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저 네가 얌전한 아이인 줄 알았다.(하편)

그것이 자폐의 특징인 줄도 모르고.

by 윤슬

아이는 점점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말소리도 잃어갔다.


너에게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단 두 가지.

악에 받쳐 짜증 내며 우는 소리,

각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뿐이었다.


나는 점점 너에 대해 많이 받아들였으나,

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전히 다음 해 봄이면 말문이 트일 거라 믿었고,

추운 겨울, 산속 절에 올라가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셨다.


“엄마, 우리 애는 정상적인 아이들이랑은 달라.

장애 아이야. 느린 게 아니라, 장애야.”


그 말을 꺼내는 내 마음도 아팠지만,

그 말을 듣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또 있을까.


이만한 불효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랜 대기 끝에 만난 유명한 대학 교수님은

인지가 낮고 문제 행동이 심한 우리 아이에게는

ABA 수업을 추천해 주셨다.

우리 지역에서 ABA를 다루는

치료 센터는 몇 곳 되지 않았고,

결국 1년을 넘게 대기했다.


수업 방향 상담 때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아이가 아프면 아프다, 어디가 아프다,

싫으면 싫다,

엄마, 아빠 소리 듣는 게 제 평생의 소원이에요.”


다른 아이들은 자연스레 하는 것들이,

어느새 내겐 평생의 소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너에게는 언어적인 치료보다

공격성과 충동성, 문제 행동 교정이 시급했다.


말을 하지 못했기에, 조금만 짜증이 나도 주변

사물을 취어잡았고, 선생님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물려는 행동이 나왔기에, 그 문제 행동 교정만으로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비로소 복용하는 약의 증량과 문제 행동 교정을 통해

너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조절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말하기 연습을 시작했다.


바른 소리를 내기 위해 너의 코를 잡아주고,

너의 턱을 위로 눌러가며 모양을 잡아주고 함께 노력했다.

너는 짜증을 내고 울기도 했지만, 이윽고 퇴행 이후 처음으로 “음마”, “아빠바바” 같은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부르는 너의 이름을 듣고, 내 눈을 마주 보기 시작했다.

조금씩 느리지만 나아가는 너의 모습에 눈물지으며 웃었다.

나를 보며 “아빠”라고 부르는 네 모습에 웃었다.

나는 엄마인데, 아빠를 먼저 배운 너의 모습이 그저 귀여웠다.

이제는 나를 찾는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다시 힘을 냈다.


성장하고 있는 너의 모습에, 나도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아이 엄마들과의 교류도 많이 시작했고,

서로 정보를 나누며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몰랐던 정보도 많았고, 챙길 수 있는 혜택도 많았다.


그렇게 내 주변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엄마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힘듦을 알기에, 누구보다 솔직하게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고,

숨기고 참아온 버거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꿈꾸던 모습과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일반 학교에 다니고,

다양한 학원을 다니고,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간식을 챙겨주는 그런 평범한 일상은,


이제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내가 비록 불효녀일지라도, 우리 아이는 나에게 불효하기 위해 찾아온 아이가 아니다.

나에게 온전히 사랑받기 위해, 나를 선택해 준 아이임을.



그래서 오늘도 너를 온전히, 온 마음 다해 사랑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저 네가 얌전한 아이인 줄 알았다.(중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