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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Aug 08. 2021

#산스타그램은 아닙니다만: 서른의 등산중독 이야기-4

오픈채팅방? 그게 뭔가요?

츄르야, 같이 산 다닐 사람이 필요하면 이런 곳을 이용해 보는 것도 방법인것 같아.

내 인생의 귀인 중 하나인 C언니가 보내준 링크 덕분에 나는 '오픈채팅'이라는 것에 처음 입문했다. 동호회라면 네이버와 다음 카페밖에 몰랐던 내게 익명의 사람들과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오픈채팅'은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가출 청소년들이 불법적인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거 아닌가?

등산이라면 떳떳하고 건전한 취미 랭킹에서 1위할 것 같은 취미인데 꼭 익명으로 해야 하나?

이상한 사람 있으면 어떻게 하지?

90년대생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시대착오적인 걱정을 한아름 안고 채팅방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방장봇이라는 것이 나타나 이런 저런 지시를 했다.

닉네임 앞에 날짜를 붙여 주세요. 날짜는 첫 참 뒤에 떼십니다. 최근에 가본 산과 가고 싶은 산을 알려주며 인사를 해주세요. 닉네임 뒤에 성별과 지역을 넣어주세요. 등등...

들어가자마자 우르르 쏟아지는 요청사항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한 편 안심이 됐다. 그래도 뭔가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체계가 있는 곳이구나 싶었다. 

"안녕하세요. 북한산이 보이는 곳에 사는 김츄르입니다!"

그렇게 힘찬 인삿말과 함께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 속에 뛰어들어갔다.


오픈 채팅방에 들어간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는 첫 등산에 참여했다. 장소는 수락산, 왕복 6km 정도 되는 기차바위 우회 코스였다. 수락산 역에 어정쩡하게 서서 한 번도 본적 없는 일행들을 기다리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미쳤지. 매우 좁고 깊은 대인관계를 영위하는데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낯선 사람들과 등산이라니.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발을 동동구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필이면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하는 바람에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알아본 건지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는 내 또래 남성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도망쳤을 수도 있다.

"여기 등산객 분들이 다 나이대가 있어서 바로 알아봤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그랬다. 그분과 나 빼고는 알록달록 등산복에 스틱을 챙겨든 중년에서 노년 사이의 등산객들밖에 없었다. 다행히 처음 마주친 그 분이 매우 외향적인 분이라 어색함과 막연한 두려움은 금방 자취를 감췄다. 곧이어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다른 남자분이 도착하고, 내가 은근 기다리고 있었던 '방장님'이 도착했다. 방장님은 여자분으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상냥하고, 이해력과 표용력이 좋아서 이 오픈채팅방을 '흥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오, 등산을 열심히 하면 나도 저렇게 날씬해질 수 있을까?'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보며 잠깐 속물적인 생각을 했지만, 속세를 벗어나 산에 발을 들인 순간 머릿속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모두 지워졌다.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정비된 등산로와는 거리가 먼 애매한 크기의 돌밭을 오르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일행 중 내 또래의 쾌활한 남자분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 근육질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속도가 빨랐다. 맞춰준다고 맞춰주는데도 내 속도가 느려 너무 미안했다. 나 때문에 중간 중간 수시로 쉬었는데 그때마다 '덕분에 쉴 수 있어 나는 너무 좋다'고 말해주는 방장님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다. 우리 방은 '초보 등산'이 컨셉인 곳인데 생각할수록 방장님의 이런 태도(혹은 전략)은 정말 훌륭하다. 

이제 막 입문한 등산 초보를 자타공인 '등산 덕후'로 진화시키는데 다른 스킬은 하나도 필요없다.

느리다고 구박하거나 눈치주지 않고 함께 쉬어주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다.

