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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Feb 13. 2021

10_‘자기만의 방’, 나의 파란 서재

 

서재는 우리집에서 폴리싱타일이 깔리지 않은 유일한 방이다. 여기에는 견적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폴리싱 타일의 양을 맞추지 못한 마음아픈 사정이 있지만 그부분은 넘어가기로 하겠다. 

이왕 이렇게 된거, 완전히 다른 컨셉으로 가겠어!

나는 폴리싱타일과 정반대인, 매트하고 폭신한 질감의 카펫타일로 서재를 꾸미기로 했다. 데코타일도 있고, 장판도 있는데 카펫타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예전에 호캉스를 갔을 때 호텔 바닥이 카펫으로 되어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바닥이 폭신하니 아늑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일상 속에 잘 쓰이는 바닥재가 아니라 그런가? 호텔 특유의, 특별한 곳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더욱 고조시키는 바닥이었다. 그래서 기왕 폴리싱을 못하게 된 것, 카펫 타일을 해볼까 싶었고, 카펫타일 색상 중에선 파란색이 제일 예뻐보여서 주문했다. 

막상 깔아보니 쨍한 파랑이라기 보다는 톤 다운된 코발트 블루에 가까웠다. 바닥에 카펫을 다 깔고도 약간의 타일이 남았다. 남은 타일은 집안 곳곳 이중창 사이에 있는 창턱에 덧대니 원래 덧대어져 있던 칙칙한 비닐 장판이 예쁘게 가려졌다. 

파란색 카펫 바닥에 흰 벽 조합이 내 예상보다 훨씬 잘 어울려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컬러풀한 바닥은 처음이었다. 자취를 시작한 후, 항상 좁은 집에 살았기에 넓어보이는 흰색 계열 바닥만 선호했었기 때문이다. 하얗기만 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건 사실 취향이라기 보다는, 좁은 집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는 발악에 가깝다. 칙칙한 벽지를 하얗게 칠했을 때 공간이 훨씬 밝아보이던 기억, 칙칙한 장판을 밝은 장판으로 교체했더니 방이 훨씬 넓어 보이던 기억, 자취 인테리어를 하면서 쌓였던 기억들이 나를 ‘흰색 성애자’로 만들었을 뿐, 처음부터 하얀 인테리어를 추구했던건 아니다.      

상세페이지에 있던 이미지. 실제 색상은 이보다 훨씬 어두웠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책장도 서재의 컨셉에 맞게 파란색으로 주문했다. 사실은 책장 대신 벽선반을 여러겹 설치해 책을 꽂는 인테리어를 동경했었다. 뒤가 막혀있는 책꽂이가 어쩐지 답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성능이 좋은 전동 드라이버를 장만해야 했고, 비뚤어지지 않게 여러개의 선반을,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설치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돈도 문제였다. 책장을 산다면 10만원 안팎에 해결될 일이지만 선반으로 하면 최소 30만원은 들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선반인 양 뒤가 뚫려있는 책장을 골라 구입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개방감이 있어서 무척 만족스럽다. 가로 1200짜리 이 책장은 5만원대의 저렴한 가구다. 서랍처럼 여닫으며 손이 타는 가구가 아니기 때문에 시트지가 들뜰 정도의 싸구려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막상 받아보니 퀄리티는 기대 이상이었다. 시트지가 들뜨기는커녕 마치 도장을 한 것처럼 깔끔하다. 고르고 고른 가성비템이 성공적이면 비싼 물건이 돈값을 하는 것과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다. 볼 때마다 1원이라도 더 싸고 질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분투한 나자신의 노력이 떠올라 스스로가 기특하다.      

책장을 받고선 신이 나서 책을 꽂았다. 이사오기 전 중고로 팔고 나눠주기도 하며 갖고있던 책의 80% 이상을 처분한 덕에 책꽂이가 텅텅 비어 이것저것 장식도 할 수 있었다. 예쁜 독립책방같은 분위기를 꿈꾸며 책을 세워보기도 하고, 색깔별로 꽂아보기도 했는데 결국엔 그냥 분야와 주제를 나누어 꽂았다. 집에 관련된 책(분야 불문)/ 인문, 예술 관련/ 소설 이런 식으로 나누고 표지가 예쁜 책은 맨 윗칸에 세워서 진열했다. 

  

순전히 책장만을 위한 액자도 만들었다. 프레임이 깨져서 버리려고 했던 액자가 있었는데 프레임을 떼버리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잡지 화보를 넣어 새로운 액자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액자를 잘 보이게 진열하고 앞에는 디퓨저를 두니 세상 부러울게 없었다. 갖고 있던 것들을 활용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책장은, 내 기준에는 독립서점 못지 않았다.    


