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퇴사를 하고 내가 그렸던 시나리오는, 쉬지 않고 바로 대기업 신입 인사 포지션에 지원서를 넣어서 합격을 하는 것이었다. 경력도 1년 넘게 있고 신입치고는 꽤 다양한 경험을 깊이 있게 했으니, 다른 쌩신입 지원자들보다는 경쟁력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든 갈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웬걸. 바로 다음 시즌에는 또 다시 역대급 취업 한파를 기록하며 대기업 인사 공고가 25개 남짓밖에 나오지 않았고, 내 서류 합격률은 20%도 안되는 처참한 결과를 기록했다. 어쩌다 간 면접에서는 퇴사 사유로 공격을 받았고, 서류-인적성/역량검사-1차면접-2차면접이라는 길고도 험난한 취업 과정의 어디선가 난 번번이 탈락했다. 내 공백기가 길어질동안 나보다 젊고 경력을 쌓고 있는 중인 지원자들이 치고 들어왔고, 이제는 내 나이에 경력이 1년 남짓 있다는 것조차 사실상 큰 메리트가 되지 않았다.
다음 시즌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반기가 시작되기 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위압감에 공모전에도 나가 우승도 하고,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여러 자격증도 땄다. 설마 이제는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퇴사 사유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했고, 인사 직무 지원자 치고는 나름 희귀한 스펙도 쌓았으니 이젠 정말 되지 않을까.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며 벗어날 수 없는 취업 지옥을 다시 시작했다.
희망고문을 하며 다시 뛰어든 취업 시장에서 나는 더 처참한 결과를 얻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스펙도 더 쌓았고 남들이랑 차별화된 역량도 길렀는데 왜? 한 시즌을 할 때는 우울감만 있었다면 두 시즌이 넘어간 지금은 우울감을 넘어 상실감, 자괴감, 세상에 대한 분노까지 쌓여버렸다. 나를 매번 거절하고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 사람과 세상이 너무나도 미웠고 두려웠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아무리 곱씹어봐도 잘 모르겠다. 어렵게 얻은 면접 기회였는데 대부분의 면접관은 나를 잘 알아보려 하지 않고, 나에게 별 관심도 없어보였고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게 탈락이었다. 그동안 공들여 기업 분석을 하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혹시라도 실수할까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새벽까지 중얼중얼 외웠던 내가 너무 비참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거라는 말을 되뇌이며, 나는 몇 번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 곧 퇴사한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백기 1년이 넘어가면 이보다도 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거라는 걸 주위로부터 들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지원서를 넣었다. 반드시 일에 대한 내 진심을, 내 열정을 알아봐주는 회사라 있을거라고 믿으며. 정말 어쩌다 서류를 합격하면 너무 기쁘다가도 동시에 어차피 면접을 봐봤자 이전처럼 또 탈락할거라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존감은 높지 않으면서도 막연히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여태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울 때 늘 나를 지탱해주던 그 이상한 믿음은 취업을 3년씩(회사에 들어가서도 이직 준비를 계속했었다)이나 하고도 원하는 곳에, 아니 이젠 어느 곳에든 취업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마주하며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나보다 좋은 회사에서 일을 경험하고, 나보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학점을 받아도 취업이 안 되는 이 취업 시장에서 나는, 아주 안 뽑을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꼭 뽑아야할 이유도 마땅히 없는, 게다가 조직 부적응이 의심되는 한 명의 지원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