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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Apr 12. 2023

파리에 왔으면 이건 꼭 먹어봐야죠

오르세 박물관, 센강 그리고 달팽이 요리와 개구리 뒷다리

 파리는 예술의 도시입니다. 유명 화가, 시인 등 유명 예술가들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고흐, 피카소, 위트릴로가 거닐었던 길을 위에 서있으니 예술의 낭만과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성에 젖어 도착한 곳은 '오르세 박물관'입니다. ‘파리 박물관’하면 모두들 루브르 박물관을 떠올리실 거예요.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모나리자, 비너스, 니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루브르의 3대 여신이라 불리는 세 작품을 꼭 보고 싶었거든요.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루브르 탐방은 하지 못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다 돌아보려면 반나절도 부족합니다. 며칠이나 걸린다는 글을 보고 포기했답니다.

 꿩 대신 닭으로 ‘오르세 박물관’을 선택했습니다. Solférino역에서 약 5분 정도 걸리는 이 미술관은 센강 바로 앞에 있습니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센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햇살을 받으며 걷는 사람, 벤치에 앉아 책 보는 사람 등 파리의 오후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센강 위에는 유람선이 지나갔습니다. 파리의 명소는 대부분 센강 강변을 따라 위치해 있어요. ‘바토 파리지앵’이라는 유람선을 타 파리 풍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 먼저 다녀 친구 후기를 듣고 유람선을 예약했습니다. 강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야경을 기대하며 오르세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박물관 외관에 있는 시계탑이 유명합니다. 관광객들이 시계탑 밑에서 모두 사진 찍기에 몰두해 있더라고요. 저도 한 컷 찍었습니다. 오르세 박물관은 원래 기차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기차 시간을 확인해야 하니 건물 외벽에 크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전 설명을 듣고 보니 길쭉한 건물이 기차역 같았습니다. 이후 호텔, 영화 세트장으로 쓰였고요. 9년간의 공사를 끝으로 1986년 개장했습니다.

 로비에서 오디오 가이드, 팜플렛을 받은 뒤 본격적인 문화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보다 작다고 들었는데, 막상 들어서니 엄청 컸습니다. 층고도 높았고요. 5층까지 있었습니다. 맨 아래층 작품부터 차근차근 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한참을 돌아다녔는데 아직도 많은 작품이 남아있었어요. 오르세 박물관에는 약 2만 점의 미술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마감시간까지 봐도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팜플렛에 나와 있는 주요 작품부터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오르세 박물관을 찾으신다면, 주요 작품을 먼저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많이 걸었더니, 박물관에서 급격한 체력저하가 찾아왔습니다.

 팜플렛 표지에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한 반 고흐 작품을 보러 5층으로 향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그곳엔 교과서나 미디어로만 접해본 익숙한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앞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있었습니다. 그 틈을 비집고 사진 촬영에 성공했답니다. 사진을 찍고 뒤로 물러나 <자화상>의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다시 한번 감상했습니다.


 반 고흐는 여동생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습니다. 자신의 안부를 편지로 전했는데, 이때 자화상을 그려 동생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글로 ‘잘 지낸다’라고 쓰는 것보다 자화상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안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천재다운 발상입니다.

