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인형을 사는 꿈을 꾼 9월.
어느 밤에 곰돌이 인형을 사는 꿈을 꿨다. 해몽은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 이란다. 계획 한 지 두 달만에 아기가 생겼다. 꿈처럼 아가 태명은 곰돌이. 8주 지나서 부모님들께 알리는 게 좋겠다는 산부인과 선생님의 권유로 의도치 않게 양가 부모님들께 비밀이 생겼다. 제일 먼저 축하받고 싶었으나, 만일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며칠 뒤에야 임밍아웃 복권 이벤트와 함께 남편에게 초음파 사진을 주고선 눈물 한 방울을 귀하게 얻어낼 수 있었다. (펑펑 울 줄 알았는데, 눈물 양이 적어서 약간 실망했다. 연애 때 드라마 도깨비 마지막 회 보고 울던 33세 내 순수한 남편은 어디 가고 불혹을 갓 넘어간 남편이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텃밭농사에서 자식농사로(?)
텃밭농사를 시작할 때엔 아이를 고민할 때라 두 사람이 같이 해보는 경험, 주말 부부가 감내해야 하는 공동육아의 어려움을 맛보자는 생각이었다. 주말에 쉬고픈 마음을 떨쳐내고 과연 남편이 자발적으로 양육에 얼마나 참여해 줄지, 반대로 나는 귀찮아하는 남편에게 얼마나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인지 등의 테스트였다. (남편에게 귀찮아하는 피드백이 오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해 금방 포기해 왔다.)
문제는 남편의 태도나 육아환경보다는, 내 마음이었다. 7년을 미룬 끝에 계획한 아기가 생겼음에도 알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봄 아가
5월 21일 출산 예정일이라는 말에 봄처럼 예쁜 아이가 오는구나 싶어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여러 해 고심했던 시간이 아기에게 도움이 될만한 시간이었는지, (신혼부터 시작된 메니에르, 공황장애는 완전히 나아졌는지) 당장 내일부터 못하게 될 일 등 혼란스러운 맘이었다.
복잡한 마음에도 남편과 나는 병원에서 아가 심장소리를 듣기도 하고 어수룩한 우리를 아빠, 엄마라고 불러주셔서 설레었다. “이젠 좀 제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남편 말을 듣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내 눈으로 목격한 것처럼 느껴졌다. 초음파 영상에서 반짝거리던 아가 심장을 볼 때처럼.
주말이면 머리가 까치집이 된 채로 집안을 해 집고 다니는 남편을 보며, 금방이라도 남편 똑 닮은 아가가 옆에 뛰어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땅의 기운
땅에는 기운이 있단다. 비옥한 땅에 정성들여 씨앗을 심으면 열매가 그득 열린다는 말일 것이다. 애정을 담아 뿌리내릴 기반을 일구면 아기도 잘 클 것이라 여기며
"우리 셋 만의 텃밭을 만들어 가자"
"잘 키워내자"
"'잘'의 기준을 쪼개고 또 쪼개어 촘촘하고 유연하게, 건강한 감정으로 하루하루 채워주자" 다짐했다.
텃밭의 기운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 배가 불러오면 자주 못 오겠다 싶어 10월 한 차례 텃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발길 뜸하던 사이 가지 기둥은 누군가 노끈을 묶어 관심 주신 흔적도 있었다. 봄부터 여름, 노련한 어르신들이 요령을 보태주어 거름 주고 열매를 맛보았듯, 노끈의 흔적은 초보엄빠의 미숙함에 던져주실 부모님들 애정 어린 마음처럼 느껴졌다.
8주 차 진료가 끝나던 오후, 부모님들께 알려도 좋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안도하며 어른들께 전화를 드렸다. 집 오던 길에 본 가로수 풍경은 금빛 태를 둘러 따듯했고, 천천히 눈에 담아 오- 래 기억하고 싶었다. 가을에 태어나 '열매가 여물다'는 이름을 내게 주셨던 부모님. 나를 임신하고 만나기까지 어떤 마음이셨을까 헤아리다 보니 왠지 같은 가을을 지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