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3)

by 유리알구슬

15년 전,

하나님께서는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부모로 택하시고

아이를 맡겨주셨다.

내 팔뚝 길이보다도 작았던 아이.

행여라도 부서질까 조심스러워하며

제대로 안지도 못했던

그 작은 생명체.

많은 것이 서툰 우리 부부를

더욱 공고히 묶어주었던

작지만 커다란 기쁨이었다.

품 안에서만 꼬물거리던

우리의 미니미는

점차 목을 가누고

버둥대며 뒤집기를 하더니,

온 사방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세상을 탐험하더니

어느 날 그 오종종한 입술을 벌려

나를 '엄마'라 불러주었다.

내게 처음으로

'엄마'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 아이.

나는 그때,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아이'라는 표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주위의 사물에 의지하여

몸을 일으키던 아이는

돌이 지나면서

제힘으로 혼자 걷기 시작했고,

우리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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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저 똥만 잘 싸도

예쁘고 장했던 시절이다.

아기새마냥 입을 벌려

밥만 잘 먹어도

칭찬을 퍼붓던 시절이었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책을 펼쳐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를 보고

'혹시 언어 천재 아닌가'하며 행복해했다.

온갖 장난감과 인형을 거실에 늘어놓고

방안에 있는 책을 다 끄집어내 와도

자기만의 창의적인 놀이터를 만든다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봤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아이의 모든 시간을 영상에 담기 바빴고,

아이의 존재만으로

세상에 다시없을 기쁨을 맛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서,

아이를 향한 칭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미 잘하고 있는 아이를 향해,

나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아이를 등 떠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주변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면서

우리 아이의 부족한 면만 자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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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정보와

불안을 조장하는 말들 속에서

내 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이는 나의 칭찬을 갈망했다.

학원 선생님께 칭찬받았다며,

학교에서 이거 이거 잘했다며,

내 앞에서 자신의 일상을 조잘거렸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내 아이가 더 이상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인가부터

아이의 입가에는

웃음보다 한숨이 늘었고,

내 얼굴에는

미소보다 날 선 눈빛이 자리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온기를 그리워하면서도,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가시 돋친 말이

먼저 나오는 사이가 되어버렸더라.




얼마 전, 딸이 그런다.


엄마, 나는....
친구들 표정만 봐도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알겠어.
어떨 때는 뒤통수만 봐도 알겠더라.
그래서 힘들어.
나는 보이는데, 그걸 아는 척할 수가 없어서....
마냥 그 앞에서 웃고 있을 수가 없어서....


또래보다 조숙한 면이 있는 딸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보다

상대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가 불편해할 것을 미리 알고

본인이 먼저 그것을 감수하려 했고,

상대의 말 어간에 있는 뉘앙스를 알아채고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데 익숙했다.

엄마인 나는,

사실 저 모습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혼자 너무 손해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남만 배려하다가

정작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말을 들었던 그날,

내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저건... 저 아이의 은사구나...
엄마인 나도 갖지 못한,
저 아이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구나...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으니,

엄마인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상처받았을 것이다.


내가 말하기 전,

내 얼굴에 서린 기운만 봐도

아이는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가뜩이나 마음이 다 드러나는

유리알 같은 엄마인데....


누구보다 지지를 해주어야 할 엄마가,

누구보다 칭찬을 해주어야 할 엄마가,

늘 높은 기준을 들이대며

부족한 것만 나열했으니....


그런 생각에 미치자,

한없이 미안해졌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


"아니야~~ 됐어~~~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더 이상해지잖아~~"


아이는 이미

내가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엄마가 미안해할 만한 말은 안 하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더라.


아이는 이미,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해야만 하는 것들을

꾸역꾸역 해내는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이는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엄마인 나도

나의 길을 가야겠다.

아이와 나는

엄연히 다른 인격체임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자.

내게 기대어

나의 시선과 목소리로

세상을 보던 아이는,

이제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 갈림길에서

아이를 잘 배웅하자.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서,

언제나 아이가 돌아와도

평안히 쉴 수 있는

그런 넓고 안정된 품을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