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1)

by 유리알구슬


아이를 낳고 키우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다짐하며

기도해 온 것이 있다.


하나님, 제가 아이의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



나의 학창 시절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폭주기관차였다.


혼자 우리 남매를 키워오신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타고난 불안, 염려증이

내 삶을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입시'라는 목표는

남부럽지 않게 이뤄냈을지 모르나,

그 후 나는

남은 인생을 달릴 힘을 잃어버렸다.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경험치가 저렇다 보니

내 아이에게도

내가 알고 있는 틀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 40년 넘게 살고 보니,

학벌과 행복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으면서도,


왜 아이에게는

내 부모가 나에게 저질렀던

그 과오를 똑같이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어릴 때는 몰랐다.

남들이 하는 '몬테소리'니, '은물'이니 하는

고가의 교구들을 통한 영재학습들에

나는 일부러 철벽을 쳤다.


어릴 때부터 저런 거 할 필요 없어.

아이가 그저 행복하게 웃으면 되지.

공부는 어차피 본인이 해야 하는 거야.

다 나중에 때 되면 본인이 할 거야.

난 우리 아빠처럼 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스스로

딸들에게 좋은 엄마라고

자부해 왔는지도 모른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런 거 하지 않아도

내 딸들은 '잘할 거야'라는

이상한 오만함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진심으로 딸들을 믿어준 것이 아니라,

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 게 아니라,

그저 그런 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진짜 속마음은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얼마 전 치른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다.

솔직히 좀 아쉽다.

실수를 했다는 딸의 말이 더 화가 난다.


본인 딴에는 공부도 나름 한다고 하는데,

결과가 썩 좋지 않아(이건 내 기준이다.)

나름 선배로서

조언(이것도 내 생각이다.)을 해주자,

바로 쏘아댄다.


난 엄마가 아니라고!!!!


엄마의 기준에 나를 갖다 대지 말라는

아이의 가시 돋친 외침이

그날따라 내 마음에 깊이 와 박혔다.

나와는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큰 딸.

그래서 다행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느슨한 것 같아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딸에 대한 '기대감'은

왜인지 모르게 날로 커져만 간다.

누가 그러더라.

첫째 아이가 받아오는 모든 것이

엄마의 '성적표'처럼 느껴진다고.

머리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데,

나와 아이를 분리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그동안 많은 강의와 책을 통해,

선배 엄마들을 통해,

그렇게 들어왔고,

그래서 다짐해 왔건만,

정작 내게 현실로 다가오니

하루하루가 정말 쉽지 않다.

이제 더는 미루면 안 된다는

새빨간 경고등이 들어온다.

내가 저 아이를 위해 해온 그 모든 것들이,

'희생'이라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나의 만족'을 위한 매개체로

아이를 전락시켜선 안된다.

이제는 굳게 마음먹고

저 아이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저 아이는 내 것이 아님을,

나는 잠시 저 아이를

맡아 키우고 있음을

기억하자.

그저 내게 와준 저 아이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사랑하는 일.

그저 저 아이가

자기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내 목소리를 줄이고

저 아이를 기다려주는 일.

그래서 내게서 잘 떠나보내 주는 일.

그렇게 차차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일.

그것이 내가,

저 아이를 진정 사랑하는 일임을 기억하자.

그것이 내가,

저 아이의 걸림돌이 아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