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보다가 문득 생각해보았다. 내가 마시는 이 커피 한 잔이 지구 저편에서 시작된 긴 여행의 끝자락이라는 것을. 원두가 자란 농장에서, 가공 공장을 거쳐, 포장지에 싸여 배에 실리고, 트럭에 옮겨져 내 손에 닿기까지. 그 긴 여정의 모든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탄소가 하늘로 스며들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물류업계에서 탄소배출량 측정 업무를 하며 지내온 몇 년간, 나는 이런 보이지 않는 탄소 이야기들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2025년 지금, 그 보이지 않았던 탄소들이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Scope3 탄소배출량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사실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지 않는 탄소까지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연결 고리 안에 살고 있고, 그 연결 고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흔적들이 결국 우리의 것이라는 걸.
Scope3 탄소배출량이란 기업이 직접 통제하지는 않지만, 그 기업의 활동과 연결된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의미한다. 물류 회사라면 협력업체가 운송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량이고, 제조업체라면 제품을 만들기 위해 구매하는 원재료의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량이다. 놀랍게도 이런 간접 배출량이 기업 전체 탄소발자국의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를 차지한다.
마치 빙산과 같다. 우리가 보는 것은 수면 위의 작은 부분일 뿐이고, 진짜 거대한 부분은 수면 아래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올해 들어서 이 분야에서 정말 흥미로운 변화들을 목격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다. 예전에는 대부분 추정에 의존했던 데이터들이 이제는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측정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힘이다. 위성에서 보내오는 데이터와 도로 위 센서들이 수집하는 정보, 그리고 각종 운송 관리 시스템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탄소배출량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얼마 전 한 대형 물류 회사의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자신들이 구축한 새로운 시스템에 대해 들려주었다. 모든 트럭, 모든 경로, 모든 화물에 대해 실시간으로 탄소배출량을 추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운송 계획을 세우는 시스템이었다. 그의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단순히 규제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공급망 전체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1차 협력업체까지는 그래도 파악이 가능하지만, 2차, 3차 협력업체까지 들어가면 미로 같은 복잡함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자신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부모까지는 알 수 있지만, 증조부모의 삶까지는 알기 어려운 것처럼.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변조가 불가능한 디지털 장부에 모든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기록하고, 이를 공급망의 모든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투명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규제 환경의 변화도 급격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상장기업들에게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를 의무화했고,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수입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추적해서 그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는 시스템이다. 한국도 K-택소노미와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통해 기업들의 책임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규제들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니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많다. 탄소배출량 관리를 통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며, 무엇보다 고객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 도입을 통해 운송비를 절감하면서 동시에 탄소배출량을 줄였다. 또 다른 회사는 AI 기반의 경로 최적화 시스템을 통해 연료비를 20퍼센트 절약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결국 경영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협력이다. Scope3 관리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공급망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들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큰 기업이 작은 협력업체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술을 공유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가 Scope3 관리를 통해 하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된 세상에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지구 저편의 농부와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의 모든 선택이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 말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통합 관리 플랫폼들이 계속 발전하고 있고,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API 기반의 데이터 연동 시스템은 서로 다른 시스템들을 하나로 연결해서 진짜 의미 있는 정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기술들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낀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탄소의 흔적을 추적하고, 그것을 줄여나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공급망 속에서도 투명성을 확보하고, 모든 참여자들이 공정하게 책임을 나누어 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데이터가 부족하고, 측정 방법이 복잡하며, 협력업체들과의 조율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완벽한 시작은 없다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가장 큰 배출원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그 부분부터 차근차근 개선해나가면 된다. 물류 기업이라면 운송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량이 가장 클 테니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제조업체라면 원재료 구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협력업체들과의 소통을 늘려나가면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이해하게 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런 과정을 수없이 봐왔다. 처음에는 대립하던 기업들이 어느새 파트너가 되어 함께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2025년 현재, Scope3 탄소배출량 관리는 더이상 선택이 아니다.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부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기회로 말이다.
내가 속한 글렉에서도 이런 변화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복잡한 공급망의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고객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때로는 어려운 과제들과 마주하지만, 그럴 때마다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Scope3 관리는 계속 발전하고 정교해질 것이다.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측정 방법은 더욱 정확해지며, 협력 방식은 더욱 효과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이 작은 잔 속에 담긴 거대한 세상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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