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1화. 처음으로 '우리'라는 말을 쓰던 날
일 년이 지났다.
지현이와 만난 지 일 년. 스무 살 때는 일 년이 짧았는데, 서른이 넘어서 보내는 일 년은 의미가 달랐다.
매일이 쌓여서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이번 연휴에 뭐 할까?"
지현이가 물었다. 우리.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따라 했다.
"우리 여행 갈까?"
우리.
그 단어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혼자가 익숙했던 사람에게 '우리'라는 말은 신기한 마법이었다.
나만 있던 문장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 그게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바다를 보러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해운대에 앉아 파도를 보며, 지현이는 커피를 마시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저기, 민우 씨."
"응?"
"우리 잘 맞는 것 같지 않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빨랐다.
"응. 잘 맞아."
"어떤 점에서요?"
생각해 봤다.
"조용해도 괜찮은 것? 말 안 해도 불편하지 않은 것. 그리고..."
"그리고?"
"같이 있으면 혼자 있을 때보다 편한 것."
지현이가 웃었다.
"저도요."
바람이 분다. 귓가에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그 순간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KTX 안에서 지현이가 잠들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됐다. 이 사람이 나를 믿고 있다는 것에.
창밖을 보니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데 마음은 느렸다.
그래, 급할 것 없다.
이 속도로 천천히 가고 싶으니까
서른둘의 가을이었다.
주변에서 물어보기 시작한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결혼은 언제 해?"
누군가를 조급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부담스럽지 않았다.
지현이와는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다.
"우리 언젠가 결혼하겠죠?"
"그러게요. 언젠가는."
"급할 건 없지만.."
"그래도 생각은 있어요?"
"그럼요."
그렇게 조금씩, 미래를 그렸다. 구체적인 날짜는 정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같았다. 그게 중요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현이네 집에 초대받았다.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는데, 떨렸다.
정장을 입고, 선물을 준비하고, 몇 번이나 거울을 봤다.
"긴장했어요?"
지현이가 웃었다.
"티 나요?"
"많이요."
"어쩌지."
"그냥 편하게 있으면 돼요. 우리 부모님 좋으셔."
식사는 생각보다 편안했다. 지현이 아버지는 과묵했지만 따뜻했고, 어머니는 말이 많았지만 다정했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지현이 잘 부탁드려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제가 잘 배우겠습니다."
진심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현이가 손을 잡았다.
"수고했어요. 긴장 많이 했죠?"
"많이 했어."
"우리 아빠가 민우 씨 괜찮다고 하셨어요."
"진짜?"
"응. 착해 보인대요."
"내가 착한가?."
"아마도?"
웃으면서 걸었다. 손이 따뜻했다.
'우리'라는 단어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었다.
나와 지현이에서, 지현이네 가족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더 커질 것이다.
그 생각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됐다.
서른둘은 '우리'를 배우는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