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17

[오페라의 유령]

by Chiara 라라

정아야,

이승우 작가님의 장편소설 <사랑의 생애> 첫 문장이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이 첫 문장을 읽고 가만히 있었어. 오랫동안. 그리고 생각을 했지. 숙주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누가 사랑하는 사람인지, 나는 왜 책은 읽지 않고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또 습관처럼 사전 앱을 열었어.


- 숙주 : 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 마지막 숙주를 최종 숙주, 발육의 도중에 기생하는 숙주를 중간 숙주라고 한다.


예문

- 겨우살이는 참나무나 버드나무 따위를 숙주로 하여 영양을 얻는다.

- 요즘 대중음악은 변덕스러운 십 대들의 감수성을 숙주로 하여 이윤을 추구하려고 한다.


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이면 거꾸로 말한다면 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빼앗기는 존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공급은 긍정적인 느낌이 있는데 빼앗긴다고 하니 거부감이 먼저 느껴진다. 나의 이런 사고방식.


사랑은 은연중에 시작하는 것 같아. 누군가를 만나서 호감이 생기면 사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랑이 지속되는 것은 몇 번의 만남을 통해서 호감이 증가하고 그 호감이 궁금증으로 발전할 때 이루어지는 것 같아. 궁금증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 질문거리가 많아지잖아? 그게 사랑의 시작이야.


사랑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다면 질문을 많이 하는 자가 사랑에서는 늘 약자일 거야. 질문을 한다는 건 상대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모두 알고자 하는 욕구인데, 상대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 그 사랑은 더 깊어지는 거지. 한쪽만 깊어지는 사랑일지도 모르겠지만. 상대가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깊지 않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의미로 좋게 포장을 할 수도 있기는 해. 사랑은 그런 것 같아. 아무 하고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 하고나 나눌 수는 없는 것. 시작은 할 수 있지만 그 깊이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그는 인상을 쓰고 있었어. 진한 색의 볼캡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키만 큰 그런 남자였어. 봉사를 하러 왔는데 모자를 쓰고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는 띄었지만 사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 호감이라기보다는 비호감이었던 거야. 다른 장소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서 봉사를 하러 왔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어느 정도는 발휘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 그렇게 자신의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을 쓰고 모자를 쓰고 있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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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동을 돌보는 복지관에서의 봉사는 아는 수녀님의 권유로 시작되었어. 장애 아동들이어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데 코로나로 봉사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시더라고. 이해는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하시면서 시간 될 때 한번 와보지 않겠냐고 말씀을 건네셨어. 내가 장애 아동을 잘 도와줄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대학교 다닐 때 했었던 장애 학생 도움 봉사가 생각 나서였어.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생각이 잘 나지도 않아. 누군가가 함께하자고 말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도움이 필요하니까 신청해 달라고 요청받았던 것도 아니라는 것만 기억나. 어쩌면 내가 여태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호기심에 장애 학생 도우미 봉사를 신청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나는 글을 계속해서 써나갈 사람이고 내가 몸으로 하는 경험은 상상과 자료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말이야. 그런 생각들을 했겠지. 대학생 때였으니까. 아르바이트로 바쁘고 교우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지만 삶의 무료함을 없앨 무언가가 필요했던 시기가 20대 초중반이었을 것 같아.


