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밭

폭싹, 속았수다'를 뭐 하러 봐

by glee

넷플릭스에서 제주를 배경으로 한 '폭싹, 속았수다'가 인기몰이 중이었던 때다. 친정엄마에게 권했더니 "그걸 뭐 하러 봐~ "한다. 뒷말로 붙였던 나의 추천사는 "드라마에 보고 싶은 할머니도 있고, 엄마도 있고, 그랬으면 좋았을 나도 있어서"였다.


주인공 애순의 하굣길은 노란 유채꽃밭, 들, 바다 온통 살아있는 색이다. 자연보다 자동차가 더 많이 지나다녔던 내 유년시절은 시커먼 아스팔트 길이었다. 무채색 동네 골목에 연보라색 해태제과 트럭이 뜨면, 친오빠 손을 잡고 슈퍼로 향했다. 주인아저씨 아주머니 두 분만의 규칙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는 또랑 한 목소리로 “이거 어디에 있어요?” 물어보는 게 새벽배송보다 빠른 주문 프롬프트(명령어)다.

선물용 과자나 고가의 제품은 어른들 손닫기 좋은 윗 진열대에, 용돈으로 군것질하러 오는 아이들 눈높이에는 저렴한 불량식품이나 봉지과자를 진열해 두고 팔았다. 빼앗기고 나면 분하다고 우는 애순이랑은 다르게 내 눈높이 너머의 것을 가져보겠다는 생각은 못하는 어린이였다.


엄마 품, 엄마 밭에는 뭐가 있길래.

제줏말로 속았수다가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란다. 영 다른 뜻이라 제목에 속은 기분도 든다.

어쨌거나, 아빠에게 여러모로 속아 결혼한 엄마는 이 제목이 불러온 오해 때문에 안 보겠다는지도 모르겠다.

소리없이 엄마가 열몇 살 된 내 등에 기대었을땐, 쏟아진 표정을 읽어낸다고 숨을 더 작게 더 작게 쉬었다. 그 기억으로 엄마의 결혼생활이 녹록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초등생 과학상상대회때 그렸던 첨단 도시가 눈앞에 가까워졌지만, 등 뒤에 눈이 달리는 기술은 왜 아직까지 소식이 없을까..)


젊었던 엄마 모습은 서랍장 속 무지갯빛 잃은 주민등록증 사진에만 남았다. 얼마전 엄마는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딱히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했다. 시집살이시키는 시부모도 안 계셨고, 자식들은 한 번 아픈 곳 없이 성인 되자마자 출가외인이 되었다고. 그래서 나쁘지 않았다고 이야길 한다. 매일은 눈치 못 챘는데, 지나 보니 그런 거 같다고.


"엄마를 해보니까, 아들도 아들이지만 하나만 낳아야 한다면 널 위해서 딸이었으면 좋겠어" 했다. 아들도 딸도 없어 잘 모르지만 자녀는 엄마 삶을 기억해 주는 기록자가 된다. 엄마가 자기감정에 빠져 앞의 것을 있는 대로 사랑하지 못할 동안, 또 예뻤을 시절부터 노인이 되어 갈 동안 엄마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나다. 마음이 쑥대밭 같아 보였던 엄마도 “좋다”말할 날이 온다. 끝내 맑은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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