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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May 13. 2022

내가 좋아하는 눈을 가진 사람

세상 다 산 척 하는 만 29세 으른이의 라떼 연애사 한 사발 

나이 서른 넘어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는 2년 넘게 (여자)아이들의 민니를 주구장창 좋아해왔다. 가수 좋아하는데 별 이유야 있을까. 나는 그녀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무척 좋아하고, 또 그녀의 눈빛을 사랑한다. 


사실 민니의 눈이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의 눈과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눈에는 나를 사로잡는 그 어떤, 미묘한 매력이 분명이 있다. 쌍꺼풀의 유무와 관계없이 (민니는 쌍꺼풀이 있긴하지만,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은 없는 경우가 많긴 하다.) 약간 길고 짙으며 묘하게 사연있어 보이는 눈, 또렷하지만 화려하게 빛난다기보단 촉촉히 젖어있는 눈, 맑지만 어딘가 슬퍼보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눈. 웃을 때는 작아지면서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눈. 똑같은 눈이라도 이런 눈은 중안부가 살짝 길고 갸름한 얼굴과 어우러졌을 때 가장 유혹적인 느낌을 준다. 

민니도 그렇지만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검은 편이다. 한국인은 나처럼 살짝 붉은 기가 도는 흑발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색을 떠올리기 힘든 완전한 흑발을 가진 경우가 많다.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아도 꼭 그린 것처럼 눈매가 짙은데, 그건 곧게 뻗은 긴 속눈썹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화장을 연하게 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진정한 매력을 발산한다. 


과거의 연인들 중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딱 한 명 뿐이었다. 그 당시 둘다 학생이었고 동갑이었으니 그냥 애라고 지칭하겠다. 나는 그 애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 애도 무슨 행운의 일치인지 내게 첫 눈에 반했었다. 나는 지난 사람들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잊어버리는 편인데도 그 애에 대한 몇 가지 디테일은 이상하게도 생생히 기억난다. 차가운 보석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s로 시작하는 모 대학 기계공학과에 재학중이었다는 것과 군인 집안에서 자라났다는 것, 취미로 기타를 쳤다는 것, 전 여자친구가 연상의 방송작가였다는 것, 그 당시 그 애가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까지. 


연애를 시작하게 된 두번째 만남에 나는 그 애를 티벳 어린이들을 돕는 행사에 데려갔었다. 사직동 어느 카페에서 주최하는, 수익의 일부를 티벳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기부하는 바자회였다. 나는 거기에 쓰지 않은 향수, 좋아하지 않는 시집, 충동구매 했는데 내게 어울리지 않는 호피 원피스, 엄마에게 받았지만 들지 않는 가방 따위를 들고 가서 팔았다. 그 애는 완벽하게 세팅된 헤어로 그 자리에 나타나서는 내 옆에 함께 퍼질러 앉아 장사를 도왔다. 그 때는 그 애의 완벽하게 모양낸 검은 머리칼과 평균보다 훌쩍 큰 키, 메탈릭한 소재의 샌들 따위가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던지. 나는 그 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 애의 외모 때문에, 너무나 내 취향인 그 외모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우리는 그 행사에서 번 돈으로 대학로의 어느 삼겹살 집에 가 소주를 마셨다. 거기서 내 인생 최초로, 사귀자는 말을 내가 먼저 했다. 나는 쇼윈도에 전시된 근사한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 아이처럼 애가 닳았다. 그 애가 갖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 연애는 오래 가지 않았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너무 대화가 되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그 애는 공대생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같은 유형의 인간이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보면 소통하고 교감한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입력한 어떤 수식에 대한 결과값을 얻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취향도 잘 맞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난해하고 우울한 음악과 문학에 심취해 있었는데, 그 애는 스탠딩에그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어본 적 없었다.


네번째였나, 다섯 번째 데이트였나, 그 애는 지인에게 티켓을 얻었다면서 나를 어떤 콘서트에 데려갔다. 거기서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콘서트가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것만 생생할 뿐. 그 콘서트는 한일 수교 몇십주년을 기념해 (아주 유명한) 보수 정치인이 주최한 행사였다. 스스로 좌파라고 믿던 그 시절의 내게 그 행사의 취지는 큰 충격을 안겼다. 그애를 만날 때 나는 그 애가 당연히 나와 비슷한 정치적 '취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보수적인 군인 집안에서 자라난 그 애는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퀴어퍼레이드를 혐오했다. 