장애 학생 도우미를 신청하면 한 명의 학생을 소개받아.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시험을 보거나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할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도우미 신청을 해서 그 학생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였어. 손이 불편해서 글을 쓰기 힘든 사람,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귀가 어둡거나 들리지 않는 사람, 다른 신체의 사용이 불편한 사람, 등 다양한 학생들이 신청을 한다고 했고, 따라서 도우미와 연결되는 학생들의 장애 정도의 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지. 장애 학생을 도우는 봉사자들은 도움을 준 사항들을 문서로 작성해서 제출해야만 했고,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봉사자 모임에 참석해야 했어. 모임에 가면 담당 직원과 함께 어떤 봉사를 했고,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힘든 점은 없는지, 개선할 것이나 도움을 줄 만한 사항들이 있는지 등등을 나누었어. 나처럼 어린 학생도 있었고 나이가 어느 정도는 있고 사회 경험도 있어 보이는 선배들도 있었는데, 다들 이전에 봉사 경험이 있더라고. 장애를 가진 분들과 인연이 있거나 가족이 장애인이어서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선배도 있었어. 나처럼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준비 없이 어떤 경험도 없이 불쑥 지원을 해서 온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어. 그들은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했는데, 장애인과 함께 하는 생활을 아는 이들이 봉사를 하는 게 난 더 대단해 보였어. 알고서는 선듯 하고 싶지 않고,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 모임에서 알게 되었어. 신체의 일부만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돕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학생은 30대 초반의 남학우였어.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거의 모든 신체가 마비 상태여서 움직임이 불편했고, 또 말도 어눌해서 주의 깊게 들어야지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어.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는 거의 없었을 거야. 학교 선생님들 빼고는. 게다가 남자였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처음에 적잖이 당황했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미안했고,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지 편안해지는 지도 알 수가 없었지.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제대로 약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하는 내가 너무 약해 보였어. 괜히 하겠다고 해서 도움도 주지 못하는구나 자책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당장 그만둘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일단은 해야 할 일을 하기는 했지. 그분은 상당히 밝았어.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분이 먼저 미아 씨라고 부르고 자기에게도 철수 씨라고 부르면 된다고 얘기해 줬어.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나는 누구누구 씨라는 호칭이 어색했고, 닭살까지 돋았지만 뭐 어떡해, 불러달라는데 그렇게 불러야지. 철수 씨는 늘 웃었고, 내가 당황해하면 뭐든지 괜찮다고 자기가 하겠다고 얘기했어. 학기 중에는 리포트 쓰는 걸 도와드렸고, 시험 때가 되면 따로 마련된 강의실에서 시험 보는 걸 도와드렸어. 도우미가 읽어주는 문제를 듣고, 답을 말로 얘기하면 도우미가 받아 적어서 제출하는 그런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더라. 아 맞다, 시험을 볼 때마다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도우미 서약서 같은 것도 써서 제출했던 것 같아.


한번 장애 학생이 도우미와 연결이 되면 각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일 년을 함께 하게 되어 있었어. 중간고사를 지나고 기말고사까지 오니까 말투도 조금씩 익숙해졌고 얼굴도 조금은 편안히 마주 볼 수 있었어. 어떤 질병이나 장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찾아 읽었던 것 같아.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독서와 자료 찾기. 보통 방학에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데, 철수 씨는 방학에도 계절학기를 듣고 있었어. 아무래도 학기 중에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다 보니 다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들이 생기게 된 거야. 또 몸은 불편하지만,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서 굉장히 다양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이어서 학교를 빠지는 날도 많았고 시험을 못 보는 날도 많았거든. 한 번은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는데 시간 있으면 자신과 함께 복지관에 가보지 않겠냐고 하더라. 어떤 마음에서였을지 거절을 하기 그랬던지 나는 그분을 따라가게 되었어. 학교에서만 보던 학생 철수 씨는 길거리에서 영락없는 중증 장애인이었고 사람들은 그를 피하거나 불편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어. 그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까지도 불쌍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그때 사회에서 약자들을 바라보는 눈길을 제대로 받았어. 나도 그동안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무관심으로 일관했었고, 어쩌면 불편해하는 표정으로 약자들을 쳐다봤을지도 모르겠어.


그날 복지관에서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어. 복지사를 만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활발히 말도 건네고 무언가를 분주히 하고 있는 철수 씨를 눈으로 좇는 일 말고는 할게 그다지 없었거든. 봉사를 하러 간 것도 아니었으니까. 철수 씨는 나를 친구라고 소개했어. 학교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친구라고. 나는 철수 씨를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친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 철수 씨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복지사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어. 그분이 철수 씨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는데,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한 아기가 복지관 앞에서 발견됐는데 그게 철수 씨라고. 이런 상황에서 철수 씨처럼 밝게 자라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대. 독립의 의지가 없는 이들이 많다면서, 철수 씨는 혼자서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래도 몸이 불편하니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방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며 안타까워하셨어. 그리고 내가 그 뒤로 내내 생각하게 되었던 말도 들었어. 아무래도 애정을 많이 갈구하고 친절한 말 한 마디에도 마음을 턱 하니 내어 주고 무방비 상태로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이들이라고.


