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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림공작소 Nov 24. 2019

4. 천 번을 결정해야 책이 만들어진다

책 한 권 만드는데 컴퓨터 조립할 때보다 고를 항목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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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담을 내용은 어느 정도 정해졌는데,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할지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책을 제작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이렇게나 다양한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책의 내용을 결정하면 90%는 끝난 줄 알았다. 국문 텍스트는 번역가의 손을 거치면 완성이 될 테고, 영문 텍스트는 원문 그대로 실으면 되지 않는가. 물론, 번역 산출물의 교정 작업도 필요하고 웹 단어장도 만들 예정이라 영문 텍스트에도 별도의 편집 작업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책의 내용을 결정할 때처럼 무엇을 선택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완벽하게 틀린 생각이었고, 출판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혼 준비를 할 때처럼 생소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일은 끝난 줄 알았는데, 2년도 지나지 않아 그런 기회(?)가 다시 왔다.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이야…


난 내가 책을 잘 아는 줄 알았다. 대부분이 만화책이긴 하지만 집에 책도 적잖이 있는 편이고, 딱히 사지는 않아도 서점 가는 것을 즐긴다. 여전히 전자책보다는 일반 책을 훨씬 더 선호할 정도로 책이라는 매체에 애정이 있는 편이라 책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고, 그 이면에는 굉장히 심오한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둘 다 독립출판은 처음이라서 혹시나 전체 출판 프로세스 중 누락하는 부분이 생길까 걱정했었다. 그래서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그림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1인 출판사인 에디시옹 장물랭의 이하규 대표님에게 이틀 내내 수업을 받았다. 정확히는 기획팀장님이고, 이 강아지가 대표님이다 :) 


실제로 보면 꽤 크고 늑대처럼 잘 생겼는데, 하는 짓은 애기 같이 귀엽다 :) 

 

책의 외형을 유심히 본 날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에디시옹 장물랭에서 출판한 책들을 비롯 다양한 책을 보여주셨다. 보통 경영경제 분야 등 실용서나 만화책을 주로 보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책이 이렇게도 예쁠 수가 있구나’, ‘출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구나’, ‘작품의 컨셉과 디자인, 출력 방식이 모두 합이 맞으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구나’ 등. 입버릇처럼 말하던 소장가치는 단순히 내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깨달음과 동시에 고통도 함께 왔다는 것. 한 번 올라간 눈높이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비싼 것은 배우지 않아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법이다. 


보여주시는 것마다 너무 취향저격. 그래서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자꾸 컨셉이 흔들리는 문제가 생기기도...


수업을 듣고 그 후 여러 차례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실컷 했다. 평소에는 책 내용을 봤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제작을 했는지 유심히 봤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판형이었다. 집에 있는 책을 사이즈별로 다 꺼내놓고, 들어보고 만져보고 평상시에는 그냥 넘어갔던 부분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국문, 영문 컨텐츠를 담는 책의 판형이 클 때와 작을 때 어떤 느낌을 주는지, 판형의 크기와 페이지수는 어느 정도 반비례를 하기 때문에 들고 볼 때의 안정감이나 무게감도 고려해야 했다.


또한, 제본 방식도 고민이 됐다. 이 부분은 글을 쓰는 지금도 고민을 하고 있는 부분이라 무선 제본과 양장본 중 어느 방식이 좋을지 테스트를 통해 최종 결정을 할 예정이다. 처음 출간할 때는 ISBN 없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진행하지만, 향후 정식 출간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겉표지를 사용하는 구조로 만들 예정이다.


이렇게 눈에 바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와 아내가 의견을 교환하면서 방향을 잡아갔는데, 내가 거의 눈 뜬 장님처럼 역할을 못 한 분야도 많다. 디자이너 눈에만 보인다는 세세한 차이는 정말 눈을 씻고 봐도 차이를 몰랐다. 디테일을 잡아야 하는데, 디테일이 보이지 않아 이 부분은 오로지 아내가 맡아서 처리했다. 본문의 폰트 종류, 글자크기, 행간, 페이지의 상하좌우 여백, 하단의 페이지 표시 방법, 목차 디자인 등의 요소마다 3가지 이상의 버전을 만들고 출력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점차 시중의 책 같은 모습을 띄게 됐다.


일반인은 봐도 모르는 영역. 특히, 둔감한 남자에게는 ...


마지막으로, 수업을 받으며 들은 내용 중 인상적인 내용들을 옮겨본다. 출판 관계자에겐 너무 뻔한 내용일 수 있어도, 우리처럼 독립출판에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출판 기본

제작비는 정가의 30% 이하로 해야 한다.

서점에서 책 내용보다 책 외형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종이질, 코팅, 제본형태)


크라우드 펀딩

주요 고객은 20~30대 여성이므로, 이 타겟층의 사전 설문도 필요하다.

소개글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임박해서 쓰지 말고 체력이 남아있을 초반에 쓰는 것이 좋다.

내용 이상으로 비주얼이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출력

본문 종이는 150g, 표지 종이는 300g을 넘지 않는 것을 권한다.

종이의 g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종이끼리만 비교할 때 사용한다.

추후 지속적인 출판을 할 경우 종이는 선방 입고하는 것을 추천한다.

감리는 제일 어려운 부분부터 진행하고, 통일성을 중시하기 위해 중간에 바꾸지 않는다.

최대한 오래 건조하는 것이 좋다.


선물 받기도 하고 언리미티드에서 업어오기도 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의 책들. 정말 예쁘다.


종이책에 대한 준비는 이곳저곳에 부딪히고 긁혀가면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영어 원서 읽기용 앱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 개발은 어찌어찌하면 되지만, 녹음의 세계는 또 처음 접하는 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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