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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Nov 02. 2019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의 허상

여든여덟 번째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를 보고


영화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본 영화, 아직 보진 않았지만 들어본 적이 있는 영화, 그리고 이런 영화가 있었는지 알지 못해 봐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영화.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스토리는 3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영화였다. 글림공작소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시사회에 초대받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이 영화도 그 기회 덕분에 알게 된 영화였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살짝 검색을 해보니, 그 면면이 화려하다.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로 불리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 거장 감독의 초기작이자 대표작, 그리고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주연작이기도 하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에드워드 양 감독은 대만 영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이라고 한다. 


영화 촬영이나 연출에 조예가 깊지 않기에, 뉴웨이브 대만 영화라고 해서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는 잘 모른다. 그저 요즘 영화에 비해 굉장히 정적이고, 롱테이크가 많이 쓰인다고 느꼈고, 영화의 결말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도 또렷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당시 영화의 특징을 알아보니,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터치로 그려낸 보통 민중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모습이 1980년대 대만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다고 이해해도 무리는 없겠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이 점이었다. 이 영화가 무려 34년이나 된 영화라는 점, 그럼에도 영화 속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세대도 더 지난 기성세대들의 이야기, 더군다나 우리나라도 아닌 옆 나라의 이야기인데, 지금의 우리가 보아도 낯설지가 않다. 그저 스마트폰만 하나 없을 뿐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일장 연설은 누가 말하든 내용이 비슷하다. 당시의 ‘나’는 지금의 ‘너네들’과는 다르다는 것. 나 때에 비하면 너네들은 편하게 살고, 고민의 깊이가 다르며, 너네들처럼 철없이 살지는 않았다는 것 등.


그런데 똑같다. ‘나 때’의 나와 ‘지금’의 너네의 모습이 똑같다. 이 나라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기회를 찾고 싶어 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어렸을 때 좋아했던 야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밤낮으로 택시 운전을 해야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고, 인수 합병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다. 술자리에서 자존심 긁는 한 마디에 주먹이 먼저 나가기 일쑤고, 밤거리를 오토바이로 질주한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에서 독립하고, 그 집은 친구들의 아지트가 된다. 연애 중임에도 불구하고 썸남썸녀와의 관계도 남아있다. 도대체 지금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이 영화는 기성세대의 일기장 같은 영화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당시의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터치했다면, 이 영화는 그 당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저 우리가 30년이나 지난 시점에 보기 때문에 응답하라 시리즈와 시대적 배경이 같을 뿐이다. 30년도 더 지난 날 것의 영화를 보며, 예나 지금이나 대만의 그들이나 지금의 나나 고민 많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안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의 “다 잘될 거야” 같은 말보다는, 같이 애쓰는 사람의 한숨 섞인 토로가 더 위로가 되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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