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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Nov 03. 2019

1. 웹밖에 모르던 내가 책을 출판하게 됐다.

이제 우리에겐 100일의 시간이 남았다.

이 매거진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에는 평범한 독자에 지나지 않았던 저와 아내가 독립 출판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을 예정입니다. 처음이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연말에 크라우드 펀딩 시작을 목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회고의 성격을 띠겠지만, 어느 순간을 넘어가면 라이브로 현재 상황을 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전체 10~12부작 정도로 1주일에 한 편씩 올릴 예정인데, 책 출판도 브런치 연재도 완주해내길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  이제, 시작합니다.


우리가 책을 낸다니!


갑자기 출판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면, 올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내가 전북 콘텐츠코리아랩 창작랩에 합격하여, 어떤 활동을 하는지 옆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1인 기업이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일을 하는 사람을 몇몇 알고 있다. 그런데 아내가 속한 이 창작랩의 지원 사업 혜택이 재미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결과물의 소유권이나 지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과제를 내고 검사하는 것도 없다. 작가 본인이 하고 싶을 일을 하되, 지원 가능한 범위 안에서 금전적, 네트워크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진다. 나는 내 일을 하겠다고 퇴사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정작 외주 업무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에,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자기 일을 하는데도 지원을 해준다니…


아내가 창작랩의 첫 모임인 OT를 다녀와서 개인 지원 외에 콜라보 형태로 복수 지원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순간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예술 분야 재능은 없기에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좋은 기회이니 주변의 디자이너 지인들과 함께 지원해봐도 좋겠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난 후, 조만간 콜라보 프로젝트 지원이 마감이고 주변의 지인들은 시간이 나지 않아 지원을 안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미련이 남아 아내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개발자와의 협업도 가능하냐고. 외주 작업에 쫓겨 계속해서 시작을 미루고 있었지만, 한 가지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게 될 책은…

나는 퇴사 후에 영어 연설 영상을 활용한 영어 공부 앱을 출시했었다. 퇴사하고 3개월 정도 지났을까. 원래 하려고 했던 아이템에 한계를 느껴, 갑작스레 시작하게 된 아이템이었기에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었다. 실행력이 좋았다고 하자. 연설은 보통 많은 연습을 통해 표현의 완성도가 높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하지는 않다. 아니, 스피커에 따라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게 더 맞겠다. 말하다가 흥분을 하면 말의 속도가 너무 빨라지는 문제도 있다. 영어 숙련자가 자신을 꾸준히 외국어에 노출시키려는 목적이라면 문제없겠지만, 교육용 콘텐츠라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한국말로 하는 강연을 떠올려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사전달은 충분히 되지만, 문법을 따지면 틀린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책은 검증의 절차를 거친다. 몇 번의 퇴고와 교정을 통해 좀 더 표현이 가다듬어진다. 타겟층에 따라 어휘와 표현 수준이 달라지기에 교육용 콘텐츠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콘텐츠를 책으로 바꾸고 싶어 했지만, 항상 우선순위가 외주 작업에 밀려 업데이트를 하지 못 한 상태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저에게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콘텐츠를 책으로 바꾸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저작권이다. 퍼블릭 도메인 (Public Domain)이라고 하여, 저작권자가 사망한 지 50년 (지금은 70년으로 변경됨)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린 왕자, 노인과 바다, 위대한 개츠비 등이 모두 퍼블릭 도메인 작품이며, 서점에 가면 왜 같은 제목의 책이 나란히 놓여 있는지 설명이 된다.


외국어 학습용 콘텐츠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3가지가 필요하다. 국문 콘텐츠 (번역문), 영문 콘텐츠 (원문)가 필수이고, 리스닝용으로 원문 오디오까지 있으면 더욱 좋다. 이 중 영문 콘텐츠의 저작권이 소멸됐고, 오디오도 자원자가 녹음하여 올린 것만 모아놓은 사이트가 있다. 그래서 전자책 사이트에 가면 무료로 풀린 원문과 오디오에 표지만 넣어서 판매하는 사례도 많다. 대동강 물을 파는 봉이 김선달 같다고나 할까.


국문 텍스트만 추가해도 구색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퀄리티는 ...


봉이 김선달 콘텐츠는 제작비가 거의 안 들지만, 학습 효과가 미지수다. 학습용 콘텐츠에 번역문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번역을 해볼 생각도 해서 이솝 우화 원문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분량이 굉장히 짧기에 부담은 없었지만, “누가 이솝 우화로 공부를 할까”라는 불확실성에 섣불리 도전을 못 했었다. 모든 도전은 불확실하고 그럼에도 도전할 가치는 있지만, 미혼일 때와 기혼일 때는 달랐다. “우리 나중에 이런 거 해봐도 재밌겠다” 정도로 이야기되고 끝날뿐, 현실은 외주 마감을 쳐내느라 바빴다. 



갑자기 찾아온 기회


그런데 이번에 기회가 생겼다. 콜라보 프로젝트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일부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내는 출판 일러스트 분야로 지원을 했었기에, 앱과 책을 함께 내기로 했다. 전문 번역가를 통해 번역에 힘을 싣고, 자원자가 아닌 성우 녹음을 통해 생각했던 것보다 퀄리티를 더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일러스트를 넣어 소장 가치를 높인 책으로 읽을 수도 있고, 앱으로 편리하게 학습도 할 수 있다면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묻고 더블로 가!


지원과 발표까지 굉장히 빠른 일정으로 마무리되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전주에서의 미팅 일정이 잡혔다. 미팅을 앞두고 컨셉, 콘텐츠 기획부터 판형, 종이 종류, 인쇄방식, 감리, 굿즈 등 낯선 단어들이 가득한 일정표를 작성했다. 100일 정도 되는 기간 안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을 보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낸 경험이 전혀 없었고, 아내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작은 규모로 책을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시중에 유통할 목적으로 내는 책은 둘 다 처음이었다.


2019년 9월 10일. 아직 현실보다는 이상이 가득 담긴 일정표와 기획서를 들고 전주로 향했다.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외주가 아닌 우리의 일은 오랜만이다. 그래서 꽤나 긴장하고 설렜던 것 같다. 전주에서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니, 일정표 안에 적힌 수많은 과제 하나하나가 더 크게 보였다.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그저 웹 페이지와 앱 화면 밖에 몰랐던 내가 책을 만들어야 한다. 크라우드 펀딩 시작까지 약 100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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