나는 1학년이고, 철수 씨는 3학년이었어. 그 일 년 동안 학교에서 꾸준히 만났어. 철수 씨에게는 미묘한 냄새가 났는데, 휠체어에 계속 앉아 있어서일 거라고, 집에서 세탁기를 스스로 돌리기 힘드니까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세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걸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모른 척 외면했어. 그리고 혹시나 그 냄새가 내 몸에 배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했어. 난 참 이기적이야. 겉으로는 웃으면서 대했지만 친구라는 생각은 끝까지 들지 않았던 것 같아.


일 년이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철수 씨는 내가 다음 학기에도 도우미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 담당자에게 얘기하면 담당자도 도우미를 바꾸지 않는 게 편하니까 그렇게 해 준다고 알고 있더라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 이제 새로 시작할 아르바이트도 있고 일정이 확실치 않아서 도우미 봉사를 내년에는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그건 핑계였어. 할 수 없는 게 어디 있어. 마음만 먹으면 애써서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잖아. 나도 나의 2학년 생활이 어떨지 알 수 없었는데 갑자기 만들어낸 바쁜 아르바이트 자리와 일정들은 말이 안 되는 거잖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외면하고 말했을지도 몰라. 그럼에도 철수 씨는 나의 이 핑계를 아는 건지 모르는 척해 준 건지, 새로 아르바이트를 구했냐고, 잘 됐다고 좋아해 주었어. 아쉽지만 1년 동안 정말 고마웠고, 종종 연락하며 지내자고 했지. 그렇게 안녕.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하고 잘리는 건 아니잖아. 1년이라는 시간을 무시할 수가 없더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기도 했고 어느 정도 동선이 서로 일치하기도 했으니까. 가끔 마주치면 반갑고 종종 궁금하기도 했어, 철수 씨는 어떤 봉사자의 도움을 받고 있나, 건강은 괜찮은가.


분기별로는 전에 갔던 복지관에서 하는 행사에 초대하기도 했고, 장애인 인권 관련 캠페인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어. 애써 피하지는 않았는데 매번 응하지도 않았어. 가끔 한 번씩 참여하고 도와주다가 어느 날 이후에는 거의 내가 연락을 피했고 그 대학 몇 년간의 시간은 그렇게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어. 그 어느 날 철수 씨는 나한테 늘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공연 좋아하냐고 물어보더라. 자신이 장애인이라서 동반 1인까지 대극장 공연을 저렴하게 예매할 수 있다고 함께 보고 싶은 뮤지컬이 있다고 하면서. 대극장 공연은 너무 비싸니까 나에게는 늘 사치여서 동경만 하고 있었는데 대극장 뮤지컬이라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기쁘게 덜컥 가겠노라고 대답을 한 거지. 뮤지컬은 재미있었고 흥미로웠어. [오페라의 유령]이었는데 전용 공연장이어서 무대 세팅도 뮤지컬에 딱 알맞게 되어 있었어. 그 광기 어린 사랑. 뮤지컬이 끝나고 아직도 그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는데 철수 씨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걸 어떤 기운으로 느낄 수 있었어. 나는 몇 년이 지나도록 그때까지도 친구에 가까이 가지도 않고 어떤 사이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말이야. 내가 너무 애정을 주는 것 같은 행동을 했나, 두고두고 후회가 되기는 했는데, 무섭기도 했어.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 특히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20대 초반,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지금도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을 해 주는 게 맞았다는 생각은 해. 그랬다면 어쩌면 진짜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잖아.


수녀님이 장애 아동 복지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망설여진 이유가 그거야.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나고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는 거. 나의 도움을 그 이상의 애정으로 생각하고 가까이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그래도 10년 가까이의 세월이 흘렀고 나도 조금은 성장했을 테니까, 또 아동이니까, 이런저런 마음으로 봉사를 결심하고 간 곳에서 그 사람을 만났던 거야.


너무 오랜만이다. 나의 이런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는 거. 철수 씨는 잘 지내고 있을까. 머리가 너무 아파... ‘그 사람’ 얘기는 다음에 해야겠어.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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