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의 전설>, 이지은
정아야,
주말에 엄마에게 갔을 때 엄마 집에 할머니가 와 계셨어.
할머니는 그 일이 있은 후 문득 이렇게 한 번씩 엄마한테 다니러 오시는 것 같아. 엄마는 나한테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느낌이었어. 삶은 변하지 않고 흘러가고 있어. 엄마도 다시 일을 하고 있고, 할머니도 여전히 소일거리를 놓지 않으시고, 삶은 이렇게 흘러가. 하루는 지나가고 일주일이 지나면 나는 엄마를 만나러 가고, 그렇게 네 번의 만남을 하고 나면 한 달이 지나가지. 가끔 한 번씩 할머니와 마주치고 그렇게 또 열두 달이 지나면 일 년이 지나간 거야. 일 년이라는 시간, 더디게 가는 것 같았는데 빠르게 지나갔다. 다 지나갔어.
엄마랑 할머니는 이제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게 따로 지내시네. 이 말을 하면서도 어쩌면 할머니는 엄마가 나와 함께 살아도 괜찮을 텐데 여전히 따로 지내네,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네, 누구든지 함께 살아도 괜찮아 보일 법한 가족인데 다 따로 떨어져서 살고 있어. 함께 했을 때 좋은 점도 있겠지만 오래 떨어져 살았으니 따로 지내면서 가끔 한 번씩 손님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사이로 만나는 게 서로를 이해하기에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붙어 있으면 조금 가지고 있는 애틋한 마음마저 얼굴 보면 생기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원망하는 마음으로 번질지도 모르고 무어라도 트집을 잡으려 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냥 따로 지내는 게 최선이겠지?
할머니도 계셔서 오랜만에 셋이 밖에서 밥을 먹자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어. 엄마도 할머니도 별말 없이 따라나서더라. 엄마랑 가끔 집 밖에서 밥을 먹을 때 가는 식당은 정해져 있어. 한 끼로 먹기에 충분하고 집에서 먹는 밥보다는 새로움이 있어야 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의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식당은 몇 안 되니까. 갈비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무난하게 갈 수 있는데 왠지 몸이 조금 약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가게 되는 것 같아. 또 더울 때에는 냉면에 고기가 같이 나오는 식당에 종종 가는데 나는 냉면이랑 고기를 먹지만 엄마는 보통 비빔밥을 시키곤 하셔. 한 끼로 먹기에 냉면은 조금 부족하다 싶기도 하고 속이 차가워지는 것 같아서 그 느낌이 별로이신 것 같아. 차가운 걸 즐기지는 않으시는 걸 보면 너랑 나는 엄마의 식성을 닮지는 않은 것 같아. 차가운 거 라기보다는 면 종류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김치말이 국수나 우동 같이 뜨끈한 면은 엄마가 좋아하신다. 진짜 그러고 보니 엄마는 차가운 걸 잘 드시지 않네. 굉장히 새삼스럽다. 너는 빙수를 참 좋아했는데, 음료도 얼어 죽어도 아이스가 최고라고 여겼고. 뜨거운 음료는 너무 뜨거워서 불어서 식혀 먹느라고 그 본연의 맛을 느끼기가 힘들다고 하던 너의 말도 생각난다. 그럼에도 식사로 먹는 음식은 적당히 따뜻한 게 아니고 뜨겁게 해서 먹어야 몸에 좋다고도 말했었지. 내가 늘 대충 먹거나 데워 먹지도 않고 차게 먹는 걸 아니까 그런 말을 했었어. 식사는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그래야지만 정을 느낄 수 있다고. 나는 그 정을 너를 통해서 느꼈었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엄마 집에서 먹는 밥을 통해서 정을 느끼고 있으려나.
