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와 운송산업에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들고 운반하는 모든 것들에는 보이지 않는 발자국이 있다는 것. 그 발자국의 이름은 바로 탄소다.
2026년 1월, 전 세계 무역의 지형이 바뀐다.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 이른바 CBAM을 본격 시행하기 때문이다. 제품의 품질만으로 국경을 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 제품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내뿜었는지, 그것이 새로운 여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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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AM이라는 이름은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의 약자다. 우리말로 풀면 탄소국경조정제도, 조금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탄소국경세다.
EU가 세계 최초로 이 제도를 도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EU로 들어올 때, 그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만큼 비용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마치 입장료처럼.
2019년 12월, EU는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며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세웠다.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겠다는 Fit for 55 패키지도 함께였다. CBAM은 그 패키지의 핵심 조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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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토록 강력한 제도가 필요했을까. 답은 탄소누출이라는 단어에 있다.
EU처럼 환경 규제가 강한 곳의 기업들이 있다. 그들은 탄소 비용을 내며 제품을 만든다. 그런데 규제가 약한 나라로 공장을 옮기면 어떻게 될까. 탄소 비용 없이 싸게 만든 제품이 다시 EU로 들어온다. 이것이 탄소누출이다. 규제를 피해 탄소가 새어나가는 것.
EU 역내 기업들은 탄소배출권거래제에 따라 탄소 비용을 부담한다. 그런데 역외에서 저렴하게 만들어진 제품이 밀려들어오면, 공정한 경쟁은 요원해진다. CBAM은 이 불균형에 저울추를 올려놓으려는 시도다. 어디서 만들었든, 탄소에는 같은 가격을 매기겠다는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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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AM은 두 개의 시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전환기간이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일종의 리허설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EU로 제품을 수입하는 이들은 분기마다 내재 탄소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아직 인증서를 살 필요는 없다. 다만 보고를 소홀히 하면 보고되지 않은 탄소 1톤당 10유로에서 50유로의 과태료가 기다린다. 2026년 1월 31일, 마지막 9차 보고서를 제출하면 이 리허설이 끝난다.
두 번째는 확정기간이다. 2026년 1월부터 진짜 비용이 발생한다. 수입업자는 매년 9월 30일까지 전년도에 수입한 제품의 양과 그 안에 담긴 탄소배출량을 신고하고, 그만큼의 CBAM 인증서를 사야 한다. 인증서 가격은 EU 탄소배출권의 주간 평균가와 연동된다. 인증서를 내지 않으면 미납분 1장당 100유로의 벌금, 게다가 부족한 인증서도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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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CBAM의 그물에 걸리는 품목은 여섯 가지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그리고 수소.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들여다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EU 수출액은 총 681억 달러였다. 이 중 CBAM 적용 품목은 51억 달러, 전체의 약 7.5%다. 그리 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철강이 CBAM 대상 품목의 89.3%, 금액으로는 45억 달러를 차지한다. 알루미늄도 10.6%에 해당하는 5.4억 달러다. 철강과 알루미늄을 다루는 기업이라면, 이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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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7일, EU 이사회가 CBAM 개정안을 최종 승인했다. 변화의 핵심은 이렇다.
소규모 수입업체의 숨통이 트였다. 연간 수입물품 중량이 50톤 이하라면 CBAM 적용에서 제외된다. 이 변경으로 기존 대비 약 90%의 수입업체가 의무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증서 구매 시작 시점도 2026년 1월에서 2027년 2월 1일로 미뤄졌다. 인증서 제출 기한은 5월 31일에서 9월 30일로, 분기별 인증서 보유 비율은 80%에서 50%로 내려갔다. 인증서 재매각 제한도 사라져 기업들이 조금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규제가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탄소를 관리하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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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AM은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다. 새로운 무역의 문법이다.
탄소는 이제 비용 항목을 넘어섰다. 그것은 신뢰의 언어가 되었다. 내가 만든 제품이 얼마나 깨끗한지, 그것을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기업만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을 수 있다.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EU가 요구하는 양식에 맞게 데이터를 표준화해야 한다.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을 추적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고 공정을 혁신해야 한다.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내일의 문은 닫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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