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자전거를 참 잘 탔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꿈이었을까. 지금은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중심을 잡는 일도, 사람들 사이를 쌩 지나가는 일도 어렵기만 하다. 고등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이브,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었다. 필기와 실기는 물론 도로주행도 완벽했기에 '나는 운전에 타고난 재능이 있나봐' 라며 엄청난 착각을 했더랬다. 막상 실전에 뛰어들고 보니 나는 거 리치, 방향치, 길치에 겁도 많아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할 모든 이유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운전대를 멀리하다 겨우 장롱면허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던 24살에 2번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겪었다. 한번은 변경된 차선을 보지 못하고 내 차를 부딪혀놓고는 3대 1이라는 쪽수로 나의 잘못인 냥 쏘아대던 가족에게 된통 당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고, 또 한 번은 대학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폭주하던 2대의 차량을 피하려다 버스를 박아버린 조금은 억울하지만 명백히 나의 잘못인 사고였다. 두 번의 사고로 인해 이제는 보조석에 앉아서도 잔뜩 긴장하는 운전 상 쫄보가 되었고 자전거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에 대한 조금의 관심도 없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욕심을 부려보았다. 부리지 말았어야 할 욕심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경주여행. 서울에서 경주까지 먼 길을 운전한 그를 쉬게 하겠다는 나름의 애교였다. 자신감 넘치게 선글라스를 끼고는 엄지를 세운 손가락으로 뒷 자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타!" 우리가 선택한 그날의 교통수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동 자전거와 골프차 그 사이 어디쯤에 속할법한 무언 가였다. 바퀴가 세 개 달리고 뒷 자석은 작은 체구의 여성 두 명이 탈 수 있을 만한 크기에 운전석과 뒷 자석을 모두 감싸는 천장이 달려있었다. 2인용 자전거를 생각하고 갔던 우리에게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세발자전거랄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것까지는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지난 교통사고의 공포가 다시금 되살아난 건지, 손에 땀이 나고 불안해져 왔다. 왕 쫄보의 면모가 슬금슬금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는 뒷자리에 앉아만 있었을 뿐 운전을 하는 것보다 더 바빴다. 뒤에서 잔뜩 겁먹은 나를 안심시키면서 방향을 일일이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의 역할은 물론, 운전 연수를 시켜주는 운전학원 선생님의 역할까지 도맡아주었다.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멋지게 드라이브 시켜 주리라!' 하며 운전대를 잡았던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흡사 경운기와 맞먹을 정도의 속도로 기어가던 우리의 자전거는 넓은 도로 옆 인도로 올라가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렸다. 좁은 사이 길에서 좌회전을 함과 동시에 턱이 있는 인도로 힘껏 올라가야 했다. 왕쫄보는 액셀을 밟다가 힘을 내지 못하는 세발자전거에 당황하여 발을 살짝 떼는 실수를 하게 되고 우리는 그대로 넓은 도로 한가운데를 향해 내달렸다. 내가 저지른 실수에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쩍 벌리고는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때 뒤에 앉아있던 그가 빠른 상황판단으로 굳어버린 나를 대신해 운전대로 손을 뻗어 재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당황함이 극에 달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괜찮아'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면서.
우리가 생사의 고비에 있던 그 순간,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나는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이따금씩 바라던 '사랑하는 사람과 한 날, 한 시에 죽기'를 몸소 체험할 뻔했다. 그가 불같이 화를 내어도 할 말이 없었다. 하마터면 그를 다치게 할 뻔했으니. 그런데 갓길로 자전거를 세우고 난 뒤 그는 평소의 차분한 말투로 도리어 '많이 놀랐지? 괜찮아. 그래도 잘했어'라는 말로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의 어른스러운 대처와 따뜻한 말에 내가 잘못해놓고는 핑 눈물이 돌았다. 울먹이며 미안해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만나는 2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유독 손이 많이 가는 허점투성이인 나로 인해 늘 바쁘게 움직이는 그에게 고맙다고 하면, 그는 작은 것에도 고맙다고 해주어서 그 마음에 고맙다고 답한다. 연애는 2년차가 가장 위기라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된다면 2년차의 위기쯤은 순탄하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