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IN SEOUL #신입사원
한 달 남짓의 여행을 끝내고 나니, 1년 동안의 휴학기간도 끝나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휴학생에서 복학생이 되었고 동시에 치열하고 치열하다는 대학교 4학년 취준생이 되었다. 뒤로 한 걸음도 물러설 곳이 없이 취업전선의 코 앞까지 다다르게 되니,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쫓아가기보다는 ‘일단 취업을 하고 보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누구보다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취업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일단 취직을 해야 했고 나에겐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고 기회를 찾아보는 건 어떠냐는 부모님이나 친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때가 아니었다. 졸업을 하기 전에 취업을 하는 것만이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인생 선배들의 조언처럼 조급해할 만큼 늦은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시작조차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니 몇 개월을 더 준비한다고 해서 절대 뒤처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왜인지 졸업을 할 때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는 것만 같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강의를 듣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도 모두 취업, 취업, 취업.. 취업 이야기뿐이라 새뇌를 당했던 걸까. 나는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4년 동안 학업에 충실했으며 (장학금을 타기 위해 노력한 것이지만 어찌 되었건) 전공과 관련된 많은 자격증을 획득한 상태였다. 누구보다 한 우물만 열심히 파왔다. 이제 와서 새로운 우물을 파기엔 늦었다는 생각이었다. 온종일 취업에 대한 걱정과 불안뿐이다 보니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도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보고 준비하는 것은 시간낭비를 하는 것이라 여겼다.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잖아?
투자한 만큼 성적도 좋았고 자격증도 공부한 만큼 어렵지 않게 땄으면 적성이 맞는 거지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길 찾지 말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보자!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더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게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이 길이 답이니까 다른데 눈 돌리지 말라고, 내가 나를 호되게 다그쳤다. 그리고 잡코리아를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날락하며 문을 두드릴 수 있는 회사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이 높아 보이지만 나도 수첩 한편에 적어둔 꿈의 회사와 부서가 있었다. CJ 프레시웨이 식품안전관리부서. 지원은 해봤다. 역시 떨어졌다. 다시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은 크지 않았다. 대학 생활 내내 열심히 노력했지만 어쨌거나 지방대학을 졸업했다는 스펙에 자신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이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작디작은 바늘구멍을 뚫어야 하고, 떨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나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려야 할 각오를 해야만 하는 치열한 현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세 가지가 모든 이유로, 굳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라면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괜찮다’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려버린 것 같다.
전공과목 중에서 가장 흥미가 있었던 위생관리 분야의 교육과 컨설팅 업무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찾았다. 목표로 하는 회사를 찾았으니 다음은 지원을 해야 했다. 대학을 다니며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들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나열함으로써 본래의 나를 더 돋보이게 포장했다. 이 서류를 보는 이의 기억에 남으려 부단히 애썼다. 그리고 면접에서 나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고 강력하게 합격을 밀어주신 본부장님 덕분에 (취업 후 듣게 된 후일담이었다) 선택받았다. 높지 않은 연봉과 작은 규모의 회사였기에 가족들의 뜨뜻 미지근한 축하를 받긴 했지만 어찌 되었던 내가 생각했던 바를 이룬 것이다. 그렇게 원하던 취업에 성공하였고 4학년 마지막 시험을 보기도 전에 나는 사회인 대열에 합류했다. '사원 이나윤' 이라는 이름이 적힌 진짜 내 첫 명함이 생겼다.
에 성공했다. 취업도 좋지만 그것보다 서울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좋았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언니의 집에 한 번씩 놀러 가면 복잡한 버스노선과 도로 한 중간에 있던 정류장에 어리둥절했고, 사람에 치여 가만히 있어도 절로 몸이 움직여지는 주말 명동의 거리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었다. 너무 복잡해서 정신이 없지만 그 복작복작한 거리와 높은 빌딩 사이에 있으면 들뜨는 기분이 좋았다. 계속 '우와, 우와' 하며 사투리를 연발하는 나의 입을 틀어막을 만큼 매우 부끄러워했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로 나에겐 신세계였는 걸. 숨길 수가 없을 만큼 마냥 좋았던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만으로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어른스럽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고 매일 9시 출근 6시 퇴근하며 내 힘으로 돈을 버는 것도 좋았다. 내 일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었다.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해야 할 일, 알아야 할 일들을 세세하게 적고 챙기면서 언제 어디서나 그랬듯 나는 열심히 했다. 직장생활이 처음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알아가고 익혀야 하는 나에게 사소한 것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상사들이 있었고 타지에서 혼자 올라와 잘하고 싶어서 아등바등하는 나를 이쁘게 봐주고 걱정해주는 직장동료들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 중에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는 같은 부서 선배들에게 마음이 담긴 손글씨의 축하 카드와 난생처음 브랜드 지갑도 선물로 받았다. 우리 회사가 좋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좋은 것 투성이인 내 첫 번째 직장생활에서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계속 좋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사회인의 고충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집과 회사의 거리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도 9시에 출근을 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들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이 찾아오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처음 취업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간과했던, 일에 대한 나의 흥미와 관심이었다. 일단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밀어붙여 결정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니 저 깊숙이 묻어두었던 고민이 스멀스멀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다. 업무가 몰아쳐서 정신없이 바쁠 때는 까맣게 잊고 일에 열중하다 또 혼자가 되는 밤이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보는 것이 맞는 걸까.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