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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ul 14. 2021

#산스타그램은 아닙니다만: 서른의 등산중독 이야기-1

저질체력 집순이는 어쩌다 등산에 미쳐버렸나

불과 한달하고 2주 전까지, 나는 등산이라는 단어만 봐도 도망가고 싶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피맛 나는’ 추억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아웃도어에 미쳐있는 담임 선생님 덕분에 ‘해양 소년단’ 활동을 했었다. 해양소년단이란,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같이 전국에 지부가 있는 교육단체의 ‘바다 버전’이었다. 사전에 따르면 해상 기술을 가르치고 ‘해양 국민’을 육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 교육 단체란다. 이름과 취지만 보면 네모선장과 바닷속 탐험이라도 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내 담임선생님이 주도하는 해양소년단 활동에서는 바다는 코빼기도 볼일이 없었다. 주말마다 이 산 저 산 아이들을 불러내 주구장창 산만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활동은 ‘해양 소년단’이 아닌 ‘등산 소년단’이었다.

체육 실기에서 단 한 번도 꼴찌가 아니어본 적이 없던 나에게 해양을 빙자한 등산소년단 활동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구의 체육교사인 담임과 에너지가 넘치는 다른 아이들을 따라 산을 탈 때면 매번 목구멍에서 피맛이 났다. 정말 죽을 것 같아 혼자라도 쉬어가고 싶었지만 저질체력만큼이나 타고난 길치라 조난이 두려워 죽기살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목구멍의 피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목구멍 피맛, 그걸 경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저질 체력일 거다. 하드코어한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오래달리기 같은 심폐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을 내 체력 이상으로 했을 때 나는 맛인데,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같은 통증과 정수리가 조여드는 느낌과 함께 목구멍에서 쇠맛이 난다. 실제로 피 섞인 가래침을 뱉어낼 때도 있다. 정말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고통이다. 그 덕에 등산이란 내게 고통의 다른 말이었다. 아프고 힘들고 무서웠던 기억밖에 없어서 내가 스스로 산에 오르게 될 거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내게 산이란 정말 딱 이런 느낌 이었다.

산은 멀리서 볼 때나 멋지지 직접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 SF영화속 우주공간 같은 거였다. 등산을 취미삼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종족 같지가 않아 대단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주로 아저씨 아줌마들이 즐기는 취미라는 편견도 있었다. 떠오르는 이미지도 썩 아름답지는 않았다. 등산이라고 하면, 보기만 해도 눈이 아픈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은행 터는 범죄자마냥 콧등에서 목까지 치렁치렁 늘어지는 마스크를 쓴 아저씨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편견어린 상상 속의 그 등산 아저씨에게 참 미안하다. 방금 내가 받은 문자 때문이다.

‘쿠X 로켓배송 1건 발송 완료’

그렇다. 바로 그 ‘은행 범죄자’스러운 등산마스크가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이다. 어디 등산 마스크 뿐이겠는가. 등산화에 등산양말 등산용 장갑까지 사고 말았다. 

한 술 더 뜨자면, 업계에 '동학정신을 함께 느끼자'는 이유로 평일이고 주말이고 직원들을 억지로 등산에 데려간다는 회사가 있다. (참고로 내가 속한 업계는 스포츠, 운동 그런 거랑은 굉장히 거리가 멀고 업계별로 종사자들의 운동신경을 측청하면 당당히 꼴찌를 기록할 만한 업계다.) 그 소문 때문에 악명이 자자한 회사라 내가 속한 직군을 중요시하고 대접해주는 회사인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이직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만약 그 회사에서 불러준다면 함께 그 '동학정신'인지 뭔지를 느껴볼 용의가 있다. 

지금 내 여름 휴가지는 지리산이 되었고, 한동안 존재한 적 없던 인생의 목표는 '불수사도북'이 되었다. 불수사도북이란 다섯개의 서울 산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한번에 종주하는 것으로 코스에 따라 다르지만 약 3-40km 정도 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분명히 말하자면 맘먹고 등산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뒷산 조차 오를 생각이 없었다.(우리동네 뒷산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인 북한산이다.) 그냥 걷는 건 좋아하니까, 집 근처에 ‘둘레길’의 한 코스가 있다기에 산책 겸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둘레길의 앞에는 ‘북한산’이라는어엿한 산의 명칭이 붙어있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둘레길에는 닿지 못했다. 원체 길치라 네이버 지도를 잘 살피며 갔음에도 다른 길로 빠졌기 때문이다. 둘레길 대신 내가 발견한 곳은 ‘북한산 자락길’이라는 천국같은 길이었다.

북한산 자락길은 노약자와 일반인이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북한산에서 가장 난이도가 낮은 산책로다. 나무 데크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로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북한산 생태공원과도 이어져 있다. 그 길까지 올라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빽빽한 나무사이에 숨어있는 나무계단을 더운날의 개처럼 헥헥대며 끝없이 올라야 했다. 

숨이 턱까지 들이차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만 싶을 때, 마침내 발견한 이 길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침엽수의 깊고 어두운 초록과 초여름 활엽수의 맑고 환한 초록이 그야말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양옆을 막아선 키 큰 나무들 사이로는 바위로 된 속살을 곳곳에 드러낸 북한산의 능선들이 보였다. 그 앞에는 내가 사는 도시가 장난감처럼 작아져 있었다. 어떤 향수보다 상쾌하고 청명한 향이 들숨을 타고 들어와 혈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래서 피톤치드, 피톤치드 하는구나 싶었다. 그저 숨만 쉬는 것 뿐인데 더없이 건강하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 길까지 힘겹게 계단을 올라왔기에 심장을 중심으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진동했다. 카페인을 과다섭취했을 때처럼 기분이 붕 떠올랐다. 

그 길에는 오로지 산과 나만 있었다.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다.

‘지금 여기를 걸으려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눈가가 젖어들었다. 

이제 내 삶의 이유에는 거창한 게 없었다. 그냥 산 길을 걸으려고 지금까지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 거다.
어떤 화려한 영화 속 장면보다 더 사람을 홀리는 녹색의 환상 속에서 터질 듯 뛰는 심장을 느끼려고 살아있는 거였다.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잠들기 전까지 계속 북한산 자락길의 신선한 초록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또 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래서 산에 가는구나.

안되겠다. 갈 수 있을 때마다 자주 가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아침이라도 가야겠어.

그렇게 나는 반년 전 어느 날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처럼, 무모하고 충동적인 결심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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