엄마는 여름에도 찬 음식을 즐기거나 찬 음료를 마시거나 하지 않아. 그날 이후로 더 심해진 것 같은데, 온몸에 냉기가 흘러서 땀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속은 차갑다고 했어. 너무 차가워서 덥혀 줘야 한다고. 그래서 밥도 따뜻하게, 국도 따뜻하게, 음료도 따뜻하게, 속으로 들어가는 건 다 따뜻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가 혼잣말을 하듯이 덧붙여 중얼거리는 걸 내가 듣고 말았어. 정아는 차갑기만 할 텐데 나 혼자만 뜨거운 걸 찾네, 내가 그러고 있네. 그 말을 듣고 난 그만 얼어버렸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허둥지둥 댔었다. 물론 엄마는 그 말을 하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었지만.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매운 건 또 좋아해. 너랑 나랑은 매운 걸 잘 못 먹는데 정말로 엄마 식성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매운 게 잘 생각나지는 않는데, 너는 힘든 날이나 화가 나는 날에는 매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씩씩대곤 했어. 그래야지만 스트레스가 풀릴 거라면서. 우리가 가장 잘 먹었던 건 아무래도 우리의 단골 메뉴인 떡볶이. 매운 떡볶이에 – 사실 매운 떡볶이도 아니다, 우리는 늘 순한 맛을 먹는데, 보통 맛으로 주문하면 우리에게는 엄청 매운맛인 거였으니까. - 치즈를 듬뿍 뿌려서 쿨피스와 함께 헥헥 대며 먹었지. 이런 날에는 요리도 하면 안 된다는 게 너의 진심이었어. 좋은 사람들과 소박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에는 기분이 좋은 상태여야 더 효과가 크다는 너의 진심. 진심으로 요리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진심으로 웃었던 우리 정아. 그만큼 매운 음식을 먹을 때에도 진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 둘 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는 못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아서 종종 새로운 메뉴를 발견하게 되면 시도를 해보기도 했었네. 떡볶이 다음으로 스트레스 해소용 음식은 매운 냉면이었어. 나는 매운 냉면은 못 먹겠더라. 그래서 네가 매운 냉면을 시켜 먹을 때 나는 곁에서 오히려 물냉면을 시켜서 먹었어. 얼굴이 벌게져서 매워하는 너에게 물냉면의 시원한 육수를 건네주면서 말이야. 평소에는 화를 잘 내지 않지만 회사나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는 어쩔 도리가 없는지라 손과 입은 매운 냉면을 빠르게 집고 먹느라고 집중을 하고 있고 또 그 와중에 정색을 하면서 화까지 내는 네 모습에 공감을 표현하면서도 그런 네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이럴 때 보면 너는 영락없는 막내가 맞았어. 나도 같이 화가 날 상황도 많았는데 나는 더 크게 맞장구치지도 못하고 왜 그랬나 몰라. 그게 뭐라고. 같이 화내주고 흥분하고 분개하고 욕하고, 그런 게 뭐라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면서 공감의 표시만 했나 몰라. 그렇게 후루룩 얘기를 다 쏟아내고 화를 내고서는 매운 기가 온몸에 도는지 몸을 후드득 떨기도 했었다 너. 맵다 맵다를 소리 내어 말하면서 빙수를 먹어야 해, 그래야지만 매운 기가 사라질 거야, 말하며 성큼성큼 롯데리아로 가던 우리 정아. 설빙은 맛있지만 칼로리가 높고 비싸니까 가끔만 먹기로 하자고 했었지. 롯데리아에서 빙수를 판매하지 않는 시즌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파는 빙수를 사서 작은 숟가락으로 콕콕 찍어서 얼음을 갈아서 먹기도 했고, 그 빙수마저 발견하지 못하면 얼음이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갑자기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된다고 넌 말했었어. 요맘때 같이 바로 된 아이스크림을 말이야. 매운 걸 먹고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면 넌 기분이 좋아졌어. 화가 나는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아이스크림이나 빙수를 먹으면서 행복해했지. 정아 넌, 소박한 행복을 느낄 줄 알았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너의 그, 어찌 보면 단순했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근본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는 거. 나도 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말았는데 지나고 보니,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찾아서 풀어나가지 않으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모든 실들이 꼬이고 꼬여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버리더라고. 너의 실도 그랬고, 나의 실도 지금 많이 꼬여있는 상태야. 네가 있어야 제대로 풀려고 노력이라도 할 텐데...
주방에 있는 할머니를 보면 늘 손으로 설설 음식을 만들어 주셨고, 그 음식들은 그냥저냥 할머니 같은 맛이 났어. 평범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 요리는 할머니가 만든 음식보다 조금 더 간이 세서 그거에 길들여진 우리 입맛은 할머니 음식이 조금은 맹맹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어. 근데, 네 음식은 딱 그 중간이라고 해야 할까, 맛있었어. 할머니 밥보다 엄마 반찬보다 정아 네 요리가 정말로 내 입에는 제일 맛있었어.
