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선배들이
내게 그런다.
지금 저 아이들도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찾고 있는 거라고.
본인들도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해
엄청 힘들어하고 있는 거라고.
사실, 지금 저 아이들도
정상은 아닌 거라고.
그러나 이 과정은
그 시기에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생애 과업이고,
그때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면
인생 어느 순간에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는 것이라고.
마치, 나와 남편처럼.
나와 신랑은
전형적인 K-장남, K-장녀이다.
부모님의 기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박힌 기준을
아주 성실하게 이행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 둘 다
10대 시절, 사춘기 반항이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모범생'타이틀을
이마에 붙이고 살고 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늘 안쓰러웠고,
자식 된 도리로서
최소한의 것들은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마음속에는
늘 깔려있다.
그어진 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지만
선뜻 내 손에 쥔 것을 내던지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흘려보내며
무언의 압박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너희들의 길을 찾아 자유롭게 살라'고 외치지만,
정작 아이들이
우리가 모르는
낯선 방식을 내비칠 때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얼마 전
우리 부부가 나눈 이야기가 있다.
사춘기를 지나는 딸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헤어질 결심을 하는
우리 부부의 다짐이다.
우리의 삶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아이들이 살아갈 시간은 엄연히 다르므로.
사춘기는 아이만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니다.
부모도 함께 커가는 시기임이 분명하다.
특히나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못한
우리 부부에게는
특히 더 잘 보내야 하는 시간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적인 '신뢰'이다.
아이는 믿어주는 만큼 자란다.
사실 나도 우리 부모님이 믿어주셨기에
이만큼 자랄 수 있었다.
이제는 실천하자.
아이는 내가 아니므로,
저 아이의 세상에서
분명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낼 거라고 믿자.
그리고 나는 뒤에서
묵묵히 기도하며 응원하자.
저 아이의 진정한 부모는
내가 아님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