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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May 17. 2019

미소와 친구들, 누가 더 행복할까

쉰 세번째 영화, 소공녀를 보고

이 영화를 보기 한 10시간 정도 전에, 나와 아내는 카페에 있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쓰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행동에는 참 소극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페이스북에 실명으로 내가 쓴 글을 공유하는 것이 영 겸연쩍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회수 좀 늘려보려고 내가 아등바등하는 것처럼 보이기가 싫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아등바등하다고 느끼니까 그런 생각이 드나 보다


뜨끔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보일 것이라고 내 멋대로 판단을 했던 모양이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가사 도우미다. 일당에서 월세, 약값, 식비 그리고 위스키 한 잔과 담배 살 돈을 빼면 적자다. 월세도 담뱃값도 껑충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는 포기할 수 없기에, 집을 버리고 떠난다. 이 영화는 잘 곳조차 없는 미소가 빛났던 대학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에게 하루하루 신세를 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가여웠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버티느라 제대로 누울 공간도 없이 지내고, 남자 친구와는 그 흔한 맛집 데이트 한 번 못 해보고 있다. 반면에, 미소가 철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술 한잔과 담배가 뭐라고 가장 기본인 집을 포기하고 이쪽저쪽을 전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 친구는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꿈도 포기하고 생명수당 받으며 일하려고 떠나는데, 미소는 끝까지 술과 담배를 포기하지 않는다. 


대학시절로부터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 친구들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다섯 명의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는데, 모두 대학생 때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하나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인데, 그 모습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약간 표현 하나하나가 과장됐을지언정, 나나 주변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아, 불쌍하다”라고 말했고, 아내는 “미소만 안 변했네”라고 말했다. 카페에서의 대화처럼, 나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꽤나 중요시하는 것 같다. 미소는 사는 모습이 초라해 보일지언정, 위스키 한 잔과 담배 덕분에 누구보다 마음 편히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정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나와 아내의 첫마디가 갈리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카페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날 이 영화를 보게 되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미소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독립 영화들은 필요 이상으로 정적인 테이크를 많이 가져가는 경향이 많았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중간중간 유머도 있고 인지도 있는 배우들도 많이 나와서 독립 영화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족구왕을 재미있게 봤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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