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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Nov 28. 2021

외로워 보이고는 싶지 않아

실제로 그렇다 해도.

어제는 하루종일 삶에 대한 의욕이 충만해서 행복했다. 동기부여가 되는 자기계발서도 읽고 집이 반짝반짝 해질 때까지 청소도 하고, 실천 가능한 최소의 양만 목표하기는 했지만 하고자 했던 공부도 다 해냈다. 

평온한 마음에서 오는 행복은 오늘 오후까지도 이어졌다. 새벽 일찍 일어나 공부도 하고 요리도 해 먹는 훌륭한 일정을 소화했다. 이 정도로 만족하고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나 보면서 조용히 에너지를 충전했어야 한다. 아니면 대화를 나눌 사람을 좀 만나거나 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서 외출을 한다는, 평소의 나라면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요즘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을 했다. 건강할 때는 혼자 외출하는게 자유롭고 좋을 때도 있는데,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때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동행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끔찍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그랬다. 


서점에 들렀다 목적없이 거리를 걸으며 로드숍의 옷과 액세서리들을 구경했다. 그 때까지는 기분이 최고였다. 그런 다음 회전초밥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 때부터 기분이 급격히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회전초밥집의 모두가, 직원들을 포함해 그야말로 나를 제외한 모두가 큰 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좋아하는 연어며 소고기 초밥을 집어먹는데 밥알이 뱃속에서 일어서 위벽을 쿡쿡 찔러대는 것 같았다. 나는 허겁지겁 배만 채우고 가게를 나와 카페로 향했다. 

급강하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고칼로리 음료를 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처럼 혼자 온 옆자리의 남자가 계속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문이 열리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우연히 내 테이블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했을 뿐 아무 생각이 없었고 성별조차 몰랐다. 그런데 자꾸 시선이 느껴져서 아는 사람인가 하고 쳐다보니 낯선 남자였다. 그러고보니 나는 오늘 몸에 달라붙는 파인 옷을 입고 있었고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짜증이 확 치솟았다.

내가, 그렇게, 외로워 보이나.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길거리에서 상품을 고르듯 사람에게 말을 거는 행위가 순수한 호의로 느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헌팅을 당한다는 건 결코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내가 헌팅을 가장 많이 당하던 시절은 내 외모가 가장 이 사회의 기준에 맞았던 시절이 아니라, 내가 가장 불행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 때의 나는 불안과 외로움의 냄새를 아주 먹음직스럽게 폴폴 풍기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시기의 무수한 헌팅남들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나 역시 길거리에서 상품을 구경할 때 가장 예쁘거나 좋아보이는 것에 손을 뻗지 않는다. 가격표를 먼저 보고, 괜찮을 경우 내가 살 수 있을법한 만만한 물건들에 마음이 가서 손을 뻗게 된다.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사지도 못할 물건은 결코 만져보지 않는다. 야생의 수컷과는 거리가 먼 현대 사회의 남자들이 헌팅을 할 때도, 가게 주인의 눈치를 보며 물건을 구경하는 나와 다르지 않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아직 사춘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외롭고 어린 20대 초반 친구들은 유혹에 취약해 보이기 때문에 아주 매혹적이다. 달콤한 말 몇 마디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니까. 그런데 그 시절이면 이해할텐데, 사춘기의 그늘 따윈 떨쳐낸 지 오래된 내 나이 서른에 이게 무슨 불쾌한 시선이란 말인가.

아닐 수도 있다. 

백번 정도 속으로 되뇌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사실 아닐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여자로 산 게 하루 이틀인가, 이 장소에서 더 미적거렸다간 백 프로 저 사람이 말을 걸어오리라는 어떤 감 같은 게 있었다. 나는 남은 음료를 그야말로 흡입하듯 먹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 남자도 후다닥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전화를 받는 척 하며 도망치듯 아주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러고 집에 들어오니 기분이 최악이었다. 회전 초밥도 음료도 너무 빨리 먹은 바람에 속이 더부룩했고, 혈당이 확 치솟았다 급격히 하강한 탓에 기분이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이게 다 내가 외모 관리를 안하는 탓이다. 
깡마른 몸에 비싼 옷이나 가방으로 무장하고, 세련된 화장을 하고 있었다면
감히 말을 걸 생각조차 안하고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할 텐데.
꾸미고 돌아다니고 싶을 땐 남자라도 하나 끼고 돌아다녀야
이런 불쾌한 일을 안 겪는 건가.

생산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그냥 더럽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생각들이 자꾸만 몰려왔다. 그래도 끔찍했던 기분을 글로 풀어써 보니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사실 오늘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낼 기회를 내가 거절했어서, 혼자 있었던 건 오롯이 내 선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파생된 이 감정 역시 오롯이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 한 바닥 적고 나니 이제 나는 평화롭다. 평화를 되찾아서 눈물이 날 만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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