다음 만남에서 우리는 전시회에 갔다. 나는 몸에 붙는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그 애처럼 완벽하게 머리 세팅을 하고 그 자리에 나갔다. 그 애는 활짝 웃으며 내게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건넸다. 내게 꽃다발을 건네는 그 애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살짝 우울한 느낌의 길고 짙은 눈이 화사한 웃음에 덮이며 사랑스럽게 작아지는 그 순간. 꽃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 그때까지는 그 애가 좋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날 우리가 만난 장소가 미술관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만났을 수도 있었겠다 싶을 만큼, 그 순간은 기뻤다. 

잔뜩 흥분한 나는 그 날 전시회의 주제였던 어느 화가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 그를 모티브로 나온 몇 개의 영화들과 그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중 내가 좋아했던 한 가수에 대해, 그 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밴드와 그 가수가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 당시 내게 그 이야기는 어쩌면 내 인생보다 더 중요했다. 그 때의 나는 내게 영향을 주었던 과거의 시절들과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가상의 세상을 살고 있었고, 내 앞길에 펼쳐진 막막한 미래와 세속적인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면 영혼 따위는 아주 쉽게 팔아치울 수 있는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그런데 그 애는 차곡차곡 스펙을 쌓아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 취업한다는 안정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는 기계공학과 학생이었다. 

그 사람은 왜 그런 거야?

그건 왜 그런거야?

그 애는 인내심을 갖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가끔 참을 수 없다는 듯, 과거 예술가들의 삶이나 작품에 대해 이성적인 해명을 요구했고, 그 때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애는 이따금씩 '뭐 어쨌든 귀엽네.'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과장하자면 그건, 선물이랍시고 죽은 쥐를 물어온 귀여운 고양이를 보는 표정이었다. 당시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이야기들이 그 애에게는 죽은 쥐와 같았다. 


지금은 그 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전시 관람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귀가를 준비하는 나를 그 애가 잡았다. 영화 하나만 보고 가자고,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그 애와 함께 영화관에 갔다. 그 때 본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내 기분은 더욱 급강하했다. 그 당시 내 부모님은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영화 내용이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 상처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 때 헤어지자고 분명히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내 인생 최초였다. 나는 이별을 고하는 게 너무나 괴로운 사람이고, 차이는 것보다 차는 게 백 만 배 힘든 사람이라, 벗어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 되어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 관계는 서로 힘드니 너에게 결정권을 주겠다. 잘 생각해보고 결론을 이야기해달라'고 말하지 헤어지자고는 하지 않는다. 일종의 애정결핍인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이 남아있다면 내가 식었어도 그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거다. 그렇다보니 단호하게 헤어지자 말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내게는 정말 특이한 일이었다.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거지? 좋아하지 않는 거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며칠 후 내가 이별을 고했을 때 그 애가 말했다. 

아직 제대로 만나보지 않았잖아. 더 좋아하게 될 수도 있잖아. 우린 아직 시작도 안했잖아.

물론 모두 맞는 말이었지만 그 때의 나는 그저 도망치고만 싶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마지막으로 그 애가 물었다. 물론, 그런 자신이 있을리는 없었다.

언젠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너와 만날 수 없어.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 후 몇년을 후회했다. 너무나 내 취향이었던 그 애의 외모를 떠올릴 때마다. 객관적으로 보기 좋은 외형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한 스푼의 내 취향이 적절히 조미된 그런 외모의 사람을 나는 그 후 수년간 구경조차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눈빛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니 별 시답잖은 연애사를 구구절절 풀어놓게 됐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도 나도 서로에 대한 마음이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애의 외모만 좋아했고, 그 애는 내가 자신을 좋아하면서 좋아하지 않아서 나를 좋아했다. 세상에는 성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감정적인 부분에서 피학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애는 거대해 보이지만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내 마음, 습관적인 다정함을 얄팍한 표피로 두르고 공허함만 가득 불어넣어 부풀린 그 마음을 귀신처럼 알아보았다. 아주 사소한 자극으로도 펑 터져 사라져버리는, 알록달록한 풍선같던 그 마음. 그걸 지켜보며 느끼는 아슬아슬한 스릴을 사랑으로 정의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보기엔 나만큼이나 그 애도 나를 진짜 좋아한 건 아니었다.


이따금씩 그 애의 매력적인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아련한 감정은 '청춘'이라는 식상한 단어로밖에 명명할 수 없는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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