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자페의 특징인 줄도 모르고.
그리고 무던히도 언어치료를 늘리고, 모든 요일에 너의 치료 스케줄을 하나씩 더 채워 넣었다.
그렇게 바쁜 일정 속에서 어린이집까지 다니기 시작한 너였지만, 낮잠 시간에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 장난감은 물론이고, 클레이까지 입에 넣어 씹어 먹는 게 너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자폐 아이들의 끝없는 구강 추구 행동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너는, 금세 오전만 등원하고 하원하는 아이가 되었다.
이사 후 옮긴 어린이집에서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점점 너의 공격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담임 선생님을 물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약과 반창고를 사 들고 달려간 어린이집에서는, 퇴소를 바라는 원장님의 말을 듣고 씁쓸하게 웃으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한참을 울었다.
‘장애 통합 어린이집.’
그때 내가 처음으로 찾게 된 기관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우리 아이가 정말 자폐구나 하고 완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 잘못인가?
임신했을 때 거의 만삭까지 일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요즘은 다 그렇게 일하는데,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그냥 느린 게 아니었어.
이제는 받아들여야 해. 이건 그냥……
그때부터 대학병원의 유명한 교수 진료를 예약하고, 특수 초등학교 가는 법과 특수 유치원을 알아봤다. 발 빠르게 장애 통합 어린이집에도 등록해, 오전에만 직접 등원시켰다.
처음 가 본 장애 통합 어린이집은, 우리 아이보다 똑똑한 아이들로 가득해 보였다.
장애 어린이집인데도, 우리 아이가 거기서도 내쫓길 것 같은 불안감이 온몸을 덮쳤다.
그리고, 아이가 잠깐 등원해 있는 두 시간 반 동안 나는 미친 듯이 잠을 잤다.
그 시간만큼은 현실에서 도망쳐, 꿈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처럼 그렇게 깊이 잠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러 갈 때는 누구보다 밝게 웃었다.
주변 아이들 엄마들도 각자 자기 아이 키우느라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내 힘든 마음을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이건, 내겐 가장 큰 불효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엄마. 할머니 소리 듣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우리 아이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알 수 없는 외계어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