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너
처음에는 그냥 느린 아기인 줄 알았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앉고, 조금 늦게 기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12개월이 지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서거나 걷지 못했다. 옹알이는 했지만, 의미 있는 단어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15개월. 아직 걷지 못하는 너를 보며 위기감을 느껴 처음으로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 원장님은 너의 감각이 다소 예민하고, 척추에 힘이 부족해 걷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물리치료와 특수체육을 병행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고, 나는 급한 마음에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너는 짜증을 내면서도 3개월이 지난 18개월 무렵, 마침내 두 발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때부터 옹알이는 점점 사라졌고,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예민하던 감각은 더욱더 예민해졌다. 소풍을 가서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면, 너는 한 발짝도 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까슬한 잔디가 손에 닿는 게 싫어 네모난 돗자리 안에서만 짜증을 내며 뒹굴었다.
그리고 36개월. 여전히 너는 말을 하지 못했고, 예약해둔 대학병원 진료차례가 되어 처음으로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일단 발달 지연이라는 소견을 내리며, 다섯 살까지 치료를 지속해 보자고 말했다.
“지금이 가장 골든타임입니다.”
그리고 5살. 너는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고, 예민함과 공격성은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다시 다가온 진료일, 이번에는 MRI와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날, 너를 만나고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울었다.
검사 후, 많이 울고, 아파하고,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온 우편물에는 생일 편지가 아닌, 너에게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해주는 결정서가 도착했다.
생일이라 들떴던 마음이 무너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다. 16번 염색체의 15번 위치에서 변이가 발견되었고, 해당 유전자의 변이로 인한 자폐 사례는 당시 22만 분의 1 확률로 보고된, 매우 희박한 코드였다.
아이의 장애가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부모의 유전자 검사도 권유받아 신랑과 나도 검사를 진행했고, 놀랍게도 그 22만 분의 1 확률의 유전자가 우리 둘에게 모두 있었다.
교수님은 말했다.
“부모님 두 분 다 정상 발달을 했기 때문에, 이 유전자 변이만으로 자폐를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한동안 유전자에 대해 끝없이 찾아봤다. 하지만 정보는 너무 적었고, 결국 지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2만 분의 1만큼 특별한 너를, 더 사랑하기로.
그런 너를 더 아껴주고, 더 노력하기로.
그렇게 다짐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너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