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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Mar 30. 2021

퇴근 후 부업하는 대리

 “퇴근 후 1~2시간 정도만 일해요. 주문 들어온 거 체크하고요. 출퇴근 지하철에서 문의 답변을 달아요. 어플로 가능하거든요. 배송은 출근길에 집 앞 편의점 택배를 이용해요. 아, 제 노하우를 너무 많이 말했나요?”

 회사가 수익구조를 다양화하는 것처럼 직원도 수익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갖춰야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6년 차 O대리는 팀장의 불명확한 지시도 이해하고 거뜬히 해냈다.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했고 시키는 것만 하지 않았다. 팀장의 다음 질문이 무엇인지 예상하여 각종 자료를 멋들어지게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도 회사생활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에게 비밀이 있어요. 퇴근 후 부업을 하고 있답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 중이죠. 소매로 조금씩 떼어다 팔아요. 최근 어느 정도 패턴을 알아서 수익이 아주 조금 생기기 시작했죠.”

 O대리의 말을 듣고 의아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그가 부업을 한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5~6년 차면 가장 몸값 좋은 시기 아닌가요? 월급 더 주는 회사로 이직한다거나 연봉 재협상 같은 건 생각하지 않나요?”


 “지금 다니는 곳 말고 다른 회사도 다녀봤어요. 그렇게 일하며 느낀 점이 딱 하나 에요. 회사가 내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거요. ‘평생직장’은 옛날이야기죠.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해요. 그게 저에겐 ‘부업’이고요.”


 회사는 O대리의 헌신을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헌신할수록 부려먹었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할 줄 아니까 더 시켰고, 할 줄 모르면 해보라고 더 시켰다. 프로젝트 달성은 당연한 것이고, 실패하면 책임은 자신에게만 쏟아졌다. 회사를 위해 혹사했던 그가 정신을 차린 계기는 ‘연봉협상’ 테이블에서였다.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주말에도 출근하며 꾸역꾸역 맞춰나간 한 해였어요. 그런데 연봉 상승률이 실망이었답니다. 작년에 비해 오르긴 올랐는데 정말 어이없는 수치였어요. 회사를 위해 불태운 날들이 수치스러웠죠. 회사는 알아주지 않더군요.”

 자신의 몸값이 적힌 계약서를 받아 든 O대리는 막막했다. 내 집 마련은커녕 차도 바꿀 수 없었다. 식비, 교통비 등 이것저것 떼고 세금까지 나가면 월급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날 O대리는 부업을 결심했다.


 “예전처럼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 회사 생활하지 않아요. 입사 초기에 팀장이 저한테 한 말이 있어요. “신입 때는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한다”고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죠. 파묻혀 살면 일을 더 퍼담아 주는 곳이 회사예요.”


 “부업이면 퇴근 후에 일해야 하잖아요. 힘들지 않아요? 많이 피곤할 것 같은데요?”


 회사에 마음을 뗀 O대리에게 물었다. 퇴근 후 피폐한 상태로 또 일을 하는 그가 더 힘든 길을 가는 것 같았다.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런데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요. 퇴근 후 1~2시간 정도만 일해요. 주문 들어온 거 체크하고요. 출퇴근 지하철에서 문의 답변을 달아요. 어플로 가능하거든요. 배송은 출근길에 집 앞 편의점 택배를 이용해요. 아, 제 노하우를 너무 많이 말했나요?”


 “들어보니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준비해봐야겠어요.”


 “회사 다니면서도 충분히 가능해요. 적극 추천합니다.”

 ‘포트폴리오 다각화’ O대리가 다니는 회사의 위기 대응 매뉴얼 중 하나였다. 직원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수익구조를 다양화하는 것처럼 직원도 수익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갖춰야 한다. O대리는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었다.


 “하나 팔면 5천 원쯤 남아요. 아직까진 용돈 벌이 수준이죠. 그래도 월급 이외 수익 창출구가 생겨서 기분 좋아요. 이것 말고도 퇴근 후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양하게 준비 중이랍니다. 시간을 크게 잡아먹지 않는 선에서요.”


 처음에 O대리는 돈 때문에 부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하면 할수록 재미가 생겼고 회사에서 느끼지 못 한 성취감을 얻었다. 대학 시절 교양 수업에서 배운 디자인 프로그램을 활용하 상품페이지를 꾸며나갈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수업 때 만난 친구들과 디자인 공모전에 나갔어요. 첫 도전에 입선을 했답니다. 정말 재미있었죠. 전공이 아니라 디자인 분야로 나가지 못했는데 부업을 하면서 묵혀둔 실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이라 다시는 못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었다. 가장 상위에 있는 욕구가 ‘자아실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는 불만 중 하나로 ‘자아실현이 불가하다’라고 토로한다. 역시나 O대리도 선택한 직업에서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든 페이지로 상품이 팔리거나 후기가 달리면 너무 행복해요. 내가 만든 세상에 사람들이 놀러 오는 기분이랄까요? 회사에선 못한다고 혼나는데 쇼핑몰에선 제가 참 대단하게 느껴져요. 자존감이 쭉쭉 올라가요.”


 밝게 웃는 O대리의 모습이 부러웠고 행복해 보였다.


 “저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네요. 응원합니다. 앞으로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자세를 바로잡은 O대리는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처럼 재미있게 꾸려나가고 싶어요. 그렇다고 회사 일을 등한시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회사에서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부업으로 메워 나가려고요. 금전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까지요.”


 “회사 사람들에겐 비밀인데 언제 공개할 거예요?”


 “매출이 제 연봉 세 배 정도 되면 말하려고요. 공개와 동시에 사표까지 던져야죠. 그날을 생각하며 행복 회로를 돌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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