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중이 아닌 밀도

by 재이리


누군가와 만나 사랑을 할 때, 그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음에도 어딘가 텅 비어있는 것 마냥 외롭고 허전하다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경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에 비해 유독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었던 나는 항상 연인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한 구석이 존재했다. 그래서 연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있었음에도 공허하다 여겨지며 헤어지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그 외로움은 배가 되었다. 언제나 그랬었기에 나의 연애를 지켜본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는 늘 불안한 모습으로 비쳐줬다.


벤츠 씨는 이 전의 그들보다 훨씬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부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마음속의 허전함이 채워지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안의 텅 비어있던 공간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진 것은 내가 느끼기도 전에 가까운 지인들이 먼저 알아챘다. 그를 만나고부터는 그간의 불안하고 뾰족했던 모습들이 사라지고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이다.


'외로움'이라는 표현으로 나의 마음속 공터의 존재를 표현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외로움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단순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나와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수밖에. 고질적인 문제의 해결방법은 비중이 아닌 밀도였다. 얼마나 많이 함께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마음을 다해 함께 하느냐 또 그것을 얼마나 표현하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처음 벤츠 씨를 만났을 때는 알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듯 서로의 살이 닿고 눈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고 보여준 이를 만난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 답답한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하기보다 본인이 힘겹다 느껴지지만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맞춰주었고 결국 한계에 다다른 이들은 나를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너무 어리광을 부리는 철부지 여자아이로 낙인찍어버리기 일수였다. 속상했지만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일 테지.


드디어 함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인연을 만났지만, 30년 간 정답이라 믿고 있었던 것을 한 순간 고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서운함이 오해를 낳는 시행착오를 짧게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손을 놓지 않았고 나 스스로 느낄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나 역시 고집부리지 않았다. 그가 기다려주는 만큼 나 역시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길을 보려 노력했다. 굳이 말로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꾸준히 표현하고 행동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다. 일상의 작은 행동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벤츠 씨는 함께 있을 때 휴대폰과 컴퓨터, 텔레비전은 잠시 접어두고 항상 내 눈을 바라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의 작은 변화에 집중한다. 밥을 먹을 때는 서로에 대해, 각자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그의 밀도 있는 마음의 표현은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도 '이 사람이 나를 늘 지켜보고 있구나.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해주는구나.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구나.'라는 것이 그의 표정과 행동에서 고스란히 전달되어 떨어져 있을 때에도 끊임없이 나를 안정시켜준다.


이번 생엔 풀 수 없을 엄청난 난제 어쩌면 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저 깊이 있는 마음과 사랑에 대한 충분한 표현이 필요했을 뿐이다.




상대가 조금 늦더라도 손을 놓지 않고 기다려주려는 마음,

무조건적으로 나를 고집하지 않고 노력하려는 마음,

보이지 않는 그 마음들을 서로에게 표현하는 말과 표정 그리고 행동

이 모든 것이 서로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마법.


그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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