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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Apr 09. 2023

파리 첫인상, 무서움에서 시작된 유럽 여행

몽마르뜨 언덕, 사랑해 벽 그리고 바게트

 ‘무섭다’ 제가 느낀 파리 첫인상입니다. 14시간 비행 끝에 만난 파리는 설렘보다 긴장을 심어줬습니다. 여행 첫날 아침, 숙소 주변을 거닐었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거리엔 사람이 없었고요. 3월 말이라고 하기엔 추운 날씨였습니다. 건물 뒤편엔 치우지 않은 쓰레기가 한가득 있었습니다. ‘파업이 일상인 나라’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청소하는 분도 파업에 동참했나 봅니다. 해가 뜬 파리는 다를 거라 기대하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파리에서 처음 먹은 음식은 호텔 조식으로 나온 크루아상과 스크램블, 베이컨입니다. 식당엔 외국인이 가득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외국인이네요. 커피머신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영어를 썼고요. 제 옆자리는 일본인 커플이 앉았습니다. 시끌시끌한 곳을 바라보니 중국인 가족이 있었습니다. 한국말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파리 구경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저는 프랑스 파리에 와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누구도 저를 알지 못했고요. 저도 그 사람들을 모릅니다. 파리 첫인상처럼 무서웠습니다. 이번 유럽 여행을 잘할 수 있을까요?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호텔을 나왔습니다. 해도 떴고요. 길거리에 사람도 지나다녔습니다. 새벽에 잠깐 봤던 파리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고맙게도 날씨마저 맑습니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몽마르뜨 언덕’입니다. 이곳에 가려면 구글 맵에 ‘샤크레쾨르 성당’, ‘몽마르뜨르’로 검색하면 됩니다. 간혹 ‘몽마르뜨 언덕’으로 찾으면 ‘몽마르뜨 묘지’로 안내하거든요. 그곳은 공동묘지입니다. 친구나 연인, 가족과 함께 묘지에 도착했다가 묻힐 수도 있으니 구글 맵 사용하실 때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

 숙소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인 Alésia역에서 까르네 티켓 10장을 구매했습니다. 까르네는 프랑스 지하철 승차권입니다. 한국 지하철 종이 티켓과 똑같이 생겼어요. 스마트폰과 같이 보관하면 기기에서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다른 주머니에 넣어서 보관해야 합니다. 물론 인식이 안 되면 바꿔주긴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티켓 구매도 완료했으니 몽마르뜨 언덕이 있는 Barbès - Rochechouart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렸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의 모습은 ‘무섭다’는 파리 첫인상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습니다. 스크린도어 없이 뻥 뚫린 승강장은 차갑고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겨내야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조언을 되뇌며 가방을 껴안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괜한 설레발이었을까요? 러시아워를 지난 지하철은 한산했고요. 어느 누구도 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Barbès - Rochechouart역에 도착했습니다. 걸어서 10분이면 파리 첫 번째 여행지인 ‘몽마르뜨 언덕’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몽마르뜨 언덕’에 다녀온 블로거 리뷰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언덕에서 내려다본 파리 풍경을 극찬하는 글도 있지만 안 좋은 이야기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팔찌를 강제로 채우고 돈을 요구하는 잡상인’, ‘야바위꾼’, 그리고 ‘설문조사 요구하는 사람’입니다. 멋진 파리 여행을 방해하는 못된 방해꾼들이죠.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는 순간, 지금껏 해왔던 걱정, 두려움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쏟아져 들어왔거든요.

 파리 시내 모습은 절경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건물이 즐비했고요. 파리의 고혹적인 분위기도 느꼈습니다.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대라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곳이죠. 보통 여행 첫날 몽마르뜨 언덕을 찾는다고 해요. 시내를 내려다보며 첫날의 낭만과 감성에 푹 빠지기 위함이 아닐까요? 저 멀리 몽파르나스 타워도 보였습니다. 파리 야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에요. 아쉽지만 일정엔 포함되지 않아서 바라만 봤습니다. 다시 파리를 찾는다면 첫날 저녁에 꼭 몽파르나스 타워에서 야경을 즐길 겁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그리고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와 강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노을이 비추는 저녁엔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고 합니다. 불빛을 반사하는 센강과 시내를 수놓는 조명과 건물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아름다움 속에서 일상을 보낼 파리 사람들이 부러웠고요. 왜 다들 그렇게 파리를 찾는지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모습 때문입니다.