원목책상은 반지하 시절에 구입했던 제품이다. 그땐 예쁘게 해놓고 살고 싶단 맘은 있어도 쾌적한 환경에 제대로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모양만 예쁜 합판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꼴을 갖춘 원목 가구를 산 건 이 책상이 처음이었다. 원래는 좁은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쓰고자 가로세로 600의 접이식 테이블을 책상으로 썼었다.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취미로 노트북에 이런저런 글을 끼적이는 거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었기에 참고 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책을 보고 갑자기 괜찮은 책상이 갖고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 책에 내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까지 동경하던 소설가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소개됐는데, 그녀의 약간은 고집스런 말이 내 심장에 쿵, 내려앉았다.

이 언니 지금 봐도 멋있다. 크으
나는 내 책상에 앉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이 문장이 쓰인 옆 페이지에는 어둡고 퇴폐적이며 약간은 중성적인, 내가 동경했던 스타일 그대로를 다 반영한 앨프리데 옐리네크의 사진이 박혀있었다. 심장 폭격이 따로 없었다. 젊음과 어림의 경계선에 있던 한 시절에 그녀에게 푹 빠졌던 이유는 우선은 그녀의 소설 때문이었다. 강박적으로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그녀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에는 그 시절의 내가 이 세계를 감각할 때 마주치는 어떤 불편한 지점을 담고 있었다. ‘불편’이라는 단순한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이질적인 고통 같은 것. 

사춘기 갬성을 저격하는 저 다크함과 시크한 외모를 보라!

다크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소설에 앨프리데 옐리네크 특유의 외적인 스타일이 더해지니 어린 마음에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린 시절 진심으로 좋아하던 스타일이 평생의 취향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언컨대, 평생의 ‘설렘’은 결정한다. 특히 성인과 청소년 사이의 시기에 좋아했던 것들은 지금은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파블로프의 종처럼 나에게 설렘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지금은 그 무엇을 좋아하게 되어도 그 때만큼의 열정과 설렘은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시절 좋아했던 것들을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면 잠시나마 그 때로 돌아간 것 마냥 침을 흘리며 꼬리를 흔들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내 책상’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나?

앨프리데 옐리네크의 인쇄된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생각해보았다. 접었다 펼쳤다 하며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노트북도 하는 그 테이블을 과연 ‘내 책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 절대 아니었다. 그 때 나에게는 ‘내 책상’이 없었다. ‘나는 내 책상에 앉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멋있는 말에 들어있는 ‘내 책상’이 내게는 없었던 거다. 내게는 ‘나만 없어 고양이’도 두 마리나 있는데 말이다! 

이건 사야 해!

호기롭게 마음먹고 열심히 엄지손가락을 놀렸다. 그리고 무작위로 펼쳐지는 온갖 책상의 향연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시크한 블랙 철제 책상, 미니멀한 화이트 철제 책상, 원목 책상, 서랍이 밑에 달린 것, 서랍이 위에 있는 것, 양옆이 막혀 있는 독서실 책상, 초록 책상, 핑크 책상, 하이그로시 책상... 온갖 디자인 속에서 잠깐 길을 잃었다. 이 수많은 책상 속에 ‘내 책상’이라고 부를만한 책상은 대체 어떤 책상이란 말인가?


나는 잠깐 눈을 감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필기구, 노트는 물론이고 잡지에서 찢어낸 페이지나 영화 포스터등 영감을 주는 종이들을 여기저기 늘어놓아도 숨통이 트일만큼 넓었으면 좋겠다. 노트북 충전선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어떤 물건이든 곱게는 못쓰는 편이니, 기스가 나고 손때가 타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자연스러운 원목 소재였으면 좋겠다. 둔탁한 서랍들이 많아봤자 보관할 물건들만 늘어나니, 최소의 수납공간을 지닌 미니멀한 디자인이었으면, 너무 무겁고 중후한 느낌은 싫다. 

일단 책상을 놓을 만한 침대 옆 벽의 길이를 재보니 1500까지는 넉넉하게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검색 키워드를 ‘원목 1500 책상’으로 고친 후 다시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운명같은 ‘내 책상’을 발견했다. 

밑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다리 덕에 넓은데도 중후한 느낌은 들지 않는 밝은 원목 책상이었다.

노트북 충전선이 꽂힌 멀티탭을 숨길수 있는 공간도 책상 뒤에 있었다.

게다가 노트나 엽서, 필기구를 보관할 수 있지만 공간 차지는 거의 하지 않는 슬림한 서랍까지. 이건 운명이었다. 가격은 15만 9천원으로 내 기준에는 무척 비싼 편이었지만 전체 원목인 점을 감안하면 아주 싼 가격이었다. 받아보니 더욱 만족스러웠다. 투명도장이 되어 있어 윤이 나고 마감이 매끄러웠으며 서랍도 잘 닫히고 튼튼하게 잘 서있었다. 

