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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츄르 Jan 27. 2021

07_방산 시장에 가다

고백하자면, 나는 ‘시장’이라는 공간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큰 회사에 고용된 서비스업 종사자의 정형화된 상냥함이 띠는 온기와는 다른, 시장 특유의 생생하고 노골적인 활기가 두렵다. 

그 활기가 가하는 힘 때문에, 나는 시장에 옷을 사러 갔다가 별로 원하지도 않는 옷을 인터넷보다 훨씬 비싸게 산적이 많다. 그냥 조용히 가격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고 싶은데 직원이 다가와 친근한 어조로 말을 걸면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다가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직원이 다른 손님과 대화할 때를 틈타 재빨리 가격을 체크해 물건 구입여부를 결정하고, 누군가 다가오기 전에 후다닥 가게를 나가는 편이다. 

언니, 오빠, 누나, 삼촌, 이모... 

처음보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고, 매일 보는 친구인양 친근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소위 ‘인싸력’이 참 부럽긴 하다. 그런 특유의 친근한 적극성은 내가 평생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그런가보다.  

방산시장을 방문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섰다. 옷 몇벌 사는 것도 부담스러운 시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백만원이 넘는 의사결정을 해야한다니!

시작도 하기 전에 막막하기만 했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SOS를 쳤다.




"피곤한데..."

방산 시장을 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 나는 싫다는 엄마를 억지로 끌고 길을 나섰다. 그날따라 버스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가는 길 내내 눅진한 피로가 발자국처럼 따라붙으며 평소라면 예뻐보였을 환한 낮 풍경을 너저분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벽지 거리에 가서 간판에 ‘바닥재’가 추가된 곳들을 방문했다. 하지만 ‘폴리싱 타일’소리를 듣자마자 다들 그런건 안 한다고 했다. 혹시 ‘바닥재’가 아닌 ‘타일’의 개념으로만 접근해야 하는 건가? 그 생각으로 두 번째로 찾은 곳은 도기와 타일, 화장실 공사를 하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였다. 유리창들 너머로 변기와 타일, 수전 같은 것들이 진열돼 있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에서는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맞아주셨다. 

“누가 폴리싱 타일을 거실까지 다 깔아요? 부엌에만 하는 거지. 

그것도 물 쓰고 하면 미끄러워서 별로 안 좋아.”

집 전체에 깐다고도 안하고, 우선 거실과 부엌에 깔거라고만 얘기했는데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걸 보니 감이 안좋았다.

“그거 거실까지 다 깔면 노인네들 골로 가요. 넘어지면 큰 일이라니까. 

넘어져서 머리 깨지고 아무도 모르면 그거 어떻게 해.”

세상에, 내가 독거 노인을 꿈꾸고 있는지 어떻게 아셨는지, 약 40년 후의 내 미래까지 걱정해주셨다.

“뭐 정 하고 싶다면 우리 가게에서 할 수는 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예쁘다고 폴리싱타일 그거 많이 까는데, 뭣도 모르고 하는 거야. 나중을 생각해야지 나중을.”

그 사장님을 혀를 끌끌 차며 비용을 계산해주셨다. 타일의 종류도 정하지 않고, ‘하얀 것’이라는 전제 하에 대충 낸 견적이었다. 나는 견적이 적힌 명함을 받아들고 재빨리 가게를 빠져나왔다. 나름대로 바닥재별 장단점을 찾아보고 폴리싱타일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는데 안좋은 소리를 잔뜩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점이라고 하는 말들이 근거가 충분치 않아 와닿지 않았고, 결국은 화장실 외의 공간엔 장판을 해야한다는 소리였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장님이 있었다. 


“집 전체에 깔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질러버렸다. 그런데 웬 일. 이번 사장님은 군 말없이 타일을 고르는 것을 도와주고, 견적을 계산해 주었다. 마침 이미 인터넷으로 보고 마음에 두었던 타일이 그 집에 있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너무 진하지 않은 대리석 무늬의 하얀 타일

견적을 보니, 부정적인 소리만 늘어놓던 첫 번째 집보다 훨씬 쌌다. 어차피 다른 집을 더 가봐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나는 그 집에서 예약을 잡았다. 예전부터 내 신조는 ‘할 수 있을 때 한다. 일단 해보고 본다’였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사도 설명서를 잘 보지 않고 직관적으로 익힌다. 그게 사기 전부터 사용법을 찾아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다. 

인테리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가 예약한 곳보다 더 싼 집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차피 가격 차이가 나봤자 크지 않고, 그만큼 다른 곳에서 이윤을 남기려 할 터이니 최종적으로는 비슷해 질거라는게 나의 생각이었다. 인테리어를 해본 적은 없지만 수많은 인터넷 후기를 찾아본 결과, 견적을 내본 비용과 최종 들어간 비용은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A가 싼 업체는 B가 비싸고, A와 B가 다 싼 업체는 최종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C라는 비용이 추가되더라. 주변에 주워들은 후기, 인터넷 후기를 종합해보면 이런 결론이 나왔다. 그럴 바엔 쓸데없이 시간과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3000만원짜리 인테리어 공사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300만원 짜리 공사를 알아보면서 이곳 저곳 찔러보는 데 공을 들인다면 그게 더 손해였다. 차라리 방산시장을 한 번 방문 할때마다 드는 교통비, 밥값을 아껴 예쁜 소품 하나를 더 사는게 나았다.     

겨우 두세 시간 돌아다녔을 뿐인데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그래서 방산시장 먹자골목의 전집을 방문했다. 줄이 굉장히 길었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바삭바삭한 육전과 감자전을 보고 있자니 군침이 돌았다. 정제탄수화물과 지방의 조화. 혈당을 수직 상승시켜 바로 뱃살로 돌진하는 고칼로리 음식이었지만, 쭉 빠진 에너지를 빠른 시간에 채워주기엔 제격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닌 칼로리 이상을 섭취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괜히 방문 전부터 두려워했던 것 같다. 방산시장은 옷을 판매하는 시장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인조속눈썹 붙이고 친근하게 말을 거는 예쁜 ‘언니들’도 없었고, 젊은 여자만 보면 남자친구 있냐고 백 번 물어보는 (암만 봐도 아저씨인) ‘자칭 오빠들’도 없었으며, ‘이 옷 사 입고 소개팅에 나간 후 얼마 안있다 임신해서 시집간 친구 딸 썰’을 푸는 ‘이모님들’도 없었다. (참고로 ‘옷사입고 속도위반 결혼한 친구 딸 썰’은 내가 옷사면서 정말 들었던 얘기다. 계산 직전에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무서워서 옷을 안살 뻔했다.)

돌아오는 버스안, 견적을 받은 가게 명함을 찍어보았다.

내가 본 방산시장 가게들의 사장님들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견적을 내주느라 바쁘거나, 전화로 업체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오히려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너무 관심이 없어서 무언가 물어보려면 용기를 내야 할 정도였다. 견적만 듣고 나가도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내게는 너무나 편한 분위기였고 그래서 의사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 만약 화장실 공사를 하게 된다면, 나는 또 방산시장을 이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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