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에도 탄소 여권이 필요한 시대, CBAM의 확대

by GLEC글렉

2025년, CBAM이 크게 달라졌다. EU는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규제의 그물은 더 넓게 펼쳤다. 완화와 확대라는 두 개의 얼굴.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다.


세탁기, 자동차 부품까지 탄소국경세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생각했다. 철강이나 시멘트 같은 원재료에만 적용되던 규제가, 이제 우리 일상의 물건들에까지 손을 뻗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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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6일, EU 집행위원회가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를 한꺼번에 손질하는 포괄적인 개정안이다.


이 패키지는 CBAM만 건드린 것이 아니다.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인 CSRD,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인 CSDDD, EU 택소노미까지. 주요 지속가능성 규제의 적용 범위와 요건이 함께 조정되었다.


핵심 목표는 단순하다. 기업 부담을 줄이되, 규제의 실효성은 유지하겠다는 것. EU는 이 균형점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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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7일, EU 이사회가 CBAM 개정안을 최종 승인했다. 2019년 유럽 그린딜 발표 이후 6년간의 입법 여정이 마침내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면제 기준이 크게 바뀌었다. 기존에는 건별 금액으로 제한을 두었는데, 이제는 연간 누적 중량을 기준으로 삼는다. 연간 수입물품 중량이 50톤 이하인 소규모 수입업체는 CBAM 의무에서 벗어난다. 이 변화로 기존의 약 90%에 달하는 수입업체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다만 전체 탄소배출량의 99% 이상은 여전히 규제 안에 남는다. 작은 물고기는 놓아주되, 큰 물고기는 확실히 잡겠다는 의미다.


인증서 관련 요건도 완화되었다. 인증서 구매 시작 시점이 2026년 1월에서 2027년 2월로 미뤄졌다. 인증서 제출 기한은 5월 31일에서 9월 30일로 4개월 늘어났다. 분기별 보유 비율도 80%에서 50%로 내려갔다.


보고 절차도 간소해졌다. 수입업체가 탄소배출량을 보고할 때, 직접 계산한 실제 배출량을 쓸 수도 있고, EU 집행위원회가 제공하는 기본값을 선택할 수도 있다. 기본값을 활용하면 복잡한 검증 절차도 건너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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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새로운 창구가 열린다. EU 통합 디지털 포털이다.


앞으로 모든 CBAM 관련 절차가 이 포털 하나로 통합된다. 제품별 배출 데이터 보고, 인증서 구매와 제출, 검증 결과 업로드까지. 흩어져 있던 업무들이 한 곳에 모인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효율화가 아니다. 탄소 정보의 실시간 검증, 데이터 투명성 강화. 제도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 탄소 데이터가 곧 통화가 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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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적용 품목의 확대다.

현재 CBAM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에 적용된다. 모두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초 소재들이다.


그러나 EU는 2025년 말까지 자동차 부품 등 철강과 알루미늄의 다운스트림 제품으로 적용 대상을 넓힐 예정이다. 원재료에서 가공품으로, 규제의 손길이 뻗어간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외신에 따르면, EU는 완제품에도 CBAM을 적용하는 추가 수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세탁기, 가스레인지, 자동차 문, 정원용 공구, 주방용 오븐.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들이다.


왜 여기까지 확대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한국산 철강을 튀르키예로 보내 세탁기로 만든 뒤, 그 세탁기를 EU에 수출하면 현재는 CBAM을 피할 수 있다. EU는 이런 편법을 원천 차단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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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6개 품목은 시작에 불과하다.

EU는 유기화학물질, 플라스틱, 화학제품, 자동차 등의 추가를 검토하고 있다. 2030년까지 적용 대상이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은 장기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CBAM의 경과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2023년 5월에 입법안이 최종 승인되어 발효되었고, 같은 해 10월 전환기간이 시작되었다. 2025년 2월 옴니버스 패키지가 발표되며 대폭 개정안이 제안되었고, 5월에 개정안이 유럽의회를 통과해 EU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10월에는 EU 통합 디지털 포털이 가동되고, 12월에 전환기간이 종료된다. 2026년 1월 CBAM이 본격 시행되며, 2027년 2월부터 인증서 구매 의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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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패키지로 일부 절차는 간소해졌다. 그러나 데이터의 정합성과 검증의 신뢰성에 대한 요구는 오히려 강해졌다.


대기업은 공정 혁신과 공급망 데이터 관리로 대응해야 한다. 이미 협력사 ESG 플랫폼을 통해 배출 데이터를 수집하고, 데이터 품질을 조달 평가에 반영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배출 데이터의 투명성 확보가 먼저다. 전력과 연료 사용량을 계량하고, 배출계수를 적용하고, 공정별로 산정하는 기초 작업을 표준화해야 한다. 산업별 공동 플랫폼을 활용해 EU 보고서 양식으로 변환하고 제출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CBAM은 규제가 아니다. 산업혁신의 새로운 언어다.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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