등산 경험 있는 사람은 많은데 왜 그 사람들 취미가 다 등산이 아닌지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등산 경험이 한 번쯤은 있다. 국토의 70%가 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뭐 하나에 빠지면 미쳐버리는 국민성 때문에 전국 산악회 아저씨들이 동네 뒷산까지 샅샅이 다니며 빨간 리본을 메어 등산로를 표시해 두었다. 굳이 그런 뒷산을 찾아가지 않아도 지역마다 정비가 잘 된 산이 하나씩은 있다. 내 피같은 세금의 상당부분을 등산로 정비에 쓴건가 싶을 정도로 지척에 등산로가 닦여있는 산이 널려있는 것이다. 추측컨대 아무래도 등산이 '아저씨' 취미여서가 아닐까 싶다. 아저씨란 사실 돈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이니 말이다. 어쨌든 다른 나라에 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전국민의 70% 정도는 등산을 취미삼아 할 법한 조건을 가진 국가다. 그 어떤 도심에서도 한 시간내에 등산로가 정비된 근사한 산에 갈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좋은 조건에도 모든 한국인이 등산을 즐기지 않는건 '스파르타식 등산'의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어린 시절의 해양소년단 등산처럼, 피를 토하며 따라가는 페이스 느린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등산문화 때문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국민성 때문인지 남자들이 모두 군대에 갔다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특히 나이대가 좀 있는 남자분이 리딩하는) 등산을 할 때 '이 정도로 그렇게 힘들면 어떡하냐.' '엄살이다.' '하다보면 는다'는 식의 태도를 마주할 때가 좀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선생님이 나와 페이스가 느린 다른 친구를 버리고 빠른 아이들과 먼저 가버려서 길을 잃고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한 적도 있다. (당연한 거지만 지나가던 다른 등산객들이 구해줬다.)

앞서가는 빠른 친구들은 신의 축복을 받은 우월한 존재같이 느껴졌다. 반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을 안고도 그들의 발끝조차 쫓아가지 못하는 나는 저주받은 열등한 존재 같았다. 앞서가는 이들은 나를 기다리며 잠깐 멈추었다가도, 내가 힘겹게 그 자리까지 도착하면 숨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다시 쫓아가지 못할 빠른 걸음으로 출발해버렸다. 멈춰 기다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했겠지만 힘겹게 쫓아가는 사람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잠깐의 휴식조차 빠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거구나. 난 느려서, 이렇게 갈비뼈가 아픈데도 잠깐도 쉴 수가 없는거구나. 이건 모두 내 탓이야.

페이스가 느린 사람들은 몸도 힘들지만 그만큼 마음도 힘들다. 그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느린 이를 배려한다면 전국민을 등산객으로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수락산 정상이 한치 앞으로 다가왔다. 기차바위를 거쳐가지 않는 우회로이긴 했지만 난간을 잡고 바위를 타는 코스가 있었다. 난간을 잡으니 다리에만 몰리던 힘이 팔로 분산되어 훨씬 편했다. 몸이 한결 편해지면서 시야가 아득해졌다. 가파른 바위에 오로지 내 팔과 다리 힘으로 매달려 움직이는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건 뭐랄까, '내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된 기분'이었다. 내 팔과 다리로 오롯이 지탱하는 내 무게, 영화관의 입체적인 사운드처럼 압도적으로 전신을 울리는 심장소리. 그 순간만큼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는 온전한 나 자신이었다. 실제로 그 순간, 내 목줄을 쥐고 있는건 내 팔과 다리의 근육이었으니까. 

그렇게 수락산에서 나는 '난간이나 밧줄을 잡고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에 처음으로 재미를 느꼈다. 


수락산 정상에는 아이스 박스를 두고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파는 아저씨가 계셨다. 북한산과 마니산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라 신선했다. 정상석에 어정쩡하게 서서 산을 오르는 동안 부쩍 친밀해진 일행들과 사진을 찍었다. 하산길에는 소나기가 내렸는데 다행히 모자를 쓰고 있어 시야가 확보됐다. 비를 피하지않고 그대로 맞으며 걷는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하산했다. 처음보는 사람들과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나같이 내향적인 사람도 이런게 가능하다니. 오픈채팅방에서의 첫 등산 덕에 내 인생의 새 장이 열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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