 박물관 2층엔 귀여운 곰돌이 조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곰표가 떠오르는 이 작품의 작가는 프랑수아 퐁퐁입니다. 작품처럼 이름 어감이 귀엽습니다. 퐁퐁 작가는 동물 전문 조각가입니다.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으로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10대 때 조각을 처음 시작했지만 무명기간이 길었습니다. 60대에 이르러서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유명작품이 있는 5층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북극곰 앞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앙증맞은 표정과 뽀얀 모습은 ‘오르세의 귀염둥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은 최선보다 차선을 선택했을 때 쓰는 말입니다. 루브르 방문을 포기하고 선택한 오르세는 이번 파리 여행에서 닭입니다. 하지만 전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치맥을 먹고요. 꿩 요리보다 닭요리를 선호합니다. 꿩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지만 말이죠. 닭은 언제나 옳습니다. 오르세 박물관 선택은 만났던 작품만큼이나 아름답고 훌륭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바게트만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예술작품을 본 덕분에 마음의 허기는 채웠지만 굶주린 배는 채우지 못했네요. 프랑스에 왔으니 가장 프랑스다운 음식을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에스카르고’란 음식을 들어보셨나요? 네 맞습니다. 그 유명한 달팽이 요리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가리는 음식이 있냐고 묻는다면, “‘선지’ 빼고 다 잘 먹어요.”라고 답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달팽이를 잘 안 먹으니까요. 달팽이 요리가 한국에 대중화되어 있다면, 아마도 ‘선지와 달팽이’라고 답했을 겁니다. 달팽이 요리, 듣기만 해도 뭔가 느낌이 이상합니다. 프랑스에 왔으니까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요.


  메뉴판을 뒤적이다 또 다른 음식을 찾았습니다. ‘개구리 뒷다리’입니다.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갔었는데, 삼촌이 개구리를 잡아왔습니다. 그때 처음 개구리 뒷다리를 먹어봤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닭고기랑 맛이 비슷했고요. 식감은 닭고기보다 부드러웠습니다. 그 후 십 수년이 지나 프랑스에서 개구리 음식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 식사의 컨셉은 가장 프랑스다운 음식입니다. 망설인 만큼 음식만 늦을 뿐이죠. 오리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추가하고, 달팽이 요리와 개구리 뒷다리를 주문했습니다.

 달팽이 요리 비주얼은 생각만큼 징그럽지 않았습니다. 아, 음식에 징그럽다는 표현을 쓰는 건 좀 실례입니다. 아무튼 생각처럼 못 먹을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오일 베이스 양념이 몸통에 배어있었고요. 같이 나온 긴 꼬챙이를 이용해서 달팽이 살을 빼먹었습니다. 소라 먹는 방법과 동일했습니다. 식감은 골뱅이 먹는 느낌이었는데, 조금 더 쫄깃했습니다. 오일 양념과 잘 어울려 거부감 없이 먹었습니다. 1단계는 클리어했습니다.

 개구리 뒷다리 요리는 비주얼을 보고 놀랐습니다. 크림과 방울토마토가 뒷다리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냥 정말 개구리가 접시에 누워있는 형태입니다. 허벅지 살이 두툼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점프할 것 같았습니다. 모양이 최대한 안 보이게끔 크림을 잔뜩 발라서 입에 넣었습니다. 크림 파스타에 닭고기가 들어갔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맛을 음미해 봤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맛있습니다. 고기도 부드러웠고요. 크림과 잘 어울려서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같이 식탁에 앉았던 친구도 “닭고기 먹는 것 같다.”며 반대쪽 다리도 맛있게 뜯어먹었습니다. 달팽이와 개구리 요리는 상상 이상으로 입맛에 맞았습니다. 파리 현지식을 가볍게 소화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꺄후셀 다리를 건넜습니다. 아름다운 센강과 잘 어울리는 다리였습니다. 다리 중간에서 루브르 박물관이 보였습니다.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외부 구경과 박물관 내 광장을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답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여행 유튜버가 사진을 찍었던 유리 피라미드도 봤습니다. 저도 그곳에 앉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앉은 김에 웅장하고 거대한 박물관을 바라보며 잠시 쉬었습니다.

 문득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땐 왜 그리 치열하게 살았는지 후회도 밀려왔고요. 상처받고 마음 아파했던 순간도 떠올랐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구석에서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요. 돌이켜보니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고작 그런 일로 마음 썼다는 게 부끄러울 만큼 작고 사소한 일이었죠. 이게 바로 여행의 매력 아닐까요?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새로움은 떠나기 전 힘들었던 기억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파리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쁜 기억을 털어 낸 것처럼,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잔뜩 껴있었습니다. 그리고 뉘엿뉘엿 파리의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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