 언덕 위쪽엔 구글 맵에 검색한 ‘사크레쾨르 성당’이 파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40년 동안 지었다고 합니다. 성당 안은 차분한 분위기가 깔려있어요. 큰 소리도 낼 수 없고요.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가방 검사도 한답니다. 성당이다 보니 기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숨소리조차 조심할 만큼 고요한 성당입니다. 2유로를 내면 성당 한편에 촛불을 올릴 수 있었어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여행 동안 무탈하게 해달라고 촛불을 밝히며 기도했습니다.

 성당 밖으로 나와 다시 한번 파리 시내를 내려다봤습니다. 무서움은 잊었습니다. 파리의 풍경과 분위기는 두려움, 무서움을 지우고도 남을 정도로 아름답고 완벽했습니다. 팔찌를 들이미는 잡상인은 손사래 치며 거절했고요. 설문조사를 요구하는 사람은 무시하거나 “No, No"를 연발하며 탈압박했습니다. 불편함 때문에 아름다움을 포기할 순 없었거든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순 없잖아요. 그 사람들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고 조금만 조심한다면 파리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혹시 저처럼 유럽여행이 처음이거나 무서움에 빠져 긴장하고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서움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떨림이 아닌 설렘의 떨림을 느끼길 바랍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엔 배고픔이 찾아왔습니다. 긴장도 풀리고 언덕을 올랐더니 속이 허했습니다. 파리는 빵순이, 빵돌이가 좋아하는 도시입니다. 곳곳엔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하고요. 거리엔 느낌 있는 빵집이 즐비했습니다. 골목마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는 한국과 달리 파리는 전 지점이 직영점입니다. 아주 작은 가게처럼 보이지만 1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빵집도 있었습니다. 파리는 빵에 진심인 파리까지 왔는데 그냥 빵집엔 갈 순 없습니다. 사실 파리 모든 빵집이 그냥 빵집은 아니지만.

 제가 찾은 곳은 Chez Isaac입니다. 바로 옆에 사랑의 벽이 있고요. Abbesses역도 있어서 관광지와 역세권까지 갖춘 빵집입니다. 맛까지 갖췄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Chez Isaac의 근본은 ‘바게트’라고 합니다. 고민 없이 바게트를 집어 들었습니다. 사랑의 벽 앞에 버스킹이 한창이었어요. 그곳에 앉아 빵을 먹었습니다. 바게트 안쪽 향이 독특했습니다.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은은하게 맴돌던 버터 냄새가 글을 쓰는 지금까지 생각이 납니다. 빵 덕분에 공연, 풍경까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맛있게 먹고 나서 찾아보니 이 빵집, 보통 빵집이 아니었습니다. 왕실에 빵을 납품했던 가게라고 하네요. 최근 바게트 경연대회에서 우승도 차지했고요. 늦게 가면 바게트가 다 떨어지고 없다고 합니다. 알고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 이래서 여행은 사전 공부가 필수인가 봅니다.


 사랑의 벽엔 "나는 널 사랑해"라는 문구가 300여 개국 언어로 적혀있습니다. 한국어를 찾는 동안 세계 각국의 언어를 들었습니다. 작고 조용한 공간이지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랑을 말하는 곳이었습니다. 자국의 언어를 찾은 관광객은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얼굴엔 사랑이 가득했고요. 모두 하트를 만들며 추억을 남겼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공간과 사람들 틈에서 느낀 따뜻한 감정과 분위기는 특별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랑의 힘은 역시 위대합니다.

 파리, 그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도시입니다. 인터넷 리뷰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정적 경험이 있어 여행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낍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 반나절 만에 걱정과 불안감은 사라졌습니다. 파리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감동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놓치면 안 될 것들이 한가득입니다.


 오전 일정을 마친 저는 두려움에 떨었던 지하철을 탑니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뭐가 그리 무서웠다고 덜덜 떨었는지 부끄럽네요. Abbesses역에 들어서서 목적지를 확인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첫날, 파리의 무서움을 이겨내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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