할머니는 특별히 식사를 많이 하시거나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이번에도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냐는 내 물음에 아무거나 너희 먹고 싶은 걸로 먹자고 하셨어. 엄마에게로 시선을 돌리니까 곰곰이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바로 낙지볶음 먹으러 가자고 하시더라. 매콤한 걸 드시고 싶으셨었나 봐. 엄마 집 근처에 낙지볶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는 건 아니고, 이것저것 간단하게 한식을 하는 식당인데 거기에서 낙지볶음을 먹어 본 적이 있어. 엄마는 그 식당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 조금 걸어서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말 저녁 시간이라는 게 무심하게도 손님이 많지는 않더라.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는 셋이니까 우리로라도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라면서 자리를 잡았어. 그렇게 큰 식당은 아닌데도 방과 홀이 조금은 구분되어 있는 곳이야. 엄마도 할머니도 방바닥에 앉았다가 일어나실 때면 에고고 소리를 내기도 하고 무릎이 아파 주물 주물 거리기도 하셔서 방에 들어가지 않고 홀에 있는 식탁에 앉았어. 적당히 우리가 먹을 음식을 주문하고 별말 없이 집에서처럼 텔레비전에 시선을 돌렸지. 몇 가지 반찬이 먼저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랑 참기름이 솔솔 뿌려있어서 고소하고 달콤하면서도 매운 냄새가 나는 낙지볶음이 뜨거운 흰 밥이랑 함께 나왔어. 낙지볶음 한 쟁반에 국수 면을 사리로 추가하고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을 낙지볶음 위에 올려서 쓰윽 쓰윽 비볐어. 할머니는 이 식당에 처음 오시는 거라 이렇게 먹을 수도 있구나, 하시면서 호기심을 보이셨어. 나는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니까 면 사리도 콩나물도 듬뿍 넣어서 먹는 걸 좋아하는데 할머니는 그렇게 비벼서 먹는 게 신기했나 봐. 뜨거운 밥을 한 숟가락 뜨고 맵고 뜨거운 낙지볶음을 한 젓가락 집어서 호호 불며 할머니도 엄마도 맛있게 드셨어. 땀도 삐질 흘리시면서 말이야. 나는 매워서 콩나물을 더 달라고 해서 따로 덜어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매운 음식 이어서일까 네가 말한 것처럼 스트레스가 쌓일 때에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풀어야 한다는 말이 맞아서일까 입 안이 타오르며 헥헥 거리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조금씩 마음은 풀리고 따뜻해져 오는 것만 같았어. 할머니와 엄마와 나, 이렇게 셋이서 그 사건 이후로 어쩌면 처음으로 약간의 땀과 약간의 매움과 약간의 안도감을 오롯이 함께 느끼고 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너에게서 풀리지 않은 무수한 실들이 그날 그 순간에 조금은 풀린 것만 같아서 조금 더 안심이 되었어. 고마워.
밥을 천천히 먹었어. 할머니와 엄마는 빨리 먹는 편이지만 밥 한 그릇을 다 드시고 나서도 왠지 젓가락을 놓지 못하시고 계속 조금씩 더 드시더라. 내가 천천히 먹는 걸 아시니까 오늘은 조금 더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먹으라고 그렇게 수저를 내려놓지 않고 계시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먹으니까 맛있네, 말씀하시는 할머니에게, 엄마가 지난번에 왔을 때 맛있다고 하셨어요, 다음에도 또 같이 와요 할머니, 하고 나도 말씀드렸어. 식당을 나서면서 네 생각을 했어.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자고 했지. 배부른데 무슨 아이스크림을 또 먹냐고 두 분은 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내가 무인 가게로 앞장서니까 더는 뭐라 하지 않으시고 따라오시더라. 동네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무인 가게에 엄마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신 것 같았어. 할머니 동네에도 그런 가게가 생겼을 텐데 할머니도 모르시는 눈치셨고. 엄마와 할머니는 무인 가게를 이용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알게 되셨지. 내가 엄마와 할머니께 차근히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충만한 느낌이 들었어. 고작 아이스크림 세 개였을지라도. 다 네 덕분이야 정아야.
이제 여름이 조금 지나가려는 것 같아. 낮에는 아직 햇살이 뜨겁고 땀이 나기도 하지만 저녁에는 바람도 조금은 불고, 그 바람이 조금씩 시원해지고 있어. 무더웠던 여름이 언제였냐는 듯이 가을이 오겠지. 그렇게 한 계절이 또 지나가겠지.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