원룸 반지하 시절의 내 책상. 사진 속 하얀색 사무용 의자가 참 예뻤는데 고양이가 너무 심하게 물어뜯어서 버렸다.
이제부터 이게 내 책상이다.

내 책상. 가장 오랜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책상은 결코 받을 수 없는 특별 지위를 나는 이 책상에 부여했다. 사무실 책상은 언제든 회사의 필요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자리’일뿐 ‘내 책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책상’은 내 공간에 있는 이 책상 하나 뿐이다. 나도 이제 ‘내 책상에 앉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아니어도,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어도, 자기 자신을 위한 일기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은 ‘글 쓰는 사람’이니까      

수년을 함께 했던 ‘내 책상’까지 놓고 나니 이제 완전히 내 서재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성된 파란 서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방에서 펼쳐질 나의 일상이 상상됐다.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일기도 쓰고, 그리고 낡은 빌라를 고쳐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봐야지. 채광이 좋은 이 파란 방에서, 읽고 쓰는 일로 삶을 채워나가고 싶었다. 평일 낮시간은 회사에 삶을 바치더라도, 출근 전후의 틈새 시간과 주말은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로 채워보고 싶었다.


침실 편에서 나는 침실은 놀이공간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내게는 서재 역시 놀이 공간이다. 침실에서 하는 ‘놀이’들이 휴식과 오락에 가깝다면 서재에서 하는 ‘놀이’는 침실에서 흡수한 환상들을 정리하고 다듬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는 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기를 쓰거나 차분하게 집중해서 음미해야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담긴 책들을 읽고, 필사를 하기도 한다. 서재에는 물론 재미있는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도 있지만 주로 미문이 가득한 책들이 꽂혀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필사에 푹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보니 허세 가득한 취미의 끝판왕이다. 손끝이 오그라든다.

나는 미문을 좋아한다. 진정성이고 주제의식이고 다 필요없고 나는 미문이 좋다. 담백하고 담담한 문장보다는 독한 향수를 뿌린 문장이 좋다. 읽는 순간 그 문장이 머금고 있는 향에 흠뻑 젖어 숨이 막히고 마는 그런 문장을 좋아한다. 나는 소설을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무언가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고차원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오락의 도구로 여긴다. 사실상 내게 소설을 소비한다는 것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한때는 나도 ‘옳음’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듯 거대한 의미로부터,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 하루하루 숨쉬며 사는데 기쁨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에 완벽히 적응해 아파트를 사고 주식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낡은 빌라에서 소박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내가 짠할 수도 있다. 세상이 옳은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의욕 없고 생각없는 ‘슬픈’ 젊은이로 보일지 모른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사춘기시절의 자의식 과잉을 아직 다 덜어내지 못한 탓이다. 다들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니 나도, 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알아서 살면 그만이다. 

복잡한 어휘와 난해한 개념들로 자신을 무장한 채 혁명을 팔아 쿨함을 사려 하는 사람들도, 아득바득 자본을 모으고 굴려 세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다 나름대로 멋있다고 생각한다. 확고한 신념과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다만 내가 그 길을 안갈 뿐. 

나와 다른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 요즘은 애를 쓰고 있다. 애초에 나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비건으로 사는 동시에 명품을 좋아하는 게 가능한, 그 유명한 mz(밀레니얼+z세대)세대가 아닌가? (z세대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늙었다.)


데모현장에서 출석체크를 하는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대학생활을 한 탓에 나는 나자신이 지나치게 이기적이어서 죄책감이라도 가져야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80년대의 향기가 듬뿍 배어든 대학시절의 환경은, 막연히 뉴욕 힙스터 문화와 도시를 동경하던 촌구석 출신 학생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었다. 

세상에 이런 도덕적인 세계가 있었고 나는 완전히 글러먹은 인간이구나!

그 때는 순진해서, 젊었을 때 공장에 잠입해 몸싸움을 벌이던 386세대가 아파트를 사고 자식을 명문 대학에 보내고자 그만큼 치열하게 분투했다는 것을 몰랐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의 이꼴 저꼴을 구경하며 20대를 마무리한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났으며 죽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 나름대로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어쩌면 그래서 집을 산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자유가 ‘내 집’이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지나치게 사적인 횡설수설이 되어버렸다. 다시 서재로 넘어가서, 그렇다. 나는 서재에서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한다.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묻고, 그것들이 아직도 내 삶에 유효한 것인지를 물어본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은 아마 바뀔 것이다. 그것이 내일이 될지 10년 후가 될지는 결코 모르지만 이 서재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들의 답은 언젠가는 바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지금의 내게는 있다는 점이다. 이 자기만의 방, 나의 파란 서재를 나는 마음 깊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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