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 제주에서의 어느 날. 마음이 편안해서인지 깊은 잠에 들어 점심때가 지나서야 일어났다.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다, 오늘은 제주의 아름다운 일몰을 꼭 보자며 성산일출봉으로 달렸다. 하루 전, 일몰을 보기 위해 오름의 정상에 올랐지만 안개가 자욱했던 탓에 아쉽게도 일몰의 장관을 놓쳤던 터라 일몰을 보러 가는 마음이 더 들떠있었다. 행여나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놓치게 될까 어찌나 서둘렀는지. 정상에 다다를수록 많아지는 계단과 높아지는 경사에 힘이 들긴 했지만 걱정한 것처럼 오래 걸리지는 않았고 다행히 우리는 해가 내려오기 전 정상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어제는 오름에서 노을 지는 거 봤으니까, 오늘은 성산일출봉에서 더 이쁜 일몰을 보여주고 싶었어.
내일은 바다로 갈까?
일몰의 풍경을 좋아하는 나에게 매일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그의 따뜻한 마음 덕분인 지, 더 예뻐 보이는 제주의 하늘을 한참 동안 함께 내려다봤다. 어둠으로 떨어지기 전 가장 붉게 빛나는 동그란 해를 우리의 사이에 두고 지금의 행복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던 그때, 옆에 있던 커플들의 대화가 귀에 꽂혔고 그들에게 시선이 갔다. 셀카봉을 들고 풍경과 자신을 사진 속에 담는 씁쓸한 웃음의 여자와 그 옆에서 잔뜩 찡그린 표정과 구부정한 자세의 남자. 그들에게 시선이 갔던 것은 남자의 끊임없는 투덜거림 때문이었다.
‘일몰 잠깐 보겠다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내 무릎이 다 나갔다. 이게 무슨 고생이냐. 이런 남자 없다.’ 라며 마치 한라산 정상이라도 올라온 듯 끊임없이 힘든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인지 여자는 아무 말 않고 힘없이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밤고구마 백 개를 입 속에 넣은 듯 내 속이 답답해져 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내 옆에서 나를 꼭 안아주고 있는 그가 보였다. 꽉 막힌 마음이 편안해지고 웃음이 났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산을 뛰어올라가면서도 언제나 그랬듯이 환한 웃음으로 뒤에서 살펴주는 자상한 사람. 예쁜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네가 좋아하니까 나도 너무 좋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사람.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새삼 너무 감사했다. 사라져 가는 해와 핑크 빛으로 가득 물들어가는 제주의 하늘 그리고 나의 벤츠 씨. 내 손을 꼭 잡아주는 그를 보며 말했다.
너여서, 우리여서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