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택은 이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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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분야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상황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알맞은 툴이 필요했고 결국 TeamGantt + Google Spreadsheet로 정착했다. 이제 진짜 일을 해야 한다.
만들고자 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명확했다. 여려 단편 소설을 묶은 책 한 권과 소설을 원문으로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문과 번역문, 그리고 음성까지 한데 묶은 앱이 나와야 한다. 앱은 기능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포맷이 정해져 있고, 현재 서비스하고 있는 1분일본어 앱과 방향성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고민할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앱의 사용자 편의성 측면에서는 고려할 것이 끝도 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했다. 정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은 책이었다. 더군다나 책은 한 번 내면 수정이 되지 않으니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현재까지 정해진 것은 ‘①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린 영어로 된 ② 단편 소설을 묶은 된 국문/영문 수록 단편집’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1. 퍼블릭 도메인
인세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별도의 계약 절차가 필요 없다는 매우 중요한(!) 이유로 선택했다. 즉, 지극히 제작자 중심의 마인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꼭 제작자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찾아보면 퍼블릭 도메인 작품 중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 많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슬리피 할로우 같은 영화나 미녀와 야수, 겨울 왕국, 라푼젤 등 다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모두 퍼블릭 도메인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영어 공부를 할 셈으로 원서 읽기에 도전한다면, 생소한 작품보다는 익숙한 작품, 혹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 손이 갈 수 있으므로 퍼블릭 도메인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봤다.
2. 단편 소설
우리말로 된 장편 소설 한 권도 끝까지 읽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원서로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 경영서적을 제외한 장편 소설은 3년 전에 읽은 기욤 뮈소 책이 마지막이다 :) 나뿐만이 아닐 게다. 2012년에 나온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얼마나 오랜 기간 베스트 5안에 있었는가를 보면, 소설은 빠르게 소비되는 분야가 아니다. 무엇보다 작은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끝맺음이 확실한 단편 소설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단편 소설도 분량이 천지 차이였다. 1,2페이지에 불과한 단편도 있고, 100페이지에 육박하는 단편도 있다. ‘적당하다’는 것이 참 어렵지만, 그 ‘적당한’ 수준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위 2가지만 정해졌을 뿐, 나머지는 전부 다 정해야만 했다. 위에서 살짝 언급한 단편의 분량이나 단편의 개수, 작품의 테마, 책의 제목, 일러스트 컨셉 등. 이는 단순히 책의 구성에만 해당하는 부분이고 일러스트의 개수나 크기 등에 따라 어울리는 종이 질이나 인쇄 방식도 고려해야 하고, 이런 의사 결정은 바로 제작비로 연결되기 때문에 책의 가격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하나하나 부러뜨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참 좋으련만, 복합적으로 연계가 되어 있으니 결정이 쉽지 않았고, 이 부분에서 꽤나 오래 지체됐었다.
작품 선정이 늦어져 다른 것부터 먼저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이후 모든 의사 결정이 결국은 '어떤 작품을 실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경험이 없으니 한 번에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결정을 딱 딱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고, 수록 작품들의 공통적인 테마, 즉 컨셉부터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야 수록 작품들을 정할 수 있고,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을 결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컨셉 잡기 무한 루프에 빠져버렸는데, 아래에 소개한 컨셉은 당시 고민했던 컨셉 중 일부다.
대중성으로 승부하는 컨셉이자, 그동안 글림공작소 이름으로 영화 글과 그림을 쭉 올려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기획 의도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이야기, 사실은 이런 내용입니다. 서프라이즈!!” 같은 것이었는데, 원작이 너무 재미없어서 내가 놀랐다. 이 자리를 빌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각색한 분에게 박수를... 다른 작품들은 단편 치고는 너무 길어서 1, 2개 정도 넣으면 책이 꽉 차고도 넘칠 정도라서, 이 기획은 이렇게 버려졌다.
크라우드 펀딩 예상 시기는 연말이니, 책의 배송은 1월 중에 마무리될 것이다. 새해부터 꼼꼼하게 적은 목표 리스트에서 점차 관심이 멀어질 그 무렵,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해 줄 그런 작품들을 찾고 싶었다. 영화로 예를 들자면, 행복을 찾아서, 빌리 엘리어트, 키즈 리턴, 어바웃 타임 등. 그러나 단편은 워낙 짧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마음에 드는 단편이 나올 때까지 무턱대고 다 읽어보기엔 시간적인 제약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포기한 컨셉이지만, 선물용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컨셉이다.
버려진 컨셉 1과 대치되는 기획이다. 대중성을 포기하고 참신함에 승부하는 컨셉. 이상적인 조합은 "유명 작가의 단편 + 뛰어난 작품성 +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음"이지만, 정말 유명한 작가의 경우 모든 단편을 수록한 완역본이 나와서 해당 사항이 없다 :) 국내에 출간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유명하진 않아도, 평이 좋은 작품들을 많이 검색해봤지만, 이렇다 할 한 방이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어 공부를 할 셈으로 원서 읽기에 도전한다면, 익숙한 작품을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컨셉도 버려지게 됐다.
단편은 분량 때문인지 기승전결이 잘 갖추어진 작품은 찾기 힘들고, 대부분 '결'이 허무하게 끝난다. 그래서 짧은 스토리에서 임팩트를 남기려면 자극적인 전개로 흘러갔고, 그 덕분에 공포 장르나 잔인한 스토리의 단편이 잘 알려진 편이다. 마침 아내가 그로테스크 일러스트 분야로 졸업 논문을 썼기 때문에 욕심을 내보고 싶었지만, 공포 단편집이 기존에 많이 나와있기도 하고 나처럼 공포는 일단 제치고 안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컨셉도 포기했다. 학습 기능은 완전히 배제하고, 일러스트의 비중을 높인 공포 단편집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공포는 일단 제치는 사람이 있듯이, 반대로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모두가 관심을 보일만한 장르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극단적인 사례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분야가 사랑싸움이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보다는 사랑이 틀어지고 깨지는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 일종의 19세기판 '사랑과 전쟁'이라고 해야 할까. 국적도, 신분도, 파국을 맞이한 계기도 모두 다른 다양한 사연을 묶는다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판타지나 코믹은 코드라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해서 누군가에겐 인생작이 누군가에겐 전혀 관심 밖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쪽 영역은 누구에게도 인생작이 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하나하나가 흥미를 끄는 이야기는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학습서로써도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기 때문에 잘 읽히고, 상대적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 나온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 판타지 세계의 단어들은 평생 살면서 쓸 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책의 컨셉을 정하고, 우리는 도서관에 가서 단편집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작가의 대표작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단편들이 있는 것도 몰랐고 예상보다 재미있는 단편들이 많아서 놀랐다. 며칠 동안 단편들을 읽다 보니, 컨셉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러 단편들을 뽑은 뒤 만들어질 책 분량에 맞춰 6개의 단편을 추렸다. 담을 내용은 어느 정도 정해졌는데,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할지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책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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