다시 둥지에 데려다주고 하면 그 아기 새들은 영영 멀리 날아갈 수가 없다고 해. 나는 연습이 된다고 하더라도 야생에서 살아남을 확률도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말을 들었어. 나는 나이를 많이 먹은 아기 새 같아. 태어난 지는 한참 되었지만 나는 연습이 더뎌서 야생으로 나갈 수가 없었는데, 그런 나를 동생 새가 돌봐주고 이끌어 주고 밥도 찾아다 먹여주고 그랬었지. 어느 날 갑자기 동생 새가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어. 그래야지만 언니 새가 아기가 아닌 정말 언니가 될 수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알아버린 거겠지. 사랑을 가득 품고 언니 새가 야생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멀리서도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믿어. 영혼만 두고 실체는 사라져 버린 동생 새를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동생 새의 영혼을 밥 삼아서 힘을 내려는 나이 많은 아기 새. 언니 새가 되기 위해서는 정아 너를 보내주어야 하나 봐. 너는 지금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는데 말이야.


여전히 네 생각에 아프고 흔들리고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지만, 죄책감을 조금 내려놓고 평생 우리를 기억하며 네 삶까지도 살아가도록 노력해 볼게. 지켜봐 줘.


우리 너무 멀지는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자. 사랑해, 정아야.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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