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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Feb 14. 2021

사원이 혼자 밥 먹는 이유

 “사람들과 함께하면 ‘점심’ 시간이지만 혼밥을 하면 점심 ‘시간’이에요. 간단하게 밥을 먹고 카페를 찾아요. 거기서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봐요. 이어폰을 꽂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 스트레스가 씻겨나가요. 출근하고 웃을 일이 없는데 유일하게 웃는 ‘시간’을 가져요.”


 입사 2년 차 J는 얼마 전 인사팀장과 면담을 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긴장하고 자리에 들어섰다. 혹시나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있는지 머리를 재빠르게 굴렸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법률팀이나 감사팀에서 소환했을 텐데 인사팀이라니 무슨 일인지 도무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인사팀장은 으레 있는 자리인 것 마냥 분위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팀장 얼굴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해 보였다. 겉치레 가득한 인사를 나눈 뒤 인사팀장은 면담 이유를 설명했다.


 “저보고 회사에 적응 못하는 것 같대요. 이유를 들어보니 제가 요즘 혼자 밥을 먹으러 다녀서래요.”


 원래 J는 선배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그중 한 명이 얼마 전 회사를 떠났다. 나머지는 타 지사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점심 파트너가 다 사라져 J는 혼자 남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놀랄 이유인가요? 면담 사유가 웃겼어요. 회사 인근 식당에서 제가 혼자 밥 먹는 걸 사람들이 봤나 봐요. 사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거 아니냐며 괜한 걱정을 하더군요. 그런데 전 다른 사람들 틈에 끼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편해요.”


 상사들과 밥을 먹을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메뉴 선택이다. 막내인 J에게 뭘 먹고 싶냐고 항상 물어봤다.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다. J가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면 ‘그건 좀’ 이란 반응이 돌아왔다. 그 순간 발 빠르게 플랜 B를 준비해 상사들의 점심 코스를 맞춰야 했다.


 “저 먹고 싶은 거 먹자고 해놓고는 막상 말하면 먹으러 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예요. 그럴 거면 왜 물어보는 걸까요? 스트레스였어요.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지만 상사의 입맛을 살펴야 해요.”


 식당에 도착하면 편하게 있지 못했다. 상사들이 먹을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한두 가지로 통일해주면 좋으련만 입맛이 제 각각이다. 주문을 마치고는 컵을 한데 모아 물을 채워 상사들에게 전달한다. 물은 ‘셀프’란 말이 있으면 직접 가지러 간다. 물 배송을 끝낸 뒤 티슈를 사람 수만큼 뽑아 상사 오른편에 가지런히 깔아 놓는다. 그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리면 점심 식사 준비 끝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반찬을 잘 살펴야 해요. 반찬이 다 떨어지면 사장님을 불러서 더 달라고 하죠. 만약 추가 반찬이 셀프면 일어나서 직접 퍼와요. 맛있게 먹다가 빈 접시를 들고일어나는 기분이란 참 별로예요. 전 먹는 게 끊기면 안 되거든요. 갔다오면 밥맛이 사라져요.”


 점심시간이지만 점심만 먹는 시간은 아니었다. 상사들은 일 이야기를 하거나 가끔은 J에게 훈육을 했다. 실수했던 일을 들먹이며 밥 먹는 막내에게 폭풍 잔소리를 쏘았다. 뿐만 아니라 주말에 했던 일, 주식으로 돈 번 이야기, 자신의 정치색 등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J는 상사의 말에 귀 기울이는 척 리액션을 하며 밥을 떠넘겼다.


 “식사가 끝나면 더부룩하고 오후 내내 배에 가스가 차요. 편하게 밥 먹고 싶어요.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은 하나잖아요. 제발 점심시간엔 밥만 먹었으면 좋겠어요. 잔소리까지 먹으니 소화가 안돼요.”


 상사와 식사를 하면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대부분은 ‘뿜빠이’였지만 가끔 점심을 사줬다. 하지만 J는 자기 돈 내고 몸과 마음이 편한 점심을 즐기고 싶었다. 사람들의 퇴사와 인사발령으로 혼자가 된 J는 면담 사‘혼밥’을 시작했다.

 “메뉴 선택에 자유가 생겼죠. 제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어요. 술 먹은 다음날 분식집에 가서 라면으로 해장할 수도 있고요. 혼자지만 뭘 먹을지 고민할 때도 있죠. 그럴 땐 회사 후문에 있는 식당에 가요. 된장찌개가 맛있거든요. 저는 맛있는데 상사들이 맛없다고 해서 못 갔어요. 지금은 혼밥이라 실컷 갈 수 있답니다.”


 점심시간은 회사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한 시간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다. 업무 시간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만 12시가 되면 그곳을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었다. 상사들과 밥을 먹을 땐 점심시간도 업무시간의 일부였다. 혼밥을 한 후로 J는 점심시간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면 ‘점심’ 시간이지만 혼밥을 하면 점심 ‘시간’이에요. 간단하게 밥을 먹고 카페를 찾아요. 거기서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봐요. 이어폰을 꽂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 스트레스가 씻겨나가요. 출근하고 웃을 일이 없는데 유일하게 웃는 ‘시간’을 가져요.”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거나 점심 생각이 없으면 삼각김밥으로 해결했다. 남는 시간엔 노래를 들으며 회사 가까운 곳에 있는 공원을 걸었다. 퇴근 후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운동할 시간이 없었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해 하루 운동량을 채웠다. 멍하게 걷고 들어온 날은 오후 업무효율이 더 좋았다.

 “사무실에 들어오면 사람들이 밥 먹었냐고 물어봐요. 먹었다고 하면 ‘누구’와 먹었냐고 해요. ‘혼자’ 먹었다고 답하면 측은하게 쳐다봐요. 왜 혼자 먹냐면서요. 먹을 사람 없으면 같이 먹자고 하는데 알겠다고 하곤 그냥 넘겨요. 계속 혼자 먹으러 다녀요. 얼마나 편한데요. 혼밥을 포기할 수 없어요.”


J의 혼밥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도전해보고 싶어 졌다. 결심은 했지만 행동은 쉽지 않았다. 특히나 보는 눈이 많은 회사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망설이는 나에게 J는 말했다.


 “전 살려고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살아요.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먹는 일은 나에게 행복하고 소중하죠. 행복한 시간을 껄끄럽게 보낼 바에 차라리 용기 있게 혼밥을 해보세요.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점심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주어진 짧은 자유시간을 온전히 만끽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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