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부산 구간인데 A사는 100킬로그램, B사는 150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고요?"
2016년 어느 봄날, 한 고객사 미팅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각 기업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마치 한 사람은 미터로, 다른 사람은 야드로 재면서 서로 길이를 비교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물류 탄소 측정의 표준화라는 긴 여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글렉에서 일하면서 만난 수많은 기업들의 고민과,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전 세계의 노력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펼쳐진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2012년, 유럽에서 첫 시도가 있었다.
유럽표준화위원회가 EN16258을 발표했다. 유럽 최초의 운송 부문 탄소 계산 표준이었다. Well-to-Wheel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연료가 생산되는 순간부터 차량이 운행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포함시켰다. 화물과 여객 운송을 모두 다루며,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유럽 중심적인 접근이라 다른 대륙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웠고, 복합운송을 계산하는 방법론이 부족했으며, 물류 허브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은 아예 제외되어 있었다.
첫 걸음은 늘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 다음 걸음을 만든다.
2016년, 진짜 게임체인저가 등장했다.
스마트화물센터가 주도한 GLEC Framework. Global Logistics Emissions Council의 약자인 이 프레임워크는 물류 업계에 혁명을 가져왔다.
전 세계 150개 이상의 기업과 조직이 머리를 맞댔다. 도로, 철도, 해상, 항공 모든 운송 수단을 하나의 틀 안에 담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실용적이었다. 3단계 데이터 정확도 시스템을 도입해, 대기업은 실제 측정 데이터를 사용하고, 중견기업은 모델링 기반 계산을, 중소기업은 산업 평균값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표준. 그것이 GLEC의 철학이었다.
운송뿐만 아니라 물류 허브도 포함시켰다. 냉장과 냉동 운송에 대한 특별 지침을 만들었고, 빈 트럭이 돌아오는 공차 운행까지 고려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첫 번째 표준이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ISO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GLEC의 성공을 본 국제표준화기구는 공식 표준 개발에 착수했다. 30개국 이상의 전문가들이 3년 동안 협력했다. GLEC Framework 버전 2를 기반으로 확장하되, 산업계와 학계, 정부 기관이 모두 참여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표준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와 공식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사용할 언어를 만드는 일이라고.
2023년 10월, GLEC Framework 버전 3가 세상에 나왔다.
ISO 14083을 통합한 이 버전은 더욱 정교해졌다. 전기트럭의 배출계수를 국가별, 차량 크기별로 세분화했다. LNG와 수소 같은 대체연료 계산 방법을 추가했고, 중국 특화 배출계수까지 도입했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API 연동이 가능한 표준 데이터 포맷을 만들었다. 실시간 배출량 추적을 지원하고, 블록체인 기반 검증 시스템과도 호환되게 했다.
해운 업계의 Clean Cargo를 통합하고, 콜드체인 특별 지침을 강화했으며, 라스트마일 배송의 세부 기준까지 만들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 표준도 함께 진화했다.
표준화가 가져온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이제 기업들은 정확한 비교가 가능해졌다. 사과와 사과를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운송업체를 선정할 때 탄소 효율성을 비교할 수 있고, 벤치마킹을 통해 개선 목표를 세울 수 있으며, 투명한 성과 보고가 가능해졌다.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을 준수하고, CDP 보고를 간소화하며, 탄소세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GLEC를 적용한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측정 비용이 40퍼센트 절감되고, 데이터 수집 시간이 60퍼센트 단축되며, 감사 비용이 30퍼센트 감소했다. 표준화의 힘이었다.
한국 기업들이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2025년부터 EU로 수출할 때 탄소 데이터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공급망 전체의 탄소 관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과도 맞물려 있다.
어느 중견 물류기업은 GLEC 도입 1년 만에 탄소 배출량을 15퍼센트 줄이고, 글로벌 고객사 3개를 추가로 확보했으며, ESG 평가 등급이 상향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Scope3 공급망 공시 의무화를 공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25년 현재, GLEC Framework는 단순한 측정 도구를 넘어 물류 산업의 공용어가 되었다.
마치 모든 항공기가 영어로 교신하듯, 모든 물류 기업이 GLEC으로 탄소를 측정하고 보고하는 시대. 7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변화다.
때로는 느리게 느껴졌던 표준화의 여정. 하지만 돌아보니 우리는 꽤 먼 길을 왔다. 이제는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같은 잣대로 측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이 모든 노력의 결정체, ISO 14083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탄소배출량 및 안전 관리 상담은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https://glec.io/?utm_source=brunchstory&utm_medium=blog&utm_campaign=brunchstory_event
#GLEC프레임워크 #EN16258 #물류표준화 #탄소측정 #스마트화물센터 #ISO14083 #지속가능물류 #탄소회계 #ESG #글로벌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